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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영업시간 단축 논란이 뜨겁습니다.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에서 최근 은행 창구영업 마감시간을 현재 오후 4시30분에서 3시30분으로 1시간 단축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네티즌 등 금융소비자들의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영업시간 단축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금융노조와, 금융소비자 권리 차원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제윤경 희망재무설계 본부장의 글을 함께 싣습니다. <편집자주>
한 시중은행 창구(자료사진).
한 시중은행 창구(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연기
[사례1] 은행원 이아무개씨는 매일 퇴근시간이 밤 10시를 넘긴다. 이제 결혼한 지 1년도 안 됐지만 신혼 재미를 느낄 여유도 없다. 야근은 주로 업무량이 절대적으로 많아서이다. 그러나 업무가 일찍 끝나는 날도 전반적으로 늦게 퇴근하는 분위기에서 자신만 일찍 퇴근하는 것이 눈치 보여 일부러 늦게 퇴근하는 날도 없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씨는 금융노조에서 발표한 업무시간 단축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고객에게 열어두는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다고 퇴근시간이 빨라지고 업무량이 줄어들 것이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씨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고객이 많이 찾아 업무가 늘어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좋은 일이며, 더불어 종사하는 직원들에게도 궁극적으로 나쁜 일만은 아니다. 다만 일은 늘어나는데 인원 충원도 하지 않고 적은 인력으로 대체함으로써 발생한 과다한 업무를, 고객에게 불편을 주는 방향으로 해결하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어디 가서 은행 다닌다는 말도 눈치 보여 못하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된다.

[사례2] 23세 김아무개양은 3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휴대폰에 내장하는 진동모터 생산 공장에 취업했다. 일정한 공간에 100여명이 빽빽이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환경 탓에 화장실도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한다. 주 5일 근무라고 하지만 대부분 토요일 오후까지 일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적은 급여지만 착실히 저축하면서 조금씩 돈 모으는 재미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모든 저축을 은행 적금에 투자하던 김양은 지난달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면서 '적립식 펀드'가 수익률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관심이 있지만 아직 상담을 받아보지 못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다 보면 은행을 이용할 틈을 내기가 어려워 부득이 휴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이 편하게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오후 늦게 또는 휴일에도 일정 시간 은행 문을 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노조가 노조다워야 노조지'

노동조합의 역할은 단순히 해당 근로자들의 권익과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엄연히 노조도 하나의 사회 조직으로서 사회의 발전과 국민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고 더 늘리기 위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목숨까지 걸고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했던 것은 단순히 자신이 일하기 피곤하고 업무량이 과다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기본적인 삶의 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그저 일하는 기계 취급을 하던 비민주적인 사회구조에 변화를 일구기 위한 헌신이었다.

그에 반해 현재 금융노조에서 주장하고 있는 은행 업무시간 단축은 그런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해 우리 시중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국민은행은 2조4700억원의 순익을 기록했고 우리금융지주 역시 2조100억원의 순익을 거두며 '2조 클럽'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농협도 1조원대, 신한금융은 2조원 가까이, 기업은행도 창립 46주년 만에 1조원대를 기록하는 등 은행들의 순익은 말 그대로 눈부신 수준이다.

그러나 IMF 이후 금융개방이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은행의 주인은 외국인이나 다름없다. 은행마다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국민은행은 80%가 넘고 외환은행 77% 등 평균적으로 60%가 넘는다. 외국인은 은행의 수익을 금융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우리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일에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장사를 잘했으니 가급적 빨리빨리 수익을 실현하려 한다.

업무과중 해결은 회사쪽에 요구할 문제

은행들이 외국인에게 배당하는 액수를 보면, 최대 수익을 기록한 국민은행이 수익의 절반을 배당했고 다른 은행들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외국인 주머니에 채워주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하는데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그 비용이 수익으로 쌓여 외국인들의 부를 늘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금융노조는 외국인에게 점령당하다시피한 은행을 감시하고 금융서비스의 선진화를 위해 가장 앞장서야 한다. 즉 단순히 은행원들의 권익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것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금융산업 선진화에 기여하면서 전체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 진짜 노조다운 것이다.

은행원들의 업무 과다가 궁극적으로 금융서비스의 질을 낮출 수 있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업무처리에 묶여 자기개발도 되지 않고 제반의 금융지식을 쌓을 여력도 없어 잘못된 상품판매를 하는 은행직원을 보면, 현재 은행원들의 업무과다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노조의 대안은 단순히 그럼 근무시간 줄이면 되지, 하는 어린아이 같은 이기적 선택이 아닌 좀 더 구조적인 접근이어야 한다. 즉 엄청난 수익을 기록하고 있는 은행에서 금융서비스 확대와 노동자들의 권익 모두를 위해 수익의 상당부분을 되돌려 투자하도록 싸워야 하는 것이다. 싸움의 대상을 은행이 아닌 국민으로 정하고 있는 금융노조의 주장을 접하고 있노라니 노조 운동의 시대적 역행에 대해 서글픔마저 든다.

은행업무시간 단축? 금융비용 양극화 양산

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고객(자료사진)
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는 고객(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례의 김양은 주말도 없이 꼬박 일하고 수당까지 다해 12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화장실도 정해진 시간 외에 갈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탓에 은행업무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김양은 두어 달에 한 번씩 월차를 내서 은행업무를 보거나 평소에는 은행 업무 외 시간에 현금카드로 급한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늘 수수료로 나가는 돈이 적지 않다.

월차를 내서 은행업무를 보는 것도 김양의 입장에서는 수당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수수료로 현금인출 하느라 한 달에 몇 천원, 집에 인터넷이 없기 때문에 ATM기로 계좌 이체하느라 몇 천원, 수당포기로 3만원 가량이 금융비용이다. 한 달 꼬박 일해 받는 월급이 100만원이 조금 넘는 것을 감안하면 금융비용으로만 소득의 4% 가량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자산이 많은 사람들은 은행에서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수수료 면제서비스는 물론이고 별도의 VIP 센터를 차려놓고 화려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심지어 VIP 고객의 자녀 맞선 행사 제공 등 기가 막힌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실이다.

김양과 재력가를 1:1로 비교하면 은행의 입장에서는 이런 서비스의 차이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은행에게 수익을 안겨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비용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부자들만으로 은행이 그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김양과 같은 평범한 국민들이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은행을 통해 금융소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상 최대의 수익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수 자산가들을 위한 은행간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서 '출혈경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 자산가들을 위한 경쟁의 조금이라도 일반 서민들을 위해 쓴다면 현재의 불편한 금융소비 구조는 개선할 여지가 클 수 있다.

가뜩이나 적은 소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대다수 금융소비자들을 외면하는 은행, 거기에 더 나아가 노조까지 한술 더하는 현실에서는 금융비용의 양극화, 더 나아가 자산의 양극화를 만들 위험이 있다.

금융소비자의 깐깐한 소비가 절실한 때

월급통장을 은행에서 증권사나 종금사로 옮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증권사나 종금사는 은행에 비해 다양한 수수료 면제 서비스, 정보제공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은행에 비해 장사가 덜되기 때문에 서비스를 늘려 은행과 경쟁하는 것이다.

이에 놀란 은행은 거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수수료 인하, 대기 고객 편리성 증대를 위한 서비스 개선 등 몇 가지 '반짝'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나 속을 까보니 알맹이 없는 생색내기 였다. 여전히 소비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무조건 은행, 그래도 안전하지 않을까, 은행직원은 전문가이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노조의 황당한 투쟁(?)이 계기가 되어 은행의 소비자를 무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은행에서의 금융소비에 좀 더 냉정해 지고 깐깐해져서 제대로 된 서비스 경쟁력을 위한 노력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은행#업무시간#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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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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