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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신문
[김나령 기자] 전북 부안 읍내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10분쯤 달리다 보면 농가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인 주부 찬튀탄튀(27)씨가 사는 집.

찬튀탄튀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 백인기(39)씨와 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요즘은 농한기라 한가한 편이다. 부부는 종일 같이 있으며 장도 보러 가고, 두 아이 주연, 한결이의 재롱도 보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부부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사이가 좋아 보인다. 찬튀탄튀씨가 가끔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면 남편은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준다. 행동 하나하나에 열두 살 어린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백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부부는 4년 전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만났다. 지난 2003년, 백씨는 국제결혼을 결심하고 신부를 찾으러 베트남까지 건너갔다. 거기서 100여 명의 여성들을 만났지만 생각과 많이 달랐다. 상심한 백씨는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찬튀탄튀씨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백씨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진실해 보이는 눈과 선하고 고집 있어 보이는 얼굴이 좋았다"고 말한다. 남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든 것은 찬튀탄튀씨도 마찬가지.

"베트남 남자는 게으르고 가난해서 싫었어요. 베트남에 있으면서 한류열풍으로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한국남자들이 괜찮은 것 같더군요. 그러던 중 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거기 있던 사람들 중 남편이 가장 젊고 멋있어 보여 결혼까지 결심했죠."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며칠 만에 찬튀탄튀씨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식을 올렸다. 그리고 남편이 살던 부안군 동진면으로 들어와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살림을 차리고 보니 문제가 하나 둘씩 드러났다. 찬튀탄튀씨가 외로움에 시달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남편이 농민 후계자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밤늦도록 안 왔어요. 집에 시어머니랑 저만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어렵기도 하고 외로워서 평평 울었어요."

결혼 초기 찬튀탄튀씨는 간단한 인사말밖에 한국말을 할 줄 몰라 가족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문화 차이도 컸고,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 하나 없었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 낯선 환경에 대한 부담과 심리적 소외감으로 나날이 지쳐가는 아내를 보며 백씨는 큰 결심을 했다.

"1년 오픈 베트남행 비행기 왕복 티켓을 끊어줬죠. 친정집에 가서 좀 쉬다 오라구요. 또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더니, 친정집에 자꾸 물이 차서 다시 지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토로하더군요. 그래서 집 짓는 데 보태시라고 적은 돈이지만 보내드렸어요."

백씨는 이 밖에도 매년 아내가 친정에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가까운 곳에 사는 베트남인 친구 집에도 데려다 주며 아내의 정착을 도왔다.

백씨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서인지 찬튀탄튀씨도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알음알음으로 한글도 배웠다. 정을 붙이고 살다 보니 데면데면하던 시어머니와도 살가워졌고 같이 품앗이·김장 담그기 등을 하며 동네 어른들하고도 가까워졌다. 그렇게 지내며 큰딸 주연(4)이를 낳았고, 얼마 전엔 아들 한결(4개월)이도 낳아 시어머니 품에 안겨드렸다.

부부가 한해 농사의 시작인 모판에 흙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부부가 한해 농사의 시작인 모판에 흙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여성신문
그녀 특유의 부지런함과 싹싹함도 한몫했다. 찬튀탄튀씨가 시집 오고 나서 1만여평을 경작하던 것이 3만여평으로 늘어났다. 그녀는 남편을 도와 부지런히 일했다.

지난여름엔 찬튀탄튀씨가 노는 땅에 콩을 심었다. 그 결과 가을 추수에서 100만원 넘는 소득을 올렸다. 이 밖에도 그녀는 싸게 물건을 사기 위해 슈퍼를 골라 다니고, 추수한 작물을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알뜰 살림꾼'이라는 게 남편의 설명. 이렇다보니 백씨가 그녀를 끔찍하게 아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결혼 하나는 잘한 것 같습니다. 이 사람 들어오고 나서 모든 일이 잘됐어요. 아내에겐 늘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아내 자랑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 국제결혼을 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국제결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란다. 실제로 그가 아는 사람들 중 다수가 국제결혼을 했지만 다들 비슷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찾는 외국여성들은 대부분 기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정작 결혼을 하는 농촌총각들은 조건이 안 좋은 편이지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아내가 정착할 때까지 도와줄 각오가 돼 있지 않은 한 결혼생활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백씨는 또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난 만큼, 한 쪽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교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찬튀탄튀씨도 여성결혼이민자들에게 한마디 했다.

"한국에 시집오면 편히 잘 살 것이란 생각을 버리고 와야 합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이 큰 법이지요. 그저 열심히 일해 가족이 건강하고 잘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요."

농촌여성결혼이민자 정착과제는...
경제적 어려움·가부장 사회가 가장 큰 걸림돌

농촌 여성결혼이민자들은 도시 여성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서 복합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농림부 여성정책과가 지난해 발표한 '농촌 여성결혼이민자 정착 지원방안'을 살펴보면, 농촌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혼기를 놓쳐 내국 여성과 결혼이 어렵기 때문(48.4%).

반면 여성결혼이민자들은 결혼을 결정할 때 '경제적 안정'(34.8%)을 최우선 조건으로 꼽아 갈등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농촌 여성결혼이민자 다수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농사일과 가사노동의 이중고도 심했다.

도시보다 더 가부장적인 가정 분위기와 이웃이나 본국과 교류하기가 어려운 상황 등도 농촌 여성결혼이민자들의 정착을 어렵게 하는 주요 요인.

여성결혼이민자들은 성격이나 문화 차이로 남편과 많이 다퉜고, 고부 갈등도 심각한 것(20%)으로 드러났으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53%)으로 나타났다.

농림부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농촌 여성결혼이민자들은 지원이 어려운 사각지대에서 문화 차이, 고부 갈등, 언어 및 신체적 폭력, 양육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출신국별로 먼저 이주해 정착한 상담도우미를 확충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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