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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정 가는 길
월송정 가는 길 ⓒ 김대갑
월나라에서 가져 온 소나무의 씨를 심었다니? 그럼 이 정자가 춘추전국시대부터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월나라'라는 나라가 고려시대까지 존재했다는 말인가.

관동팔경의 정자들은 거개가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월송정도 고려시대 충숙왕 때 세워졌다는 말이 있는데, 갑자기 웬 월나라란 말인가? 아마도 이는 후세의 사람들이 월나라라는 이질적이고 신비한 소재를 끌어들여 월송정의 아름다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향전에 의하면 관동팔경을 유람했던 네 사선(영랑, 술랑, 남석, 안양)이 달빛과 송림에 취해 여기 월송정에서 놀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月松亭'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월나라에서 가져온 소나무 씨앗이 심어졌든 아니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관동팔경의 최남단인 월송정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월송정에는 동해의 칼바람을 꿋꿋이 견디는 울울창창한 송림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둘러서 있다. 그리고 그 송림 사이로 푸르청청한 동해와 명사십리로 유명한 구산해수욕장의 하얀 백사장이 수줍게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월송정은 여타 관동팔경의 정자와는 달리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진 않아 천혜의 경치를 자아내진 않는다.

그러나 주변의 곰솔과 어울려 뜻밖의 풍광을 보여 주는 곳이 월송정이다. 곰솔의 적갈색 몸채는 거북등처럼 넓게 갈라져 있고, 휘늘어진 솔잎의 끝마디에는 투명한 이슬 빛이 맴돈다. 그 이슬 빛이 발하는 솔 향에 취한 채 정자에 올라 송림과 동해를 바라보면 유하주를 마시며 달과 대화를 나누었던 송강 정철이 결코 부럽지 않다.

월송정에서 바라 본 동해와 송림
월송정에서 바라 본 동해와 송림 ⓒ 김대갑
조선시대 성종은 이름난 화공을 시켜 전국의 사정(활쏘기에 좋은 곳)을 그려오라고 시켰다. 화공은 영흥의 용흥각과 평해의 월송정을 그렸는데, 성종은 용흥각의 연꽃과 버들이 아름답기는 하나 월송정에 비할 수 없다며 그 경치를 극찬했다고 한다. 이 말의 진위 여부 또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남대천과 황보천이 만들어 놓은 넓은 평야 지대의 야트막한 구릉에 있는 월송정이 성종의 극찬을 받은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바다와 마주 닿은 것은 아니지만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월송정. 이곳은 분명 시인 묵객의 시적 유희와 고급 무사들의 무술 연마를 위한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팔작지붕에 주심포 양식을 가진 월송정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을 가진 조선시대 양식의 건물이다. 원래 건물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으나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조 강원도 관찰사였던 박원종이 중건하였다 한다. 슬프게도 이 월송정은 완전 철거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미군 폭격기의 표적이 된다 하여 철거해버렸던 것이다. 원통하고 분할 노릇이지만 나라 잃은 설움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겠는가.

월나라 미녀의 유혹, 월송정
월나라 미녀의 유혹, 월송정 ⓒ 김대갑
그 후 재일동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철근콘크리트조의 월송정이 들어섰으나 원래의 건물과 너무 달라 다시 철거하고 말았다. 그리고 1980년에야 비로소 조선시대 양식으로 고풍스런 모습을 재현하게 된 것이다.

이 월송정의 현판은 당시 대통령 권한 대행이었던 고 최규하씨의 친필이라고 한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물러났던 최규하씨의 흔적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인 셈이다.

망양정과 더불어 경북의 해안 정자를 대표하는 월송정은 망양정보다 다소 큰 몸체를 자랑한다. 그리고 유지태와 김지수, 엄지원이 열연했던 영화 <가을로>의 촬영장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현우(유지태 분)와 민주(김지수 분)의 신혼여행 다이어리를 따라 촬영된 <가을로>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 60여 곳이 담겨 있다.

그 유명한 담양의 소쇄원을 비롯하여 내연산과 불영사, 구절리 전나무 숲, 영월동강 등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월송정도 포함된 걸로 월송정이 영화 촬영지로도 안성맞춤이었던 모양이다.

80년에서 200년 된 소나무 천 여 그루에서 시원한 바람이 늘 불어오는 월송정. 이곳에서 송림을 빠져 나와 구산해수욕장의 백설기 모래를 밟으며 일망무제로 펼쳐진 동해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은 이는 모를 것이다. 월송정에 가면 모든 것이 부드러워진다.

거친 바다에서 부는 바람들은 울창한 송림들을 지나면서 산들바람으로 순화된다. 덩달아 월송정에 올라 그 산들바람을 맞는 사람들도 자연에 순화된다. 그 산들바람을 맞으며 영롱한 달빛 아래에서 월나라 미녀와 유하주를 나눠 마신다면 세상 부러울 게 무에 있으랴.

덧붙이는 글 | cnb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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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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