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사랑방 뒷문에 매실나무 꽃이 피었다.
ⓒ 송성영

시국은 어수선한데 집 주변 곳곳에 꽃이 피었습니다. 꽃들이 어수선한 마음을 잡아 당깁니다. 밭일을 하는 내게 쉼표를 찍어 줍니다. 호미를 놓고 물집 잡힌 흙손을 털어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 송성영

사랑방 뒷문을 열니 매실나무 꽃이 활짝 반깁니다. 매화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매화에 홀딱 빠져 있다가 문득 방문 고리에 시선을 놓습니다. 매화 꽃이 예쁘니 방문고리도 예쁘게 다가옵니다.

ⓒ 송성영

밖으로 나오자 대문 없는 대문간 곰순이네 집, 강아지 몇 놈은 어미젖을 빨고 있고 또 몇 놈은 뚤래뚤래거리며 집 주변을 아장아장 쏘다닙니다. 곰순이네 집 바로 아래에는 그 순진무구한 강아지 눈빛 같은 별꽃들이 ‘나 좀 봐라’ 반짝반짝 거립니다.

ⓒ 송성영

이제 마악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이 어미닭 주변을 쫑쫑쫑 맴돌고 있는 볕 좋은 닭장 옆댕이에는 풀꽃들이 지천입니다.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하얀 민들레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 민들레꽃
ⓒ 송성영

오고가는 발 끝에 밟혔던 이름 모를 풀들, 그 풀에서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참말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 흔하디 흔한 풀꽃에 빠지다 보니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덩달아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 배추꽃
ⓒ 송성영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감나무,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 둥구나무, 박태기나무, 배추꽃, 제비꽃, 벌금자리 꽃 또 다른 이름 모를 풀꽃과 나무들.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고, 같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 벌금자리꽃
ⓒ 송성영

나는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시선을 맞춥니다.
그들 또한 나를 봅니다.
가슴으로 파고 듭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두근거리는 '나'를 봅니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풀꽃도 환하게 웃습니다.


언젠가 아는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기가 막힌 꽃이 피었네요, 얼른 와 봐요.”

▲ 석등 아래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 송성영
아는 스님 절에 가보니 정말로 기가 막힌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석등 받침 틈새에서 이름모를 보랏빛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난초처럼 생긴 풀잎에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횡재라도 한 듯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려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습니다. 본래 모든 생명들이 다 신기한 것인데, 어리석게도 그 꽃 하나에 홀딱 빠져 있었습니다. 순간, 그 모든 꽃들을 등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희소성의 가치 판단으로 생명을 차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집의 석등 틈새에 피어난 꽃이라 하여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었습니다. 석등의 꽃이 신비한 현상이라면 발 아래에서 짓밟히고도 피어나는 풀꽃이며 아스팔트 가장자리 틈새에서 솟아나는 풀꽃들이야 말로 더욱 더 신기한 일입니다.

늘상 곁에 있는 내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평생 보기 힘들다는 우담바라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풀꽃이 내겐 더욱더 소중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3천 년에 한번씩 피는 꽃이라면 풀꽃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천년 동안 꽃을 피워 왔고 또한 앞으로 3천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자리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 송성영

풀꽃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다시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 풀을 뽑습니다. 강아지 눈빛 같은 별꽃을 뽑아내고 냉이꽃도 뽑고 어여쁜 벌금자리꽃도 송두리째 뽑아냅니다.

절집 석등에서 피어난 꽃은 더 이상 피어나지 않았지만 내년 이맘때가 되면 그 풀꽃들은 다시 피어오를 것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듯이 말입니다.

▲ 냉이꽃
ⓒ 송성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