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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협상 타결 후 4일 지역 일간지들에 실린 정책홍보 광고.
한미 FTA협상 타결 후 4일 지역 일간지들에 실린 정책홍보 광고. ⓒ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지원위원회
지역사람들, 특히 농촌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보수신문들은 협상체결의 문제점은 꼼꼼하게 지적하지 않은 채, 한미FTA 체결에 따른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어올리는데 급급한 것일까. 이제야 이 정권과 코드가 맞춰진 것일까.

FTA와 대통령을 찬양하는 3중창이 어쩌면 그리도 화음이 절묘한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얼치기 좌파', '교조적 좌파', '마구잡이식'이라며 대통령에 대해 늘 상반되거나 비판적 견지에서 입장을 달리해 온 보수신문들이 뒤늦게 코드를 맞췄다고 치자.

외교통상부가 4일 한미FTA 분야별 최종협상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마당이다. 비공식 채널을 통해 여러 의혹과 논란만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유리한 협상 내용만 앞다퉈 홍보하고 불리한 협상 내용은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과도 같은 협상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협상 타결의 자축도 모자라 한 술 더 떠 시름에 젖은 농심을 자극하고 있다. 지역과 농업문제의 민감한 분야까지 건드리고 만다.

<조선>은 5일 사설 '농업·농촌·농민 현실 먼저 알고 대책 내놔야'에서 "정부가 그동안 농업 부문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농촌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모른 채 눈먼 사람 문고리 잡듯 돈만 쏟아 부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우리 농업·농촌·농민의 현실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농업과 농촌을 만들려면 현장을 찾아가 현장에 뿌리내린 살아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농민들을 끔찍하게 생각한듯하지만 실상은 불난 데 부채질하는 꼴이다.

FTA 빙자한 충고, 주문들 도 지나쳐

<조선>은 6일 사설 '실력 키워야만 한·미 FTA가 호기된다'에서도 시작부터 "한·미 FTA로 우리 경제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찬양하더니, 말미에서 본색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정부 규제를 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가 없으면 '규제'도 없어야 하는 것"이라는 애매한 논리를 바탕으로 규제완화를 강조한다.

더 놀라게 하는 대목이 있다. "무엇보다 지역균형발전 같은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한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넓은 눈으로 한·미 FTA가 던져주는 기회와 도전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균형발전이 국가경제에 해가 된다는 것인지, 지역은 버려도 된다는 얘긴지 모호하다.

<동아일보>도 5일 사설 'FTA 지원, 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된다'에서 "농민의 반발을 막기 위해 세금을 뿌리는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며 "구조조정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농가 부채만 늘려 놓는 지원 방식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사설 '노대통령 개헌발의를 재고하라'에서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대한민국의 역사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정치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고 있다"고 띄우더니, "대통령은 코앞에 닥친 개헌안 발의를 대승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다시 '갈등의 대통령' '오기의 대통령' 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이 사설은 "노 대통령이 써내려갈 역사의 페이지는 이제 몇 장 남지 않았다. 엉뚱한 일로 낭비할 지면이 별로 없다. 노 대통령의 마지막 숙고를 기대한다"며 구슬리며 설득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사설 'FTA 하면서 왜 우리 교육은 거꾸로 가나'에선 3불 정책폐지론을 들고 나서며 "FTA의 정신은 개방과 경쟁"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처럼 보수신문들은 논쟁의 빌미를 계속 던져 의제를 선점해 나가겠다는 것인지, 상관조정기능을 탈피해 선동기능에 충실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FTA와 대통령에 대한 찬양의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최소한의 균형도 상실한 FTA보도"

<부산일보> 정상섭 정치부장은 'FTA의 정치학'이란 데스크 칼럼에서 보수신문의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일보> 정상섭 정치부장은 'FTA의 정치학'이란 데스크 칼럼에서 보수신문의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 부산일보
민언련은 이에 대해 ""수구보수신문의 'FTA 찬양' 보도는 최소한의 균형도 상실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신문도 이제는 더 눈뜨고는 못 보겠다는 태도다.

정상섭 <부산일보> 정치부장은 6일 'FTA의 정치학'이란 데스크 칼럼에서 보수신문의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FTA 타결을 두 손 들어 환영하는 서울의 거대 보수언론, 이른바 조중동과 '타결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시각을 등치시켜 이해한다. 참여정부에 비판 논조를 고수해 오던 보수언론이 이번 FTA 타결을 두고 '제3의 개국', '최대의 치적'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이면엔 배경이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들 보수 언론이 참여정부의 지역 균형발전정책, 대기업 집중억제 정책 등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 여론을 이끌어온 데 비춰보면 이 같은 찬사는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고 비꼬았다.

"보수 언론으로서는 여기에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신문의 방송 겸영을 주창하고, 여론의 독과점 방지와 지역언론 지원 정책을 비판할 근거가 생긴다"는 그는 "무엇보다 향후 못 미더운 정부 정책을 개방과 경쟁이라는 잣대로 재단할 준거를 갖게 됐다"면서 "그들 자신이 FTA의 수혜자"라고 비판했다.

"성급한 환상보다 정확한 진단 필요"

<매일신문> 사설
<매일신문> 사설 ⓒ 매일신문
지역신문들이 오히려 협상타결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를 꼼꼼히 분석하는가 하면 협상에 따른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수신문들과 차별을 이룬다.

<국제신문>은 6일 사설 ''쇠고기 합의' 얼마나 됐다고 또 압력인가'에서 쇠고기 검역문제는 자유무역협정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는 합의정신을 훼손하는 일체의 언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이 사설은 "우리 정부도 이미 많은 양보를 한 마당이니 이런 부당한 압력에는 단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매일신문>도 이날 사설 'FTA논란, 투명한 정보공개가 먼저다'에서 문제점을 제기했다. 즉 "FTA 타결 이후 의혹이 꼬리를 물고, 협정문에 '독이 든 사과'가 적잖게 섞여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정부는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지름길은 투명한 정보공개"라고 했다. 성급한 환상을 전할 때가 아니라 정확한 실상을 공개할 때라는 의미 있는 주장이다.

<광주일보>도 5일 사설 '국회 한미 FTA 협상 철저히 검증하라'에서 "한미 FTA가 발효되면 국가 경제와 국민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국회는 정략과 정파를 떠나 철저한 검증을 통해 비준 여부를 결정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벼랑 끝에 선 농민들 안중에도 없는 듯

<전남일보> 6일자 1면
<전남일보> 6일자 1면 ⓒ 전남일보
<전남일보>는 6일 ''소값 하락' 한·미 FTA 현실로'란 1면 머리기사에서 "지난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광주·전남지역 한우 값이 하락하고 거래량도 줄어드는 등 축산농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르포기사로 전했다.

<강원도민일보>도 이날 'FTA 타결 낙후지 더 서럽다'란 기사에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광역시는 각각의 전략산업을 추진하는데 FTA가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내심 반기고 있다"며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들의 자구책만으로는 농업경쟁력 강화 추진 작업이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날 <제주일보>는 '물량공세 충격파 '예측불허''란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한미 FTA협상 타결은 감귤과 더불어 또 다른 효자산업인 축산업과 밭 농업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청정 제주' 브랜드 가치 창출, 한우의 흑우 대체,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 재개를 포함한 판로 다변화 등 다각적인 경쟁력 강화와 자생력 확보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미FTA 협상 타결로 당장 벼랑 끝에 서게 된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시간만 벌었을 뿐 한국 농업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한미FTA를 계속 감싸며 찬양하는 보수신문들은 지역과 농업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중앙적 시각에서 그간 지역을 바라보는 습성이나 관성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을 아예 포기한 듯한 태도는 성난 농심을 더욱 자극시키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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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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