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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문이당
<미실>(김별아/문이당)에 이은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참으로 특이한 소설이다. 인터넷에서, 서점에서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우선 그 제목의 하수상함에 고개가 갸우뚱했다. 아내가 결혼했다니, 아마도 이혼한 전부인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거니 생각했다.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것보다 그 제목이 풍기는 묘한 호기심에 책을 구입했고 읽었다.

소설을 읽으며 고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재밌다. 모름지기 소설이고 영화고 재밌어야 읽히고 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미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슨 역사적 사건이나 충격적인 스캔들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스릴러물이나 추리소설처럼 치밀한 극적 구성과 복선을 깔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이래야 주인공인 화자와 그의 아내와 그녀의 또 다른 남편인 한 사람, 단 세 사람이다. 소설 안의 사건이란 것도 별 특별한 것이 없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회사의 영업 관리사원인 화자와 (업무상으로 만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인 여자가 섹스를 하고 서로에게 끌려 결혼을 하고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무엇이 특이하고 충격적이냐고? 이미 말했을 텐데, 아내가 결혼을 했다고. 이혼한 아내가 아니고 지금 화자와 살고 있는, 법적으로 주민등록상에 '처(妻)'라고 기재되어 있는 아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우기니, 우기기만 한 게 아니라 이혼하지 않고 두 남자의 아내로서 살겠다니, 그런 아내를 내치지 못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참 한심한 남자가 있으니,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어디 있을꼬.

모두(冒頭)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나는 그녀의 친구가 아니다. 친정 식구도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소설 첫 장의 "인생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 - W.스콧" 다음으로 나오는 위의 고백에 이어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1부 연애'의 맨 앞 소제목이 이 소설의 전부다. 작가는 말 혹은 글의 첫머리를 뜻하는 모두(冒頭)에서 '아내가 결혼했다'고 선언하면서 '이게 모두다'라고 의뭉을 떤다. 이때의 '모두'가 영어식으로 말하여 'Total', 즉 소설 내용의 전부인지 모티브를 말하는 모두인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무튼 아내가 결혼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처음이자 끝인 것은 틀림이 없다. 작가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통념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혼관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슬람권에서의 일부다처도 아닌, 일처다부의 연애 혹은 결혼사상을 일부일처가 양성평등과 인간에 기초한 합리적 유일무이한 결혼제도라 믿고 있는(그렇게 수긍하도록 길들여진) 우리에게 그의 도발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것도 조선 500년 유교 사상의 잔뿌리가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있는 가부장의 사회에서, 남자도 아닌 여자가 오로지 자신의 주체적 결정에 기초하여 두 남편을 가지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니,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란 것도 별개 아니다. 세상의 질서를 바꿔보겠다는 여성의 혁명적 선언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좋기 때문이다.

"당신하고 결혼해서 살아 보니까 좋더라. 좋은 사람이랑 같이 사는 게 참 좋은 일이더라. 그래서 결혼하겠다는 것뿐이야."(150쪽)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 '부조리'의 작가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54쪽)

여주인공인 인아도 카뮈처럼 축구에서 모든 것을 배웠음일까. 주인공들은 축구광이다. 물론 관중으로서다. 골키퍼 출신으로 불의의 사고로 축구를 그만 둔 카뮈의 경우와는 다르다. 작자가 이미 선언했듯이 두 주인공들의 연애의 시작은 축구로부터 비롯되었다. 남자는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었고 여자는 숙적인 'FC 바로셀로나'의 광팬이었다. 1:1, 그들은 그 스코어에 안도하며 침대로 갈 수 있었다.

ⓒ manutd.com
여자는, 남자의 말을 빌리면, 섹스에 있어서 최고의 섀도(shadow) 스트라이커 였다. 아스널의 베르캄프처럼, 천재적인 플레이메이커였고 탁월한 어시스던트였다. 여자는 남자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남자는 죽자 사자 결혼에 매달렸고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이 결혼에 관심이 없던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마치 박지성처럼 90분 내내 경기장을 휘저어서 말이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정확히 말해, 일 때문에 아내가 경주로 내려가 주말 부부로 살던 그 때에 경기의 룰은 깨진다. 아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또 한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화자의 말을 빌리면, 언젠가 체육시간에 반원 전체를 두 편으로 가르고 두 개의 공으로 축구를 했던, 그래서 동시에 골이 터지기도 하고 한 골문에서 두 골이 터지는, 룰은 무시되었지만 더 없이 재미있던 그 축구를 여자가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죽을 맛이려니, 아내를 버릴 수도(어렵게 작심하여 이혼을 결정함에도 여자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 그렇다고 아내의 새 남자를 인정할 수도 없는 화자의 답답함이려니. 이런, 이번에는 아내가 임신까지 했으니, 누구의 씨냐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자기의 아이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 저쪽 남자는 한 술 더 떠 형님하며 변죽 좋게 남자에게 그 상황을 인정하고 잘 해보자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는 반쪽이라도 가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소설은 축구에 관한 삽화들로 시작하여 축구로 끝난다. 복혼을 주장하는 여자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서사의 전부인 소설에서 교묘하게 배치되어 소개되는 축구에 관한 일화들은 작가의 탁월한 역량을 실감하게 해주고 영화며 음악 등 많은 장르에서 추리고 뽑은 또 다른 삽화들은 절묘하게 이야기의 전개에 맞아 떨어진다. 마치 베컴의 기가 막힌 프리킥처럼 말이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지방의 역사적인 대립관계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지금에도 앙숙으로 남아 있게 하였고 이영표가 뛰고 있는 토트넘과 아스널의 북런던 더비는 경비담당자의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박지성의 동료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맨체스터의 왼발잡이 라이언 긱스는 황금발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껏 월드컵무대에 서지 못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를 따라 웨일즈로 간, 웨일즈 출신이기 때문이다. 우승에 목말랐던 잉글랜드는 그에게 애타는 구애를 했지만 그의 선택은 언제나 웨일즈였다.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느니 웨일즈 소속으로 월드컵과 유로대회 예선 한 경기라도 더 뛰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기자는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자의 우울한 고백과 좋으니까 다함께 살자는 도발적인 여자의 복혼 주장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볼란치와 더블 볼란치 중의 앵커맨과 홀딩맨, 훌리건의 유래, 전설적인 축구 스타들의 사소한 소문들, 프리메가와 프리미어와 세리에 등등 축구에 관한 일화들에만 온통 신경이 쓰였고 '글루미 선데이' 며 '줄 앤 짐' 등 폴리아모리의 사례로 제시되는 영화와 그에 걸 맞는 음악 등등 소개되는 재미난 얘기에 책의 맨 뒷장이 덮인 것도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문이당/9800원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장편소설

박현욱 지음, 문학동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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