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사동 쪽에서 바라본 보문산. 좌측 원이 시루봉, 우측이 보문산성입니다.
이사동 쪽에서 바라본 보문산. 좌측 원이 시루봉, 우측이 보문산성입니다. ⓒ 김유자
보문산이라는 명칭의 유래

보문산(457.6m)은 대전의 남쪽 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산은 봄이면 진달래와 산벚꽃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가을엔 갖가지 수목들이 제 잎을 아름답게 물들여 놓고 등산객을 유혹합니다.

이 산이 보문산이란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옛날 어느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주고 얻은 '은혜를 갚는 주머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고기를 살려준 나무꾼은 '은혜를 갚는 주머니'로 보답을 받게 됩니다. 나무꾼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주머니에다 동전 하나를 넣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머니에서 동전이 마구 쏟아졌더랍니다.

나무꾼은 주머니 덕택에 큰 부자가 되었지요. 그러나 신기한 주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나무꾼의 형은 강제로 그 주머니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머니는 그만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부아가 치민 형은 주머니를 발로 마구 밟아버립니다.

그래서 주머니 속으로 흙이 들어갔고 그 흙은 확대 재생산되어 계속 쏟아져 나와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큰 산이 되었는데 그 산 속에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 하여 보물산이라 불렀다는 그런 얘기랍니다. 처음엔 보물산이라 불렀지만, 차츰 음의 변이를 거쳐서 보문산이 된 것이지요.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자꾸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에게 시달리다 못한 할아버지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 이야기가 아이에게 형제간 우애를 가르치는데 다소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산 이름이 된 진짜 유래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혹 보문산이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국사봉 등 적지 않은 문화 유적을 품고 있어 보물산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맞바라기에 있는 계족산처럼 이 보문산이란 이름도 그렇게 불교적 색채를 띤 게 아닌가 추측해본답니다. 그래서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닐까 억측도 해봅니다.

보문산성에서 바라본 시루봉
보문산성에서 바라본 시루봉 ⓒ 김유자
보문산 장대루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 풍경
보문산 장대루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 풍경 ⓒ 김유자
오늘(2일)은 보문산 등산을 떠납니다. 산에 진달래꽃이 얼마나 피었나 보고 싶기도 하고 봄빛이 무르익은 산성을 둘러보고 싶어서지요. 먼저 보문산성을 목표로 삼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보문산 야외 음악당 뒤로 난 산길을 바람만 바람만 올라갑니다. 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에 들러서 시원한 물 한 모금에 목을 축였습니다. 산에 오르는 재미 가운데 시원한 약수 마시는 맛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특히 이 보문산에는 약수터가 많은 게 특징이지요.

야외음악당에서 산성까지는 약 900m 거리. 금세 보문산성에 도착합니다. 보문산은 정상인 시루봉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동쪽으로 뻗어간 봉우리에는 보문산성이 있습니다. 보문산성은 마치 시내를 한 아름에 보듬으려고 하는 보문산의 오른쪽 와이셔츠 소매자락에 달린 예쁜 단추같습니다. 보문산이 특별히 한껏 멋을 부린 부분이라고나 할까요?

보문산성에서는 남쪽만 빼고 동·서·북쪽이 두루 다 보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서쪽 계룡산에서 남쪽의 서대산까지 대전 근방의 모든 산들이 뚜렷이 보입니다. 여기 오르면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이지요.

시루봉 가는 길. 한 등산객이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시루봉 가는 길. 한 등산객이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 김유자
이곳저곳 전망을 살피다 보니 여기서 너무 지체했나 봅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여기서 정상인 시루봉까지는 1km가 조금 넘습니다. 가다보니 한 등산객이 바위에 앉아 만인산 쪽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저렇게 앉아서 한나절 쯤 보내고 나면 신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제 두 발은 신선이 되길 허용하지 않습니다. 저기 정상이 있다고, 어서 가던 길이나 가라고 종주먹을 댑니다.

시루봉에서 바라본 계룡산 방향. 시계가 좋지 않아 계룡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시루봉에서 바라본 계룡산 방향. 시계가 좋지 않아 계룡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 김유자
보문산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 우측 제일 뒤에 보이는 산이 대둔산입니다.
보문산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 우측 제일 뒤에 보이는 산이 대둔산입니다. ⓒ 김유자
정상인 시루봉까지의 길은 대체로 평탄합니다. 막판 시루봉에 오르는 급경사진 계단만 빼고는요. 시루봉엔 평일인데도 꽤나 많은 분들이 모여서 조망을 즐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북쪽으로 계족산 동쪽으로는 식장산, 서대산, 만인산이 남쪽으로 대둔산, 그 옆에 바랑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금수봉, 도덕봉, 계룡산, 갑하산, 우산봉 등이 다 바라다 보입니다.

이곳저곳을 쳐다보며 눈 맛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가면 이사동 길이요, 왼쪽 능선을 타면 무수동이나 국사봉, 동물원 등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는 약 2시간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사동길을 택하기로 합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여기까지 온김에 이사동 마을의 봄풍경도 한 번 보고 가고 싶어서지요.

시루봉-동쪽 능선길-구완동 고개-절고개-이사동 대충 이런 코스로 갈 겁니다. 이정표를 보니 오도산 3.2km라고 돼 있습니다. 이사동이 오도산 바로 아래에 있는 동네이니 이사동까지의 거리도 그쯤 되겠지요.

이사동 가는 길에 바라본 식장산
이사동 가는 길에 바라본 식장산 ⓒ 김유자
산 기슭에 핀 진달래꽃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산 기슭에 핀 진달래꽃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 김유자
동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산을 내려갑니다. 이사동에 가까울수록 식장산(598m)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식장산은 보면 볼수록 시꺼먼 가마솥 뚜껑 같이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 사람들이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는 대충 지은 것이 아니라 뭔가 곡절이 있는 법이란 걸 확인하게 됩니다.

골짜기마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한창입니다. 흔히 수선화과에 속하는 연한 홍자색 꽃이 피는 꽃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상사화라 부른다지만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걸로 따지면 이 진달래야말로 상사화의 원조격인지도 모릅니다. 진달래꽃은 꽃이 지고 나서 잎이 나기 시작하지요. 어렸을 적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먹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이사동 가는 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구완동
이사동 가는 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구완동 ⓒ 김유자
오도산 아래 과수원에 매화꽃이 만발했습니다.
오도산 아래 과수원에 매화꽃이 만발했습니다. ⓒ 김유자
마음의 옹졸함을 벗어버리게 하는 등산

발길이 어느 새 구완동 고개에 다다릅니다. 여기서 이사동으로 가는 길과 구완동으로 넘어가는 길이 갈라집니다. 이정표를 보니 구완동 어청골 마을까지 1km, 오도산까지 2.2km가 남았습니다. 시루봉으로부터 약 1km를 걸어온 셈이네요.

오도산을 지척에 두고 이사동 길로 접어듭니다. 오도산 아래는 평지보다 봄이 더디게 오나봅니다. 과수원 밭에는 이제야 핀 매화꽃이 한창입니다. 사우당 앞 연못 옆에는 두 그루의 목련이 만개해서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담 너머로 보니 사우당 안에도 살구꽃이 피고 목련이 피었네요. 꽃 피어 더욱 아름다운 동네 이사동에서 오늘 제 보문산 등산을 마감합니다.

저는 삶에 지친 날이면 보문산에 오르곤 합니다. 보문산에 오르면 멀리 또 가까이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사람들이 사는 집이 마치 수만 개의 성냥갑처럼 다가옵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저런 속에 갇혀 옹졸하게 살았구나.

이제부터는 좀 더 마음을 크게 쓰고 넓게 살자. 봐라, 산은 제 등성이에 얼마나 많은 마을을 보듬어 안고 사는가를. 산은 순간이나마 제게 마음의 옹졸함을 벗어버리게 합니다. 불교 금강경에서 말하는 이른바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인 셈입니다. 산은 내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설한 것도 없고 설해진 바도 없는데 저절로 깨달아지니 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