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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고원의 아름다운 땅 시리아
ⓒ 이승철
요르단의 국경 검문소를 지나니 시리아 검문소다. 이곳에서는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상당히 까다롭다고 알려진 곳이다. 모두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 나라와 가장 적대적인 이스라엘을 거쳐 오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으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과연 시리아 입국이 별 탈 없이 이루어질 것인지 조금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여권을 모두 거둬가지고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들어간 가이드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어느 여행팀은 바로 이 국경검문소에서 말썽이 생겨 하루를 완전히 허비하고 뒤돌아섰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우리나라와는 국교가 없는 나라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사회주의 국가여서 북한쪽 하고만 수교한 나라다. 국교가 없는 나라는 여행자나 교민이나 그만큼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가이드가 나타났다. 일단 여권심사는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직접 검문을 할 것이니 여권을 각자 소지하고 검문을 받으라고 한다. 또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검문하러 버스에 올라온 두 명의 군인은 처음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리들을 훑어보았지만 검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얼굴과 여권사진을 대조하여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지나갔기 때문이다.

▲ 숲 너머로 바라보이는 헬몬산
ⓒ 이승철
염려했던 것보다 싱겁게 검문소를 통과하자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린다. 곧 시리아의 현지인 가이드와 경찰이 버스에 동승했다. 시리아의 현지인 가이드는 여성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자! 여러분, 오늘 하루 우리들을 안내할 시리아 가이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가이드 안 선생이 현지인 가이드를 소개했다. 이름은 라미즈. '피부가 부드럽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미모는 아니지만 순해 보이는 얼굴이다.

"오늘 하루 순박한 우리 이름을 지어줄까요? 순이 어때요?"

그에게 순이라는 가장 한국적인 이름을 붙여 준 것은 순박해 보이는 느낌 때문이었다. 첫인상에서 느꼈던 그대로 그녀는 정말 싹싹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사실 시리아를 여행하는 하루 동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시리아로 입국하여 잠깐 달리자 작은 국경도시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도시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왼쪽으로 꺾이는 길가에 한국의 어느 대기업 홍보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와 국교가 없어서 염려스러웠던 나라였지만 경제교류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길거리에 우리 기업의 홍보용 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묘하게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 모스크와 시가지 뒤로 바라보이는 눈덮인 헬몬산
ⓒ 이승철
도시를 벗어나자 또 다시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평야가 아스라히 펼쳐졌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바라보이는 그 평원의 땅은 요르단보다도 한층 더 비옥해 보인다. 역시 씨앗을 뿌려놓은 것 같은 붉은 황토밭들은 정겹기도 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그 황토밭에 가지런하게 가꿔 놓은 올리브농장들과 농가 그리고 마을들이 사막답지 않게 상당히 풍요로운 모습이다. 우리들이 탄 버스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역시 차량이 많지 않아 거의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중동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순박한 편이지만 이곳 시리아 사람들이 가장 정직하고 친절합니다."

요르단의 암만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인 가이드 안 선생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이곳 시리아에 역시 관광객들을 이끌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곳을 둘러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관광객 중의 한 사람이 갑자기 놀라서 어쩔 줄 모르더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둘러보고 온 지역 어느 곳에 지갑을 놓고 왔다는 것. 그것도 사람들이 많은 곳이어서 잃어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모두들 놀라서 차를 돌려 헐레벌떡 다시 그곳으로 달려갔는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 끝없이 펼쳐진 황토밭과 올리브농장
ⓒ 이승철
시리아는 인구 1700만 명에 국민소득 3000달러로 이집트보다는 잘 사는 편이다. 이웃 요르단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정겹고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게 안 선생의 설명이었다.

평원 길을 한참을 더 달리자 왼편으로 저 멀리 하얀 눈이 덮인 높은 산이 바라보인다. 아스라한 황토고원의 끝에 멀리 바라보이는 하얀 산의 풍경이 기막힌 장관이다.

"저 산이 헬몬산입니다. 동쪽으로는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한 골란고원이 연결되어 있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곳이지요."

정상의 높이가 2814미터나 되는 높은 산이어서 그런지 하얀 눈이 뒤덮여 있는 모습이 여간 웅장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 다마스커스의 옛 성벽
ⓒ 이승철
헬몬산은 사막지역에 있는 산이지만 지형적인 영향으로 연중 강우량이 1500미리 미터나 된다. 그러나 강우량의 대부분이 비가 아닌 눈으로 내리는데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초여름까지도 녹지 않고 쌓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이 지금 한창 겨울철이어서 상당히 두꺼운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겨우내 쌓인 눈은 한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녹아 산의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어 산 주변의 골짜기 샘들을 통하여 다시 분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솟아난 샘들은 서쪽으로는 요르단강으로 흐르고 북쪽으로는 리타니강, 그리고 동쪽으로는 다마스커스 강의 수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저 산의 물줄기가 바로 6일 전쟁의 단초가 되었지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당시 시리아와 아랍연합은 이스라엘의 생명선과 같은 요르단강과 갈릴리 호수로 흘러드는 이 헬몬산의 물줄기를 차단하려고 했던 것이다. 요르단강 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요르단과 시리아 쪽으로 몽땅 돌리는 공사를 시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충돌들이 단초가 되어 결국 세계의 전쟁역사상 진기한 기록을 세운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소위 3차 중동전쟁, 즉 6일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전쟁의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이스라엘의 대승이었고 아랍권의 완패로 끝났다.

▲ 다마스커스의 아파트가 보이는 풍경
ⓒ 이승철
"그럼 저렇게 아름답고 멋진 헬몬산을 바라보는 시리아 사람들의 마음이 영 편치 못하겠는데요?"

현지인 가이드 라미즈에게 묻자 그녀도 그것을 인정한다. 언젠가는 골란고원도 헬몬산도 되찾겠다는 것이 시리아인들의 염원이라고 했다. 눈 덮인 헬몬산을 촬영하기 위해 길가에 잠시 세웠던 버스를 타고 다시 다마스커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풍경은 여전히 황토밭이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평야다. 그 고원의 곳곳에 작은 마을들과 도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곧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낡은 집들과 지저분해 보이는 거리. 그리고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들은 어느새 수 천 년의 고도 다마스커스에 입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조금 전에 우리들이 달려온 길이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그 길인가요?"

그때서야 누군가 신약성경의 중심인물 중의 하나인 사도바울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바로 이 길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이 길은 아주 오래 전 고대부터 열려 있었던 길이니까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던 사울이 이 길 어딘가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 마음을 고쳐먹고 찾아간 아나니아의 집도 곧 보게 될 것입니다."

▲ 풀밭과 빌딩이 보이는 시가지 풍경
ⓒ 이승철
도로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차량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저기 보세요? 저것 옛날 성벽 아닌가요?"

가까운 곳에 정말 낡은 성벽이 제법 높다랗게 둘러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창문 밖으로 주렁주렁 빨래가 걸린 아파트도 보였다. 우리들은 고도 다마스커스의 도심으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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