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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침대 위에 장난스럽게 개어 놓은 수건
ⓒ 이승철


마케루스 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곧장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향했다. 산정을 벗어나자 곧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고원지대라 어두운 밤의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가는 버스운행이 위험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버스는 안전하게 암만 시내의 호텔에 도착했다.

밤이 늦어 저녁부터 먹기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는데 우리들이 이용할 식당 옆의 좀 더 넓은 곳에서는 결혼 피로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암만 시내 어느 재력 있는 사람의 잔치인지 하객들도 무척 많아 보인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침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일행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침대 위에 예쁜 사람의 다리가 보인 것이다.

"아니 저게 뭐야?"

일행은 사람의 다리 모양에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엉뚱하게도 커다란 수건이었다.

"거참! 이 사람들 별걸 다 가지고 사람을 놀라게 하네."

그러나 놀란 건 잠깐이고 재미있는 발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수건의 모양이 상당히 기발했기 때문이다. 수건을 그냥 개거나 펼쳐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다리모양으로 접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재치가 넘치는 장난스런 모양이다. 엎드린 자세로 무릎을 뒤로 구부려 두 발 뒤꿈치를 엉덩이에 대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는 손님들을 잠시라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정성을 들여 멋을 부린 것일 게다.

▲ 피로연장을 찾아온걸까. 승용차에서 내린 아랍여인
ⓒ 이승철
그러나 욕실에 들어가니 시설이 별로다. 우선 욕조의 물마개가 보이지 않는다. 아예 목욕을 할 수 없게 물마개를 치워버린 모양이었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의 나라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도 강행군 한 일정 때문에 피로가 쌓여 잠 속으로 쉽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몇 군데의 방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추웠다고 불평들을 한다.

아침을 먹고 곧장 버스에 올랐다. 오늘 일정은 더욱 빡빡했기 때문이다. 암만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에 다른 차들이 별로 많지 않아 우리나라의 도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잠시 후 버스는 다시 오르막길을 달리기 시작 헸다.

"저 앞에서 잠시 내려 얍복강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얍복강이 어떤 강인지는 다들 아시죠?"
대답할 시간도 없이 작은 다리를 건넌 버스가 오른 쪽 공터에 멈춰 섰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곳이 바로 얍복강입니다."

▲ 사막에도 이렇게 푸른 산이...
ⓒ 이승철

▲ 올리브농장과 마을풍경
ⓒ 이승철
"에게게! 이 작은 개울이 얍복강이라고요?"

버스에서 내린 일행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개울이었다. 그것도 시커멓게 오염되어 거품이 뒤덮인 개울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빠른 물살로 흐르는 개울은 수량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아니 그런데 이 거룩한 강을 누가 이렇게 오염시켜 놓은 거야?"

강물을 살펴보니 오염 상태가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다. 악취까지 풍기는 강물은 빛깔도 엄청나게 탁할 뿐만 아니라 하얀 거품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얍복강. 이 강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강이다. 창세기 32장에 의하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만나 밤새워 씨름을 하고 축복을 받은 곳이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는다. 더구나 아버지까지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연고로 에서의 복수가 두려워 멀리 사는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을 떠난다. 야곱은 피난길에 이곳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것이다. 야곱은 결국 천사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고 축복의 대를 이은 12명의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 것이다.

▲ 탁한 물, 거품으로 뒤덮인 얍복강
ⓒ 이승철
▲ 묘목을 기르는 밭
ⓒ 이승철
이 얍복강은 지금 보기에는 비록 초라한 모습이지만 굴곡이 심한 강으로 길이가 96km나 된다. 강줄기는 대부분 협곡을 이루어 자연적인 경계를 만들고 있는데 요르단의 고원지대인 길르앗을 남북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강이라고 해서 특별히 강 자체가 거룩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이 귀한 이 나라에서 이 정도의 수량이 흐를 수 있는 강이 흔치 않을 터인데 혼탁하게 오염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주변의 산들은 나무들이 많아 사막 같지 않은 풍경이다. 강둑 바로 옆의 밭에서는 작은 묘목들을 키우고 있는 것도 보인다. 요르단 정부에서 사막에 나무를 심어 녹화사업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얍복강을 떠나 다시 시리아 쪽으로 달렸다. 조금 더 달리자 상당히 높은 고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다. 이따금 나타나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들도 어떤 것은 제법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 황토밭 너머 올리브농장
ⓒ 이승철
▲ 황토밭에 가꾼 올리브농장 풍경
ⓒ 이승철
어느 작은 도시를 관통할 때는 도로변에 가로수까지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다. 사막에서 어떻게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이곳은 사막이지만 11월부터 3월까지는 비나 눈이 약간 내립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6~7개월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나무나 다른 식물들이 살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어렵게 살아남기도 하는데 길가에 보이는 나무들과 작물들은 대부분 지하수나 관개용 물을 주어 기르는 것이라고 했다. 도로변에는 가끔씩 씨앗을 뿌린 듯한 붉은 황토밭과 그 너머로 보이는 올리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농장들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느 곳은 푸른 올리브나무 농장들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는 가옥들이 아주 목가적인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 서있지 않은 황량한 사막의 풍경들도 바라보여 사막의 나라를 실감케 만든다.

"이제 곧 시리아 국경에 당도할 것입니다. 요르단의 출국과 시리아 입국수속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잠시 지체될 것입니다."

잠시 후 우리들은 요르단의 국경에 당도했다. 요르단 현지 가이드가 우리들의 여권을 수합하여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한다.

버스는 시리아 국경을 넘어서면 시리아의 버스로 바꿔 타야한다고 한다. 현지인 가이드도 바뀐다고 한다. 물론 우리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동승하고 있는 경찰관도 버스와 함께 요르단에 남아 저녁 때 우리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 저 길이 시리아로 가는 길
ⓒ 이승철
"아니 그럼 저 현지인 가이드는 하루 종일 이곳에서 기다리려면 지루해서 어떻게 하지요?"

정말 별 걱정을 다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가이드와 버스는 이곳에서 암만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것도 쉽지 않아 그냥 이곳에서 우리들이 다마스커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아주 대화를 잘합니다. 말만 통하면 심심할 일이 없는 곳이지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흉허물 없이 대화를 잘하는 사람들이 이곳 요르단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었다. 어떤 면으로는 훨씬 바람직한 문화인 것 같았다. 우리들은 모르는 사람들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편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곳 중동에서는 언어만 통하면 외국인들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리아로 들어가는 국경 입구가 저만큼에서 어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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