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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 잔디들보다 더 작은 키를 가진 솜나물
무덤가 잔디들보다 더 작은 키를 가진 솜나물 ⓒ 김민수
솜나물은 봄형과 가을형이 있는데, 가을형은 대롱꽃만 피우고 총포 속에서 닫힌 채 결실을 해서 꽃을 볼 수 없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몇 해 전 어느 봄날, 고사리를 하던 길에 솜나물꽃을 만났는데 작은 것이 어찌나 앙증스럽던지 몇 개체를 얻어와서 텃밭 근처에 심었다. 그것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가을에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결국 꽃을 보지 못했다.

꼭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자연 그 상태에서 자라야 하는데 옮겨심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도 했는데, 이듬해 봄 앙증맞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봄형과 가을형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신비했다.

봄형은 짤막한 키로 햇살이 잘 드는 풀밭에서 자란다. 꽃은 혀꽃과 대롱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혀꽃은 흰색, 뒷면은 자주색을 간직하고 있다.

작아도 환한 얼굴로 봄을 노래한다.
작아도 환한 얼굴로 봄을 노래한다. ⓒ 김민수
4월 첫날, 할미꽃을 만나러 갔다. 가장 수월하게 만나고 싶은 꽃을 만나는 방법은 작년에 만났던 그곳을 시기를 맞춰 찾아가는 것이다. 마침 시기를 맞춰 가서 할미꽃이 지천이다. 그런데 무덤가 잔디에 하얀 꽃들이 올망졸망 피어 있다. 올해는 꼭 담아야지 했다가 잊고 지냈던 솜나물이다.

솜나물을 보고서야 '그래, 맞아 올해 담고 싶었던 목록 중에 하나였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잊고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내가 꽃을 사랑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작아도 환한 얼굴로 봄을 노래하는 꽃, 마른 잔디들보다도 키가 더 작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모습을 피워내는 것이 자연이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꾸만 타인과 비교하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들꽃은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들꽃은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 김민수
4월,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한미FTA 협상이 2일 전격적으로 타결되면서 이번 4월은 정말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 같다. 한미FTA 협상 이후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곤두박질칠 것인가? 아주 오랜만에 야당과 보수언론의 지지를 받아가며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일을 국민들의 알권리를 박탈한 채 졸속협상을 시도하더니 결국 협상을 타결했다.

이렇게 나라가 절박한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나는 꽃구경이나 하고 다닌다고 생각을 하니 사치 중에 사치를 하는 것만 같아 미안하다. 그런데 또 그마저 못한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것을 또 어찌하겠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함에도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은 것이 삶이다. 나는 누구의 친구가 될 것인가?

형제간일까? 자매간일까?
형제간일까? 자매간일까? ⓒ 김민수
어제 저녁에 누님이 왔다.

"거기 할미꽃이 피었더라. 그리고 하얀 꽃도 피었던데."
"그거 솜나물이야. 나 오늘 갖다 왔어."
"잘했네. 난 또 소식 전해주려고 했지."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 잠깐 다녀왔지. 봄은 금방 지나가거든."


어릴 적에는 누이와 참 재밌게 지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가족 건사하는 것도 힘겨워 무심하게 지낸다. 남인 듯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이젠 굳어져서 너는 너, 나는 나로 살아간다.

형과 아우가 나란히 봄햇살에 피어났다.
형과 아우가 나란히 봄햇살에 피어났다. ⓒ 김민수
꽃은 대부분 여성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형과 아우를 보는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무덤가의 흙은 부드러웠다. 그리고 잔디가 가꿔져 풀 섶과 비교해 보면 사계절 내내 작은 키의 풀꽃들이 피어나기 좋은 환경이다. 그것을 알고 양지바른 무덤가에 자리하고 있는 키 작은 풀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봄이면 제비꽃, 산자고, 할미꽃, 양지꽃, 조개나물, 사초, 솜나물, 애기풀꽃이 만발하고, 씀바귀, 타래난초, 쇠뜨기도 키작은 잔디와 더불어 피어난다. 흙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참으로 수수하고 단아한 꽃이다.
참으로 수수하고 단아한 꽃이다. ⓒ 김민수
황사가 지나간 끝에 맑은 하늘이 슬픈 날이다. 북한산 인수봉이 보인다. 저 곳에도 꽃이 있을까? 성서 비유 중에서 4가지 밭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옥토와 가시덤불과 길가와 돌짝밭이 그것인데 옥토에 뿌려진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 외의 밭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저 바위산에도 꽃이 피어 있을까? 흙이 없는 곳에는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 터이니 바위산 웅장할 지언정 씨앗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문득 나의 마음 밭은 어떤 밭일까 돌아보게 된다. 씨앗이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문제임에도 늘 씨앗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내 마음에 고슬고슬한 흙이 있어 씨앗들이 자랄 수 있는 것인지 돌아본다.

무덤가에 피어난 작은 솜나물, 할미꽃 추울까 솜이불을 만들어주려고 이파리에 하얀 솜털을 송송 거리고 달고 피어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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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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