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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작가들
제물포는 인천의 옛 이름이다. 부산, 원산과 더불어 개항장이 되어 열강 침략의 발판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포성이 울렸다.

'제물포 해전'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진 러일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동해 해전'에서 발틱 함대를 격파하고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제물포 해전으로 시작된 러일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일본만의 전쟁은 아니었다. 러시아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고,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대한제국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제국주의 열강의 패권 다툼 속에서 중심을 잃고 식민지의 수렁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고 있을 뿐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작가가 쓴 제물포 해전

이 책의 작가인 프랑스인 '가스통 르루'가 쓴 작품 중에 유명한 것이 <오페라의 유령>이다. 소설로 쓰여진 <오페라의 유령>은 후일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웨버'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되어 세계 곳곳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책은 러일전쟁의 시작이 되었던 제물포 해전을 철저히 러시아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러일전쟁에서 프랑스가 러시아를 지원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프랑스인 '가스통 루르'의 관점은 당연할 수도 있다.

'가스통 루르'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제물포를 직접 방문한 적이 없었다. 제물포 해전에서 생존한 병사들이 귀국길에 만나 5일간 함께 생활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이다. 제물포 해전에서 러시아 병사들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러시아 병사들의 영웅적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휘관님들은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나, 바랴그 호의 승조원들은 오히려 흥분된 모습이었죠. 바랴그 호의 승조원들은 쓰고 있던 모자를 공중으로 집어 던지더니 신이 나서 서로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죠.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크게 질러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 소리가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듯한 문장의 형태를 갖추었죠. 승조원들은 짜르와 조국 러시아를 위한 찬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군악대 수령들이 악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105~106쪽)

일본 함대의 수적 우위 속에서 러시아 함대의 참담한 패배로 이어진 제물포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의 영웅성을 부각한 이유를 조국을 위하여, 짜르를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싸운 용기에서 찾고 있다.

한국인의 눈으로 다시 읽는 역사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던 일본과 러시아를 풍자한 그림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던 일본과 러시아를 풍자한 그림 ⓒ 작가들
당시 제물포에는 러시아나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의 군함들도 들어와 있었다. 개항장 제물포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제물포 주민이나 대한제국 사람들의 안전은 관심이 없었다. 치외법권으로 무장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력할 뿐이었다.

가스통 루르가 쓴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책에도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선전포고 전에 공격을 했던 일본에 맞서 싸운 러시아 해병들의 영웅적 무용담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할 이유가 있다. 개항을 전후해서 전개된 역사의 급류 속에서 중심을 잃고 표류했던 우리의 모습을 아프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이 러시아의 관점에서 제물포 해전을 서술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사라진 우리들의 시각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최원식 교수는 추천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제국주의의 시선에 조선과 제물포는 없다. 아니 인천도 없다. 이 책에도 조선과 조선인, 인천과 인천인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한계 때문에, 이 책을 오늘의 한국인, 오늘의 인천인의 눈으로 다시 감아 독해하는 작업은 중요하다.(8쪽)

덧붙이는 글 | 이 책은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인 이희환씨가 인천 근대사와 관련한 자료를 찾던 중 인터넷 고서점에서 발견하게 되어 국내에서 번역 출간하게 된 것이다. 번역은 이주영씨가 했다.


러일전쟁, 제물포의 영웅들 - 작가 가스통 트루의 르포르타주

가스통 르루 지음, Ar. 요한슨 그림, 이주영 옮김, 작가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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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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