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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장면 1
연극장면 1 ⓒ 김대갑

수전노는 총 5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막이 올라가면 아르빠공의 아들인 클레앙트와 딸 엘리즈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시키려는 계획에 대해 의논한다. 이미 두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상태인데, 아르빠공은 돈 많은 과부와 돈 많은 홀아비에게 자식들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르빠공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은 아니다. 철저히 자수성가한 사람이지만 문제는 너무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자식들마저 희생시키고자 하는 속셈이 너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자식들은 이런 아버지에 대해 비판자적인 입장이며, 탐욕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하고자 노력한다.

2막이 올라가면 클레앙트가 결혼자금을 빌리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클레앙트는 가난한 처녀 마리안을 사랑하는데, 아버지의 도움 없이 결혼하고자 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리대금업자가 너무 폭리를 취하려 하자 화를 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고리대금업자가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아르빠공 역시 아들임을 알고 엄청난 분노를 표방한다. 절망하는 클레앙트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3막은 마리안이 아르빠공의 집에 초대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르빠공은 아들과 마리안의 관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중매쟁이 프로진의 소개로 마리안과 결혼할 계획을 세운다. 마리안은 클레앙트를 보고 놀라게 되고, 클레앙트는 짐짓 모른 체 하면서 아버지의 보석반지를 마리안에게 선물로 주면서 슬며시 사랑을 고백한다.

아르빠공에게는 충실한 집사인 발레르가 있고, 역시 충실한 요리사이자 마부인 작크가 있다. 두 사람은 아르빠공의 하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집사인 발레르가 작크보다 언제나 한 수 위다. 두 사람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물로 나오는데, 그들의 성격 대립이 극 중간 중간에 나오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더군다나 발레르는 남 몰래 엘리즈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중이라서 흥미는 배가된다.

인간성 상실을 고발하는 몰리에르

피날레
피날레 ⓒ 김대갑

4막에서는 마리안을 둘러 싼 부자지간의 대립이 극에 달한다. 여기에서도 아르빠공의 탐욕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자신의 탐욕스런 성 욕구를 위해 아들의 애인을 가로채려는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몰리에르는 이런 아르빠공의 모습을 통해 물욕과 색욕에 물든 인간상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작크가 부자지간의 중개인임을 자임하여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서로의 의지를 왜곡되게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하이라이트이자 절정인 5막! 아르빠공의 집안은 잃어버린 돈 상자 때문에 폭풍 전야의 위험스런 상태를 맞고 있다. 절망에 빠진 아르빠공. 그가 목숨보다 아끼는 돈 상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이 돈 상자는 클레앙트의 하인인 리플래쉬가 훔쳐가서 클레앙트에게 전달된 상태이다.

발레르에게 늘 당하기만 했던 작크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발레르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서장을 부른 아르빠공은 당장 발레르를 체포하라고 하지만 발레르의 치밀한 반박논리에 의해 오히려 작크가 궁지에 몰린다. 발레르는 아르빠공에게 딸 엘리즈와 사랑하는 사이임을 고백한다. 이때 아르빠공이 딸 엘리즈와 결혼시키려고 계획한 돈 많은 늙은이 앙셀므가 등장한다.

앙셀므는 우연히 발레르와 마리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고 두 사람이 자신의 친 자식임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약간의 반전이 일어난다.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생경함을 느끼게 되고 절정으로 치닫는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몰리에르의 기교가 살짝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드디어 클레앙트가 돈 상자를 들고 등장한다. 클레앙트는 돈 상자를 미끼로 아버지와 일대 흥정을 벌인다. 마리안과 자신, 발레르와 엘리즈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수전노인 아버지는 돈 상자 앞에서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그에게는 색욕보다 물욕이 앞섰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보다는 돈에 대한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돈 상자를 안고 하염없이 감격에 겨운 아르빠공. 모든 사람들이 인간애에 충만하여 서로의 손을 잡고 돌아 설 때 아르빠공은 돈 상자를 부여안고 커다랗게 외친다.

"난 돈이 좋아. 왜냐고? 돈은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무대에서 생을 마친 작가 몰리에르

난 돈이 좋아!
난 돈이 좋아! ⓒ 김대갑

돈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허공을 향해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겨준다.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그의 무식한 욕구에는 조소가 터져 나오고 물욕에 인간성을 상실한 그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1668년 9월 9일에 팔레 로양(왕실)에서 초연된 수전노는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적 감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약 340년 전에 탄생한 연극이 어찌 이리도 현대 사회를 잘 풍자하는지.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시대를 넘어 보편적인 주제를 암시하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단지 머리 속에서 희곡을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의 모습을 잘 관찰하여 다양한 인간상을 표현한 몰리에르. 그는 이외에도 <타르튀프>나 <동 쥐앙>, <인간혐오자>등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나는 희곡을 창작했다.

흉부 질환을 앓는 상태에서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에 출연하다가 기침 발작을 일으킨 몰리에는 통증을 무릅쓰고 무사히 공연을 마친다. 그러나 그는 집에 돌아가서 심한 각혈 끝에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일생을 연극과 함께 살다가 연극처럼 생을 마친 몰리에르. 그의 작품 마다 묻어 있는 인간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먼 후일에도 십자성처럼 빛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전노는 3월 15일에서 17일까지 부산시립극단이 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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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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