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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야영의 아침. 아침은 꿀물과 낭 한 조각. 그리고 수박
타클라마칸 야영의 아침. 아침은 꿀물과 낭 한 조각. 그리고 수박 ⓒ 오창학

꿀물과 낭 한 조각으로 맞은 타클라마칸의 아침

타클라마칸 야영의 아침. 밤새 짐승처럼 울어대던 바람의 흔적은 간 데 없다. 백구 지붕에 얹힌 루프텐트에서 잠 덜 깬 눈으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마냥 포근하다. 패드의 안락함과 높은 구조물의 안전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눈을 떠 텐트의 지퍼를 벌렸을 때 안으로 밀려드는 바깥 풍경의 맛을 위해 지붕에 이 녀석을 얹고 다닌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낭 안에서 한참을 뭉기적거리다 사다리를 내려온다. 아직 일행들이 일어나지 않은 시간. 숙영지 주변을 하릴 없이 배회하는 맛도 제법 맛깔스럽다. 어딜 봐도 정말 똑같은 지평선이고 굵은 모래의 사막은 푸석거리지만 어떤 정원보다도 정감이 가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사막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은 자라서 느끼는 감회일까, 누구라도 이 자리에 서면 같은 감정일까?

아침은 꿀물과 낭 한 조각. 낭은 이젠 굳어서 딱딱한 누룽지처럼 느껴진다. 억지로 입 안에 넣고는 더운 꿀물을 마셔 녹인다. 따뜻할 때의 낭은 여느 과자 부럽지 않았는데 지금은 생존을 위해 우겨넣을 뿐이다. 투정한다고 별 수 있으랴. 이 황량한 곳에서 먹을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마울 뿐. 그나마 수박이 있어 아침이 풍성하다.

2호차와 헤어질 때 비상식량을 나눠 실을 걸… 그러나 그 땐 그럴 수 없었다. 고장 수리를 위해 남아야 하는 차로부터 부식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짓이냐. 마치 긴 이별을 미리 준비하는 것 같아 방정맞기 이를 데 없다. 어쩌면 나누지 못 한 것이 아니라 나누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햇반과 각종 통조림, 미역국, 육개장, 라면, 그리고 쌀과 기타 부식들, 간식들… 부실한 아침을 앞에 두고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 때면 2호차에 두고 온 먹거리들을 넘어 생각이 2호차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 잘들 지내고 있을까? 정말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운이 좋다면 복귀할 때 교차하는 란저우에서, 어긋나더라도 내몽고 도시 어디쯤에선 접촉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도 톈진에서는 만날 수 있겠지? 다들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아듀, 타클라마칸!

아듀, 타클라마칸. 지평선 따라잡기 놀이가 끝나고 나면 어느 새 아얼진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듀, 타클라마칸. 지평선 따라잡기 놀이가 끝나고 나면 어느 새 아얼진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오창학

다시 지평선 따라잡기 놀이 시작이다. 아듀, 타클라마칸! 비록 더디지만 어느 순간엔가 지평선 끝에 닿으면 바로 아얼진(阿爾金) 산맥의 자락일 것이다. 이젠 길었던 타클라마칸의 일주도 끝을 맺는가 보다.

뤄창 기점 80km 지점에서 아얼진으로 진입하는 길을 약간 헤맸다. 아얼진 산 방향으로 제대로 들어왔다 싶은데 바람이 몹시 분다. 그냥 부는 정도가 아니라 지상의 모래를 한바탕 헤집으려 작심한 것 같다. 이제 타클라마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할 시점에서 카라부란으로 고별인사를 받는다.

'사막의 고별인사, 카라부란'

카라부란. 타클라마칸의 고별인사다
카라부란. 타클라마칸의 고별인사다 ⓒ 오창학

카라부란. 검다는 뜻의 '카라(Kara)'와 바람 '부란(Buran)'이 합쳐진 말로 이 바람이 한 번 휩쓸면 한낮에도 온 천지가 칠흑같이 어두워진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도 기차를 전복 시키고 차를 휘저으며 이름값을 한다는 녀석.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카라부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제 정신을 잃고 망연자실해진다. 때로는 노랫소리가 들리고 때로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여온다. 그 소리를 따라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행 도중 죽음을 당했다. 이것은 모두 악마와 요괴들의 짓이다."

20세기 초 타클라마칸을 탐험한 독일의 폰 르콕도 현장과 비슷한 묘사를 했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모래와 자갈이 공중으로 올라가 소용돌이치며 사람과 동물을 덮쳤다느니, 마치 모든 게 지옥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느니 하며.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아직 그런 류의 바람은 만나질 못했고 모래바람이 얼마나 차체를 휘두를 수 있는지, 얼마나 시계를 흐리게 만들 수 있는지만 실감할 뿐이다.

대형 트럭 하나가 모래 바람과 흙무덤 속에 바퀴가 빠진 채 허우적대고 있다. 30cm가 족히 넘을 것 같은 흙이 길이라 말하기 어려운 길을 다 덮고 있다. 도로 공사장의 인부가 우리더러 다른 길로 우회하라 이른다.

"그래야 할까?"
운전석에 있던 아내가 묻는다.
"아니. 갈 수 있어"
내가 답한다. 그리곤 아내와 자리를 바꿨다. 옆자리의 철봉씨가 안도하는 표정이다. 명색 '팀장'의 직함을 쓰고 있고 차량과 험지에 대해 이것저것 아는 체를 하는 자가 운전석에 앉으니 나름 기대하는 눈치다. 흠흠… 이러다 흙덩이 위에 얹히면 민망한 노릇인데.

사륜모드를 4L에 놓고 천천히 액셀에 힘을 가해 RPM을 높인다. 백구가 먹잇감을 쫓듯 흙구덩이를 뭉개며 앞으로 내달린다. 바퀴에 느껴지는 저항이 만만찮지만 엔진 회전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기어이 그 구간을 빠져나왔을 때 내 마음이 우쭐하다. 트럭에 매달린 사람들도 인부도 놀란 눈으로 우릴 보고 있다…고 믿었지만 모래바람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존재하고 나는 다만 나아갈 뿐. 자만도 자괴도 다 내 맘 속에만 있는 것.

가지 않은 길, 아얼진을 향해

아얼진산을 향해
아얼진산을 향해 ⓒ 오창학

노오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인지라 오랫동안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곳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감으로 해서
그 길도 끝내는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가 적어
아무에게도 더렵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었으므로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아얼진산 기슭까지 50여 km를 오른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겠다고 실크로드까지 차를 움직여 달려왔다. 분명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나도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젊은 날 어려운 길에 도전했던 그 선택이 옳았다고.

아얼진을 넘으며. 여행 내내 부담으로 남겨둔 난코스치고는 순조로운 진행이다
아얼진을 넘으며. 여행 내내 부담으로 남겨둔 난코스치고는 순조로운 진행이다 ⓒ 오창학

계속 산을 향해 오르고 계곡을 지난다. 때로는 물을 차고 지나며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차는 요동하고 길은 순탄치 않다. 내 생애 언제 4000m가 넘는 산 중의 비포장 험지를 넘을 일이 있을까. 727년 혜초가 파미르고원을 넘을 때의 심경도 나와 같았나 보다. 이런 시를 남긴 걸 보니.

길은 험하고 눈 쌓인 산마루 아스라한데
험한 골짜기엔 도적 떼가 길을 트누나
새도 날다 가파른 산에 짐짓 놀라고
사람은 기우뚱한 다리 넘기 어렵다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 없는 내이건만
오늘만은 하염없는 눈물을 뿌리는 구나


그러나 백구에 빨간 리본까지 매며 아얼진의 악명에 긴장한 것에 비하면 별반 어렵지 않은 길이다. 나름대로는 바퀴 한쪽만 잘못 딛어도 천 길 낭떠러지에 추락하고 칼바위들이 솟아 진로를 방해하며 4000m가 넘는 고도는 호흡을 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만 집중하면 어떤 사고도 없이 넘을 수 있는 길이다. 사람 넷에 400kg의 짐을 실은 차는 숨가빠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치고 오르기에 곤란한 지경은 아니다.

그나마도 산 중 곳곳이 도로공사 중이어서 도처에 인부들의 천막이 있고 어디선가 돌 깨는 폭음이 들린다. 머지않아 이 깊은 산 속에도 반질반질한 315번 도로가 놓이리라.

아얼진 넘을 때만큼은 나훈아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여행 내내 김광석의 노래에 파묻혀 살았는데 왜 이 구간에서 나훈아가 그리운 것이냐. '노래의 멋쟁이', 나훈아에 대한 교수님의 표현이다. 교수님의 가수는 남인수다. '진정한 목소리', 그에 대한 교수님의 평.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고봉준령과 나훈아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허나 나훈아도 남인수도 이 차엔 없다. 한국에서 CD를 챙긴다고 챙겼는데 그의 곡은 쏙 빠졌나보다. 들을 수 없으니 더 그립다.

드디어 아얼진을 넘다

아얼진산에서의 점심. 왕후의 밥, 걸인의 찬......그냥 강사부 컵라면
아얼진산에서의 점심. 왕후의 밥, 걸인의 찬......그냥 강사부 컵라면 ⓒ 오창학

오후 1시 40분. 간만에 탁 트인 공간을 만나 점심을 위해 차를 세운다. 식단은 강사부(康師傅) 컵라면. 우리 나라의 신라면처럼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라면이다. 키질석굴에서 그 첫맛을 본 이래 스프 하나를 빼고 먹으면 우리 입맛에 가장 적합한 라면이라는 결론을 얻어 공식 채택한 야영지 식단이다. 낭, 라면, 낭, 라면… 영양을 고려한 안배?

취사도구와 비상식량이 2호차에 있었지만 다행히 백구에도 알코올버너가 있었기에 호탄에서 싼 싸구려 냄비로 물을 끓일 수는 있다. 그늘 없는 맨바닥에서 컵라면을 드시는 교수님 모습에 맘이 뭉클하다. 나야 이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순번이 되면 한 치의 미룸도 없이 꼬박꼬박 운전석에 앉으시고 입에 안 맞는 중국음식이지만 싫은 내색 없이 비우신다. 생각해 보니 그 어느 때 한 번 '동지'가 아닌 적은 없었다. 지금도.

드디어 아얼진산의 끝이 보인다. 이제 이 경계를 넘으면 칭하이성(靑海省)이다
드디어 아얼진산의 끝이 보인다. 이제 이 경계를 넘으면 칭하이성(靑海省)이다 ⓒ 오창학

점심을 먹고 나선 자꾸 졸음이 쏟아져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다. 고맙게도 아내가 교대해 준다. 아직 험지를 다 빠져나간 게 아닌데 아내에게 미안하다.

풍랑을 만난 배처럼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단잠을 잤다. 얼마를 잤을까. 눈앞에 나타난 신천지. 구불거리는 산길이 끝나고 비포장 저쪽에 마지막 산 하나가 놓여있다. 그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의 머리 장식. 드디어 아얼진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뤄창발 240km 지점에 주유 가능한 칭하이성(靑海省) 경계마을 망야(茫崖)에 닿았다. 도대체 이런 곳에 마을이 형성될 수 있는가 했더니 자연 취락지는 아니고 석회와 유전을 위한 일종의 공업기지다.

그러니 오늘 달린 거리 중 사람이 없는 무인 산악지대 구간은 고작 200여 km인 셈이다. 그런데도 5시간이나 걸렸다. 겨우 산맥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기후가 다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임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서늘한 날씨. 우리도 긴팔 옷을 꺼내 입었지만 여기 사람들은 거의 겨울 복장을 방불케 한다. 연료도 -10짜리를 팔고 있다. 어는점이 낮은 경유다. 그래도 칭하이 지역의 여름 평균 기온이 8~16도라 하는데 여긴 조금 더 일찍 추워지는 가보다.

이동한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사막과 산악지형을 달리느라 연료소모가 컸던지 연료계 눈금이 반 이하로 떨어져 있어 주유를 해야 할 상황이다. 아직은 연료가 바닥날 때쯤이면 항상 주유소가 나타나 주었지만 언제나 그러기를 기대하는 건 위험하다. 채울 수 있을 때 채워둬야 한다.

길이 험하긴 험했던지 백구 후면의 중국임시번호판이 떨어지기 직전 상태로 덜렁거린다. 중국을 나갈 때 다시 반납해야 되는데 이거 잃어버렸다간 무슨 고초를 겪을지 모를 일. 이걸 고정하기 위해 철사를 얻으러 주유소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본 여주유원 숙소의 처참한 광경 판자 침대 3개, 그리고 적어도 5년 이내에는 빨지 않았을 것 같은 때 절은 솜이불. 그 침대들 주변으로 놓인 공구와 자재들. 메케한 냄새와 사무실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 이들이 이 생활을 감내하며 티벳 자락 고원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뭘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인간사 고행의 태반은 물질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겠나.

뤄창 기점 300km지점인 후아토구(花土泃)에 도착한 게 오후 6시. 후아토구는 황량하다. 오는 길에 자주 목격한 유전굴착기들을 보고서야 왜 이런 황량한 고원 사막지대에 이런 마을이 들어섰는지 이해가 갔다. 더군다나 망야 이후론 줄곧 포장도로다. 렁후(冷湖)·유사산(油沙山)·유취안쯔(油泉子)·다차이단(大柴旦)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이곳의 유전은 커라마이(克拉瑪依)·위먼(玉門)과 함께 중국 북서 지구의 중요한 석유 기지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인 내외가 시안에서 왔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줄무늬가 계속 번지는 흑백텔레비전에선 중국어로 더빙된 <겨울연가>가 한창이다. 신장의 위구르어 더빙에서 이런 오지의 한어 더빙까지 한국드라마가 인기다.

시닝(西寧) 1277km

후아토구를 나서 라오망야를 향해 가는 길에 본 표지판. ‘시닝(西寧) 1277Km’ 대륙에 나와보길 잘 했다
후아토구를 나서 라오망야를 향해 가는 길에 본 표지판. ‘시닝(西寧) 1277Km’ 대륙에 나와보길 잘 했다 ⓒ 오창학

오후 7시. 후아토구르를 떠난다. 아직은 포장도로. 곧 거얼무까지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겠지. 드넓은 지평선에 눈을 맞추고 주행하는데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라오망야(老茫崖) 5km' '시닝(西寧) 1277km'

눈이 확 뜨인다. 1277km… 얼마나 보고 싶었던 표지인가. 곧게 뻗은 길 1277km. 대륙으로 차를 움직여 나오기 전까진 저런 표지판이 존재하리란 생각을 못했다. 큰 변수가 없다면 내일 모레나 글피쯤엔 저 곳에 닿아 있을 것이다.

후아토구에서 96km지점. 라오망야(老茫崖)를 지나 더링하(德令合) 가는 길을 버리고 드디어 거얼무(格爾木) 가는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다. 톈수이(天水)의 맥적산 석굴 가는 길이 군사훈련상의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얼진 넘어 더링하로 들어가는 포장도로 역시 군사기지 때문에 허가가 나지 않았다. 때문에 거얼무 비포장 노선으로 움직여야 했던 것이지만 더링하 경유 노선이 가능했다 할지라도 나는 비포장길을 택하였을 것이다.

"나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포장되지 않은 길은 비실용적인 대신 자연에 가깝다. 흙과 아스콘으로 선명하게 나뉘는 대신 풍경의 일부로 남을 수 있는 길이 비포장 길이다. 그러나 아얼진산을 관통하는 도로공사와 맥을 같이 해 머지 않은 때에 이 길도 매끈한 아스팔트길이 생겨날 것이다.

모래에 빠진 차를 꺼내 주었다. 잠깐의 봉사로 마음은 부자다
모래에 빠진 차를 꺼내 주었다. 잠깐의 봉사로 마음은 부자다 ⓒ 오창학

아얼진산맥을 넘으면 그리하여 신장을 벗어나 칭하이성에 들어서면 티벳의 자연과 바람을 접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막이다. 다만 고도가 높아진 관계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 에어컨의 작동을 중지시켜야 했던 것이 다를 뿐이다. 사막 가운데 뻗은 비포장도로는 공사를 위해 군데군데 끊겨 있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길을 잘못 들었다가 돌아 나오려는데 모래에 빠진 미쯔비시 픽업이 보인다. 처음엔 정차한 차인줄 알았는데 운전자가 공사장에서 삽을 빌려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빠진 줄을 알았다. 일부러 차를 대고 견인 바로 두 차를 연결했다. 가볍게 꺼내주니 답례로 감사의 담배를 권한다. 담배를 안 피운다는 이유로 중국인의 호의를 번번이 거절했던 게 미안하기도 해서 이번엔 넙죽 받아 귀에 걸어놓는다. 어깨가 으쓱하다. 오늘 한국인의 좋은 이미지 하나 심었다. 모래에 빠지지 않는 백구가 대견하다.

오늘도 사막 한 켠에 둥지를 틀었다
오늘도 사막 한 켠에 둥지를 틀었다 ⓒ 오창학

오후 9시. 거얼무행 분기점 30여km 지나는데 해가 기운다. 숙영지를 찾아 사막지대로 들어섰다. 이번 모래는 더 깊어서 차 바퀴자국이 깊게 패인다. 빠질 듯 빠질 듯 도착한 오막한 분지. 또 사막 한 켠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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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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