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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범죄피해자 인권보호' 토론회
27일 국가인권위에서 열린 '범죄피해자 인권보호' 토론회 ⓒ 오마이뉴스 이민정

"성폭력 피해자인 아이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을 때는 항상 공개된 장소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대질 조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사 뒤에는 가방 검사를 하면서 '조사 내용을 녹음하지 않았느냐, 만약 했으면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고 추궁했습니다.

아이에게 사고 상황을 그대로 재연시키고, 많은 사람 앞에서 옷을 벗어 재연을 요구했습니다. 직접적인 성적 표현을 하게 하고, 가해자(여)의 성기를 그리라고 하면서, 엄마의 그것과 비교하도록 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아동을 둔 곽희영씨(미성년성폭력피해자부모모임 회장)는 떨리는 목소리로 지난 2002년부터 3년간을 회상했다. 곽씨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27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범죄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한 토론회'에서 털어놓았다.

"세 시간, 두 달... 경찰은 연락이 없었다"

2002년 11월 곽씨의 아들(당시 만 5세)은 4개월간 돌봐주던 지인에 의해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다. 아이의 이상 행동이 계속됐고, 이유를 묻자 아이는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어렵게 입을 뗐다. 사건이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난 뒤였다.

곽씨는 2003년 9월 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 때부터 피해자인 아이와 부모에게 또다른 고통이 시작됐다.

그는 "아이가 진술을 하면 '엄마가 교육시킨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며 "대질조사 이후에는 가방을 뒤져 녹음 여부를 물었고, 만약 녹음을 했다면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겁을 줬다"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2003년 10월 9일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세 시간을 기다려도 담당 형사는 오지 않았다"며 "그 뒤 10월 14일 첫 조사를 받았지만, 도중에 담당 형사가 '볼일이 있다'며 나간 뒤 두 달간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가해자가 아이 옆에서 해코지를 해도 어떤 보호도 해주지 않았다"며 "점심시간 가해자가 아이를 밀쳐서 계단에 떨어질 뻔한 사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다녔지만, 검찰이 합의를 유도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주는 바람에 또다시 이사를 가야했다"고 토로했다.

범죄 피해, 그 후...

결국 가해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곽씨는 2005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두달만에 기각 판정을 받았다. 한편 피해자인 곽씨의 자녀는 지금까지 외과·정신과 치료 등을 받고 있다.

곽씨는 "아이가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으로 난폭해졌다"며 "자기보다 약하거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입맞춤을 하는 등 성적 표현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도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곽씨는 "경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 등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고통받고 있다"며 "우리는 피해를 입었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고 미성년성폭력피해자부모모임의 결성 배경을 밝혔다.

곽씨는 이 외에도 ▲아이들에게 현장 검증을 시키는 점 ▲피해 아동에 대한 진료확인서나 입원 기록을 인정해주지 않는 점 ▲전문가 견해를 참고하지 않는 점 ▲지나치게 긴 수사 진행기간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상담은 상담자의 인격만큼 진행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곽씨와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상담-의료 및 법률지원-검·경 등 유관기관간의 연계, 상담자와 수사관 등 담당자의 전문성과 의식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 확대 등을 주문했다.

이미경 성폭력상담소장은 "범죄피해자 지원에 있어서 '상담은 상담자의 인격만큼만 진행된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상담자뿐만 아니라 의료진, 법조인들의 인격, 수사관들의 인권 감수성 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범죄 유형별로 피해자들이 겪는 특별한 상황과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은 피해자 지원에서 기본"이라며 "담당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보장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경석 법무부 인권국 구조지원과장은 "법무부는 지난 2004년 9월부터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강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만들어 관련 법령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며 "또한 대검찰청과 연계해 전국 55개 검찰청 관할별로 민간자원봉사단체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올해부터는 피해자 보호 및 진술권 강화, 피해자와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의 동석 허용, 인권국 내 범죄피해신고 전화 및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보호 및 지원 네트워크 구축 등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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