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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같은 봄철에야 봄쑥에 도다리 넣고 끓이는 도다리쑥국이 최고 아입니꺼
ⓒ 이종찬
이른 봄 도다리와 쑥이 만나면
니 몸 싸하게 감돌던 향기가 난다
지친 마음 포근히 감싸는 니 입김 뽀얗게 피어오른다

니가 바다와 눈 맞추며 쑥쑥 자라나는 쑥이라면
나는 니게로 달려가는 날쌘 도다리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이 봄밤 하나로 무너지고 싶다

니 나의 오랜 만남도 이 같으면 참 좋으련만
봄이 되어도 고된 세상살이에 토닥토닥 싸우기만 하는
니 나의 아프고도 서글픈 사랑이여

- 이소리, '도다리와 쑥이 만나면' 모두


▲ 꽃피는 봄을 맞아 남녘 바다에 사는 도다리가 살이 오를 대로 통통하게 올랐다
ⓒ 이종찬
도다리쑥국 맛 볼 수 있는 때는 이른 봄 한 달 남짓뿐

이른 봄, 마른 풀숲 헤집으며 빼꼼히 올라오는 연초록빛 쑥이 땅 위의 봄을 알려주는 반가운 손님이라면 푸른 바다의 봄을 날쌔게 몰고 오는 반가운 손님은 향긋한 도다리다. 예로부터 남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봄이 다가오면 '땅 위엔 쑥, 바다엔 도다리'라 하여 도다리쑥국을 즐겨 끓여 먹었다.

도다리쑥국은 향긋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이 아주 깊고 시원하다. 이는 이른 봄에 캐는 어린 쑥이 웃자란 쑥과는 달리 향기가 은은하면서도 상큼한데다, 이른 봄이 되어야 살이 탱글탱글 꽉 차오르면서 알을 듬뿍 배는 도다리의 향긋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봄맛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 년 중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는 때는 이른 봄 한 달 남짓뿐이다. 봄이 점점 깊어가면서 쑥이 웃자랄 때가 되면 도다리도 향긋한 맛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도다리쑥국을 아무리 정성 들여 끓여도 맛이 별로 없어진다. 바로 이 때문에 남녘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봄이 다가오기 무섭게 도다리쑥국을 끓인다.

남녘 바닷가 사람들은 도다리쑥국을 끓여 먹어야 춘곤증을 막을 수 있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고 여기는 것이다. 더불어 이 지역 사람들은 도다리쑥국을 끓일 때부터 지난 겨우 내내 묵혀두었던 농기구와 어구들을 꺼내 꼼꼼하게 손질을 한다. 그리고 이른 새벽이면 들녘과 바다로 나가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다.

▲ 미리 끓여놓은 맛국물에 토막 낸 도다리를 넣는다
ⓒ 이종찬
바다의 봄총각 도다리와 뭍의 봄처녀 쑥의 환상적인 만남

꽃피는 봄을 맞아 남녘 바다에 사는 도다리가 살이 오를 대로 통통하게 올랐다. 지금 남녘 바닷가 주변 식당 곳곳에는 도다리쑥국이 한창이다. 여기 들어가도 도다리쑥국, 저기 들어가도 도다리쑥국이다. 어쩌다 재수가 좋으면 연초록빛 맑은 도다리쑥국 속에 하얗고 동그란 알이 가득 찬 암컷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이 뒤따르기도 한다.

바다의 봄 총각 도다리와 뭍의 봄 처녀 쑥은 이른 봄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특히 춘곤증 때문에 입맛을 잃어버리기 쉬운 봄철에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도다리와 들녘 곳곳에 돋아나는 여린 햇쑥을 넣어 끓이는 도다리쑥국은 은은하게 감도는 쑥 향기와 깔끔하고도 맑고 시원한 도다리 국물이 어우러져 으뜸의 봄맛을 낸다.

하지만 도다리쑥국은 이른 봄 남녘 바닷가 사람들이 아니면 쉬이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왜냐하면 광어와 짝퉁인 봄 도다리는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도다리는 양식을 한다 하더라도 어미 물고기로 키우는 데 3∼4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어민들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도다리는 맛이 워낙 좋아 잡힐 때마다 어민들이 먼저 먹어치우기 바쁘다.

오죽, 봄 도다리의 맛이 뛰어났으면 남녘 바닷가 사람들이 광어가 횟감으로 으뜸인 줄 알고 광어회만 찾는 수도권 사람들을 바라보며 은근슬쩍 돌아서서 "봄 도다리의 향긋한 맛도 모르는 사람들이 회 맛을 어민들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광어만 줄기차게 찾는다"며 비웃기까지 하겠는가.

▲ 싱싱한 멍게와 해삼, 마른 김, 민물게장, 양념조개, 채소셀러드, 냉이무침 등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온다
ⓒ 이종찬
▲ 연한 초록빛이 감도는 맑은 국물 속에 파아란 쑥향이 향긋하게 피어오른다
ⓒ 이종찬
도다리쑥국은 맛국물에 도다리와 쑥

"요즈음 색다른 음식을 선보이는 게 있나요?"
"아, 요즈음 같은 봄철에야 봄 쑥에 도다리 넣고 끓이는 도다리쑥국이 최고 아입니꺼."
"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지금 가더라도 도다리쑥국을 맛볼 수 있습니까?"
"퍼뜩 오이소. 그렇찮아도 알 밴 도다리 암컷이 한 마리 남았는데, 이 귀한 거로 우짜꼬(어찌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잘 됐습니더. 아까 낮에 캔 쑥도 쪼매(조금) 남아 있고."


지난 2월 26일(월) 밤 9시, 우리나라 곳곳의 독특한 맛을 찾아다니는 맛객 김용철 기자와 여행작가 김정수 기자와 함께 들렀던 한 생선회 전문점. 계절에 따라나오는 생선으로 맛깔스런 조리를 잘 만든다고 입소문이 많이 난 이 집은 나그네가 입맛이 없을 때마다 자주 들르는 식당이기도 하다.

이 집의 주인 김숙이(44)씨는 "도다리쑥국은 도다리가 아무리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제맛이 들었다 하더라도 요즈음 마악 나오는 햇쑥을 넣지 않으면 제맛을 내기가 어렵다"고 귀띔한다. 꽁꽁 얼었던 땅을 막 뚫고 나오는 햇쑥이 향기가 은은해 향긋한 봄도다리와는 어쩔 수 없는 찰떡궁합이라는 것.

김씨는 "조금 더 지나면 도다리쑥국을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며 "도다리쑥국에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냄비에 맑은 물과 다시마, 납짝하게 썬 무 몇 조각 넣고 맛국물을 낸 뒤 싱싱한 도다리를 토막 내 넣고, 어린 봄쑥과 송송 썬 대파, 매운 풋고추, 빻은 마늘, 집된장 조금 풀어 다시 한번 팔팔 끓이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 어린 봄쑥 속에는 봄 도다리 속살과 자잘한 도다리알들이 하얗게 빛난다
ⓒ 이종찬
▲ 도다리알을 입에 넣자 그대로 혀끝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 이종찬
초록빛 감도는 맑은 국물 속에 파란 쑥향 가득

도다리쑥국을 만드는 순서를 살펴보기 위해 주인 김씨를 따라가자 김씨가 수족관에서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싱싱한 도다리 한 마리를 꺼낸다. 온몸을 마구 비틀며 파닥거리는 게 힘이 아주 좋다. 하지만 잽싸게 동그란 도마 위에 도다리를 올려 손질하는 김씨에게 알이 통통하게 밴 도다리의 거센 몸부림도 금세 끝이 난다.

이윽고 김씨가 미리 끓여놓은 맛국물에 토막 낸 도다리를 넣고 향긋한 쑥 몇 줌과 갖은 양념을 집어넣자 어느새 식당 곳곳에 향긋한 도다리쑥국 내음이 폴폴 넘치기 시작한다. 소주 한 병 시키자 싱싱한 멍게와 해삼, 마른 김, 민물게장, 양념조개, 채소샐러드, 냉이무침 등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온다.

이어 소주 한 잔 채 다 마시기도 전에 뒤따라 나온 도다리쑥국. 연한 초록빛이 감도는 맑은 국물 속에 파란 쑥향이 향긋하게 피어오른다. 어린 봄 쑥 속에는 봄 도다리 속살과 자잘한 도다리알들이 하얗게 빛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다리쑥국을 한술 떠서 입에 넣자 금세 입속에 향긋하고도 상큼한 봄바다가 출렁이는 듯하다.

소주 한 잔 잽싸게 털어 넣고 도다리쑥국에 든 도다리알을 입에 넣자 그대로 혀끝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시원하고도 깔끔한 뒷맛을 내는 국물맛도 그만이다. 하얀 도다리 속살도 아주 연하고 부드럽다. 뭍에서 자라는 어린 봄 쑥과 바다에서 자라는 봄 도다리가 서로 어우러져 이렇게 독특하고도 기막힌 맛을 내다니!

▲ 해묵은 겨울을 순식간에 싸악 씻어내리고 온몸에 향긋한 봄을 심는 도다리쑥국
ⓒ 이종찬
"봄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향긋한 도다리쑥국 이기 나그네의 발목을 꼬옥 붙잡고 통 놔 줄 생각을 안 하네. 그래. 땅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도다리쑥국 이걸 애인 삼고 술을 이불로 삼아 이 상큼한 봄밤을 한번 꼬박 새워 볼까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해묵은 겨울을 순식간에 싸∼악 씻어내리고 온몸에 향긋한 봄을 심는 도다리쑥국. 그래.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남녘 바닷가 사람들의 이른 봄철 특미인 도다리쑥국 한 그릇 먹어보자. 땅과 바다가 만나는 향긋한 도다리쑥국 먹으며, 양극화로 치닫는 이 세상살이도 하나로 어우러지기를 간절히 빌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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