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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을 달리는 길가의 과일가게
ⓒ 이승철
우리일행을 태우고 고대동굴도시 패트라를 출발한 버스는 모세의 샘을 지나자 다시 사막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산악지대를 벗어나자 나타난 평야지대 사막은 마치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말라비틀어진 작은 나무들과 풀이 누렇게 변색되어 모래바람을 뒤집어쓰고 있는 처참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 막막한 사막에서 염소와 양을 치는 베두인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쩌다 나타나는 목동들은 수십, 수백 마리나 되어 보이는 염소와 낙타를 몰고 지나가는데 그 동물들이 무엇인가를 뜯어먹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저 말라비틀어진 사막에서 무엇을 뜯어먹는단 말인가. 도로변 사막에서는 낙타나 당나귀를 끌며 지나가는 베두인들이 정말 신기루처럼 가끔씩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 당나귀를 끌고 사막을 걷는 베두인
ⓒ 이승철
▲ 버스안에서 바라본 사막의 염소떼와 베두인목동
ⓒ 이승철
"자! 잠시 후에 과일가게 앞에서 잠시 쉬겠습니다. 이곳 과일은 값도 싸고 맛도 좋습니다. 과일을 살려면 이곳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가이드 안 선생의 말이었다. 버스는 막막한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과일을 사라니, 모두들 창밖을 내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나 잠시 후 버스는 황량한 도로변에 멈춰 섰다.

"가게는 저쪽 편에 있습니다. 길을 건너는 것이 위험하니 조심하십시오."

그의 말을 들으며 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길 건너편에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과일가게였다. 그것도 아주 많은 과일과 채소들이 쌓여 있는.

"오늘은 제가 과일을 사겠습니다."

일행들 중에서 한 부부가 먼저 과일을 사겠다고 자원한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는 상당히 많은 차량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서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기가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 사과는 작고 못생겼을 뿐만 아니라 맛도 우리사과와는 비교도 안 된다.
ⓒ 이승철
▲ 피망과 가지, 가지가 우리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 이승철
길을 건너 과일가게에 들어서자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이 엉거주춤 일어나 우리들을 맞이한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것과는 달리 가게 안에는 과일과 야채가 푸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과일은 오렌지와 사과 외에 포도가 있었는데 길가에 쌓아놓은 토마토가 제일 풍성해 보였다.

주인은 여러 명의 외국인들이 몰려들자 맛을 보라고 과일을 내놓는다. 주인이 내놓은 과일들 중에서는 역시 포도 맛이 일품이다. 다른 과일들도 맛이 좋은 편이었지만 듣고 있던 소문처럼 사막의 포도는 아주 특별한 맛이었다.

비가 별로 내리지 않는 사막의 기후에서 자란 과일들이어서인지 과일들은 대체로 달고 맛이 좋았다. 햇볕을 많이 받아 당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포도도 신맛 보다는 단맛이 월등히 높아서 신맛을 싫어하는 일행들이 특히 좋아한다.

"아니 그런데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런 과일이 나온대요?"

일행들 중에서 야채를 고르던 여성이 아무래도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묻는다.

"아! 이 과일들은 이곳에서 재배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여러분들이 지나갈 길이 되겠지만 요르단 강가에 아주 비옥한 땅이 많이 있습니다. 이 과일들은 그곳에서 재배한 것들입니다."

▲ 가게에 진열해 놓은 토마토
ⓒ 이승철
▲ 감자 모양도 우리 것과는 다른 것 같다
ⓒ 이승철
그럼 그렇지, 이 황량한 사막에서 어떻게 과일을 재배한단 말인가? 어디 물이 흐르는 곳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이 과일들은 상당히 먼 곳에서 재배하여 가져온 농산물들이었다.

"이 요르단은 사막이지만 요르단강 주변뿐만 아니라 곳곳에 농장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지하수와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있지요. 이곳을 출발하면 잠시 후부터 그런 농장들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일행들을 위하여 과일을 사는 부부를 도와 같이 과일을 고르고 나르는 동안 여성들 두 명은 야채를 고른다. 여행하는 동안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풋고추와 상추 등을 사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과일과 야채를 모두 모아놓고 보니 양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금액이 너무 높아지진 않을까 걱정했다. 일행들을 위하여 과일을 사는 부부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오렌지 맛은 끝내준다.
ⓒ 이승철
▲ 길 건너 과일가게와 뒷편의 마을풍경
ⓒ 이승철
그러나 그런 걱정은 공연한 기우였다. 오렌지 2박스와 사과 2박스, 그리고 토마토와 풋고추, 피망과 상추 등 야채를 한보따리 모아들고 값을 계산했지만 금액은 20달러가 안 됐다. 과일값을 계산하던 부부는 오히려 거스름돈 받는 것이 불편하다며 과일과 야채를 조금 더 사서 20달러를 채웠다.

"사막의 과일 값이 왜 이렇게 싸지요? 이집트의 나일강변 과일값이 싸다고 소문이 났는데, 이곳이 훨씬 더 싼데요."

버스 안으로 들어온 일행들은 과일값이 너무 싼 것이 도무지 믿기자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곧 과일이 모든 일행들에게 나누어줬다.

"히야! 이 달콤한 맛! 사막에서 나는 과일이 더 싸고 맛있네요."

모두들 과일 맛이 매우 좋다고 야단들이다. 이날 산 20달러어치 과일은 22명이 이틀 동안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달고 맛있는 과일을 나눠 먹으며 달리는 사막길은 막힘없이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달리자 사막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높지 않은 산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암만으로 가는 사막을 달리는 왕의 대로
ⓒ 이승철
"저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 세렛강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말라버려서 그냥 흔적만 보일 겁니다."

버스가 다리 위를 달렸다. 이른바 성경에 나오는 모압 지경의 세렛강이라고 했지만 이름만 강일 뿐,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개울 같은 건천이었다.

마른 강을 건너자 사막의 풍경은 다시 변한다. 나지막한 산지 이곳저곳에 올리브나무 농장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산지에는 소나무들도 자라고 있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가는 사막 길은 곧게 뻗은 길가에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들과 산지에 자라는 나무들이 막막한 사막의 풍경에 청량제처럼 시원한 느낌을 줬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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