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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고교 쪽에서 바라본 식장산
동신고교 쪽에서 바라본 식장산 ⓒ 김유자
18일 식장산에 다녀왔습니다. 식장산은 대전과 옥천에 이르는 높이 598m의 산으로 대전의 진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산이지요. 산이 그리워서라기 보다 독수리봉 아래 천길 벼랑에 피어있는 한 떨기 구절초 같은 절, 구절사가 그리워서 가는 거랍니다.

이 땅 대부분의 절이 산중에 자리잡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산의 깊고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태와 부처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이라는 분은 "산은 천연의 사원이다"라고 했다더군요.

그렇게 천연의 사원인 산 속에 세속을 여읜 절이 들어 앉았으니 절을 찾는다는 건 두 번의 씻김을 받는 거 아닐는지요? 불교 신자도 아닌 제가 산에 가면 꼬박꼬박 절에 들렀다가는 이유가 그런 거랍니다.

세천공원 입구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이정표에 표시된 대로라면 여기서 구절사는 약 4km 가량 되는 거리 반대편 기슭에 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이 아주 많습니다. 자연보호 운동하시는 단체들도 눈에 띄고 가족과 함께 삼삼오오 떼를 지어 산을 오르는 등산객도 보입니다.

세천저수지 가에 핀 노란 생강나무 꽃이 물빛에 어리어 아름답습니다.
세천저수지 가에 핀 노란 생강나무 꽃이 물빛에 어리어 아름답습니다. ⓒ 김유자
철탑사거리에서 구절사까지는 좌우에 수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올망졸망 살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5월이면 아카시아 나무들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서 이 산길을 자신의 향기로 가득 채웁니다.

부지런한 생강나무 노란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나서 아카시아 나무에게 너도 얼른 꽃을 피워 보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아카시아꽃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뿐입니다.

계곡을 건널 때마다 갯버들과 때죽나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구절사 첫 능선에 도착합니다. 구절사 첫 능선 사거리에서 구절사로 가는 길은 독수리봉 북면 산허리를 횡단하는 길입니다.

제가 대전 근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 가운데 하나가 이 구절사 첫 능선에서 구절사까지 0.7km 거리의 산길입니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산길이 고즈넉해서 좋고 봄의 신록이 좋고 가을의 단풍이 좋습니다. 특히 이 길의 단풍은 서서히 아주 곱게 져서 제가 보기엔 계룡산 단풍을 능가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 산허리 길로 6~7분 가면 자연동굴이 나타납니다. 냉동실처럼 시원한 굴 안에는 박쥐가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굴에서 10분 쯤 더 가면 독수리봉(580m) 북동릉 능선 마루 삼거리에 닿습니다. 여기서 내리막길로 300미터 가량 내려가면 독수리봉 아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구절사가 있습니다.

작고 소박해서 정감있게 다가오는 암자

간결함의 극치를 이루는 구절사 일주문
간결함의 극치를 이루는 구절사 일주문 ⓒ 김유자
거북 구자에 끊을 절, 그래서 구절사입니다. 구절사는 귀절사라고도 부릅니다. 거북 구 자를 '귀'로도 읽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봉 동쪽과 서쪽 봉우리 밑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창건 당시에는 영구암(靈龜庵)이라 했다고 합니다. 거북 모양의 다리 아래 있고 절 뒤에 확연히 끊어진 산자락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해서 구절사인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구절사를 길을 아홉 번 꺾어져서 이른다 해서 구절사, 아니면 가을 바위에 피어나는 구절초 같다해서 구절사라 부르고 싶답니다. 맨 처음 이 암자를 찾았을 때 저는 마치 '보물찾기' 끝에 마침내 보물이 적인 쪽지를 찾아낸 어린아이같은 기분이었답니다.

작은 나무 2개와 이를 가로지르는 나무 하나를 얹어놓은 간결한 일주문(?)을 지나 구절사로 들어갑니다. 구절사는 독수리봉 아래 마치 독수리가 품고 있는 알처럼 존재합니다. 부화를 기다리는 알은 고요하기 짝이 없습니다.

구절사 전경. 왼쪽 동그라미 안이 산신각, 오른쪽 동그라미 안이 칠성각입니다.
구절사 전경. 왼쪽 동그라미 안이 산신각, 오른쪽 동그라미 안이 칠성각입니다. ⓒ 김유자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인 구절사는 조선 태조 2년, 1393년에 무학대사께서 최초로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무학대사 자초가 산세를 보니 성현이 나올 만한 곳이라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후의 연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33년 청주에 사는 한병석 등의 신도들이 중건한 이후 부분적으로 불사를 진행하다가 1975년부터 성진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는 정도지요.

18년 동안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내려오다가 재작년에야 처음으로 주지 발령이 나서 혜도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고 해당 스님께서 전각을 돌보는 부전을 맡고 계신답니다.

한편 구절사는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속하지만 정작 상중리에서는 절로 오르는 길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 대전 운불련 소속 신도들의 노력으로 비로소 옥천 쪽 등산로가 개설되었다고 하는 말을 지난 겨울에 여기 왔을 때 부전인 해당 스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정신에 긴장을 불어넣는 낭떠러지의 전각

산신각과 칠성각
산신각과 칠성각 ⓒ 김유자
구절사는 전각들이라고 해봐야 성냥갑만한 칠성각과 산성각, 대웅전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지요. 대웅전에 들르기 전에 먼저 칠성각과 산신각에 들르기로 합니다.

칠성각과 산신각은 1979년에 지은 건물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각이지요. 독수리봉 절벽 중간에다 굴을 파고 산신각과 칠성각을 들여 놓았습니다. 아마도 절터가 협소한 탓이겠지요.

울창한 시누대 숲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갑니다. 칠성각 가는 길과 산신각 갈라지는 곳에서 먼저 칠성각 쪽으로 향합니다. 칠성각 안에는 칠성탱화를 배경으로 아주 작고 앙증맞은 부처님 한 분이 앉아 계십니다. 볼 때마다 하품을 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그나마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이라도 있어서 그런지 여느 때만큼 무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칠성각을 내려와 산신각으로 올라 갑니다. 이 길은 아찔해서 저절로 정신을 번쩍나게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문득 절벽에서 철쭉꽃을 꺾어다 수로부인에게 바쳤던 신라 향가에 나오는 노인을 떠오르곤 하지요. 노인이 꽃을 꺾으러 낭떠러지의 풍경이 아마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산신각에서 나온 참배객이 내려오고 있다.
산신각에서 나온 참배객이 내려오고 있다. ⓒ 김유자
산신각에 이르니 먼저 온 참배객이 나옵니다. 벼랑 끝에서 불쑥 몸을 내미니 그분이 마치 산신령 같아 보이네요. 산신각 안에는 호랑이와 동자승을 대동한 산신령이 그려진 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산신각 바로 아래 암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저 아래 상중리가 보이고 멀리 충남 금산 서대산도 뚜렸히 바라다 보입니다. 먼 산을 조망하는 맛이 꽤 일품입니다.

구절사 대웅전
구절사 대웅전 ⓒ 김유자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부처님들 ⓒ 김유자
대웅전이 위치한 대지는 협소합니다. 삼면이 가리워져 있고 남쪽만이 열려 있습니다. 그 남쪽 풍경이 장관입니다. 그런데 왜 구절사 대웅전은 남향을 하지 않고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넓지 않은 대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편일까요? 아니면 너무 좋은 경치가 수행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서일까요?

대웅전 지붕은 비가 새는지 천막으로 덮어놨습니다. 이 누추한 대웅전 안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계십니다. 큰 절의 부처님들은 화려한 전각에 모셔져 있지 않다고 투덜거리시지도 않습니다. '생사를 여의었는데 까짓 저각이 대수냐'라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선정에 들어 계십니다.

물 한 방울의 무게가 일곱 근

절벽 바위 틈에서 겨우 찾아낸 석간수를 파이프로 연결해 통에 받고 있습니다.
절벽 바위 틈에서 겨우 찾아낸 석간수를 파이프로 연결해 통에 받고 있습니다. ⓒ 김유자
이 구절사가 고민하는 것은 비새는 대웅전 수리보다도 먼저 넉넉한 식수를 찾는 일인 듯 보입니다. 구절사 입구에는 작은 식수통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모터를 돌려야 겨우 한 말 가량의 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수는 절에 오는 손님들에게만 제공하고 스님은 그 옆 저장 탱크의 죽은 물을 마신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 눈보라가 칠 때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전을 맡고 계신 해당 스님과 운불련 소속의 불자 한 분이 대웅전 좌측에 있는 절벽을 긁어서 물줄기를 찾는 작업을 하고 계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길을 찾다가 몇 시간 만에 절벽 바위 틈에서 한참만에야 겨우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찾아내고 서로 쳐다보며 신나하시던 두 분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불가에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야말로 물 한 방울의 무게가 일곱근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왓장 안에서 키우고 있는 고란초
기왓장 안에서 키우고 있는 고란초 ⓒ 김유자
이 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가운데 하나는 요사채 앞 기와장 속에서 자라는 고란초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고란초가 자란다는 건 이곳이 얼마나 청정지댄가를 말해줍니다. 고란초는 지난 겨울에 절 입구에 있는 바위 틈에서 이리로 옮겨졌습니다.

부여 고란사에서도 벌써 오래 전 멸종의 위기에 처한 고란초가 행여라도 죽을까봐서였겠지요. 다행히 가까이서 바라본 고란초는 푸르스름한 생기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구절사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식장산에 왔으니 능선을 타고 산행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우연히 눈길이 마주친 주지 스님이 "차 한 잔 하세요"라고 말씀하시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길을 나섭니다.

길을 가다가 기슭에 멈춰서서 다시 구절사를 내려다 봅니다. 올려다 보고 사는 삶에 익숙해지다 보니 가끔은 제 자신이 내려다 본다는 것에 매우 굶주려 있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도회에서의 삶이 늘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올려다 보며 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절이라고 부처님이 나투시지 않겠습니까? 작고 화려하지 않은 전각을 지닌 구절사는 우리에게 소박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소박하되 결코 모자라지 않는 삶을 꿈꾸며 구절사를 등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대전 터널→비룡분기점에서 무주 진주 방면→판암 IC 우회전 →옥천으로 가는 4번 국도→동신고교 지나 오른쪽 세천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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