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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그림을 마주한다는 건 또다른 하나의 세계와 만나는 일이다. 화가 이보름이 이 길을 안내하는 쉽잖은 일을 자처했다. 그가 풀어내는 그림 속 세계로의 여행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편집자주>
▲ 민화형식의 매화
ⓒ 유연준 촬영
남쪽에는 벌써 매화가 피었더군요. 지난주 중반만 하더라도 눈 내리고 바람 부는 꽃샘추위가 여간 아니어서 여린 꽃몽우리들이 추위에 어쩌나 싶었는데, 그래도 봄은 봄인가 봅니다. 꽃들이 건강하게 하나씩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다행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지난 주말을 끼고 매화를 보러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다 일상의 일을 내팽개쳐두고 내려갈 때만해도 마음 한켠이 무거웠었습니다. 그렇지만 머리 위로 하얗게 핀 매화를 보고는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어요. 서울에 돌아오니 오히려 이 세상으로부터 근사한 대접을 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세계가 나에게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갖기는 쉽지 않지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듯이,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쌀쌀한 봄날 소담한 매화꽃의 자태를 보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과 함께 말이지요.

매화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군자(四君子)중의 하나입니다. 사군자 수묵(水墨) 위주로 그려진 매화(梅花)·난초(蘭草)·국화(菊花)·대나무(竹), 이 네 가지 식물을 그린 그림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것들은 차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합니다. 사군자는 문인화의 대표적인 화훼화(花卉畵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네 가지 식물들은 기품 있는 군자의 품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문인사대부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군자의 성품을 매, 난, 국, 죽의 식물적 특징에 빗대어 생각했어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나, 눈 속에서도 곧게 자라는 대나무 같은 식물의 생태적 특성은 절개(節槪)와 지조(志操) 같은 유교적 윤리와 이상적인 인간을 상징합니다. 이런 면모가 유교적 인륜의식과 맞물려 선비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을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사군자가 된 것입니다.

옛 선비들은 사군자의 덕목을 따르고자 사군자를 그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군자를 그리는 자신의 인격이 그 그림에 반영된다고 믿었습니다.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가 그린 그림이면 실물과 그다지 닮게 그리거나 잘 그리지 않아도 좋은 그림인 것이죠. 사군자를 그리면서 잘 그리기보다는 인격수양을 강조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인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즐겼던 그림이 바로 사군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군자는 다른 장르의 그림에 비해 접근하기도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사군자는 문인들이 능숙한 필법 즉, 붓을 사용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쉽게 그릴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욱 성행했습니다. 보통은 먹만으로 그립니다. 아주 가끔씩 색이 있는 그림을 볼 수 있기도 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 칠하는 것은 아니고, 부분적이거나 단색 혹은 엷게 칠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매난국죽의 형태도 생래적 특징만을 간결하게 묘사했지요. 그런 면모가 절제를 중시하는 선비들의 기질과 잘 어울렸습니다.

사군자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네요. 사군자가 그만큼 동양회화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동양화를 배울 때는 사군자부터 시작해요. 그럼 이제 매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매화는 매화나무에서 피는 꽃입니다. 매화나무의 키는 잘 자라면 5m에 이른다고 합니다. 줄기는 굵고 거칠며 검은색을 띕니다. 검고 거친 둥치와 하얗거나 혹은 연분홍색의 작고 여린 꽃은 멋진 대비를 이루죠. 특히 매화는 새로 난 초록색 어린 가지에서만 꽃을 피웁니다. 꽃이 달린 자루는 가지에 바로 붙어서 아주 짧고, 하나 또는 둘씩 달립니다.

매화는 그림에서는 가지에 바투 붙어서 마치 가지에 꽃이 붙어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일기 변화가 심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봄에 피는 꽃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흔히들 벚꽃과 매화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르지요. 우선 꽃잎이 다릅니다. 벚꽃은 가운데가 V자로 갈라져 있습니다. 매화는 바둑알처럼 둥근 모양입니다. 그리고 매화는 가지에 딱 붙어있어요.

대신 벚꽃은 달랑달랑 바람에 흔들립니다. 버찌가 한 점에서 여러 개의 긴 꼭지가 달리듯이, 한 곳에서 다섯이나 여섯 이상의 꽃자루가 길게 나오기 때문에 꽃자루 끝에 달린 꽃들이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것이죠. 그리고 나무등걸이 매끄럽고 가로줄 비슷한 게 있습니다. 또 벚꽃에는 향기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나와 흰색 또는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은근히 매혹적인 향기가 납니다. 분위기에 취해서인지는 몰라도 달밤에 더욱 향기가 짙어지는 것 같아요. 해마다 이맘때면 남쪽에 산수유가 피었느니, 매화가 피었느니 하며 사진과 함께 봄소식이 전해집니다. 그걸 듣고 있노라면, 옛 선인들도 우리처럼 봄을 기다리고 꽃을 기다렸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봄의 전령... '장원화'라고도 불려

지금은 지구 온난화 덕분인지, 때문인지 덜 춥다고 하는데, 예전엔 훨씬 더 추웠다고 해요. 겨울 내내 묵은 김장 김치만 먹고 회색 세상만 보다가 설핏 봄기운을 느낄 무렵, 아름다운 향내를 풍기며 피는 매화를 보면 정말 반가운 임을 만난 듯 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전의 가옥은 난방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니 봄이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이처럼 매화는 봄을 나타냅니다. 전통 회화에서는 보통 8폭이나 12폭 병풍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 폭에 봄을 상징하는 매화를 그립니다. 추위를 견디고 다른 어떤 꽃보다 일찍 피었다 하여 매화를 화형(花兄) 또는 백화형(百花兄)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가장 먼저 꽃이 핀 것을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것과 동일시하여 장원화(壯元花)라고도 했어요. 조금 거칠긴 하지만, 꽃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화괴(花魁)라고도 하지요. 모두 다 일찍 피어나는 성질을 일컫고 있습니다.

매화는 또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겨울 세찬 바람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낙엽이 지거나 푸름을 잃지 않는 세 친구라는 뜻입니다. 9세기경 당나라의 주경여가 자신의 시에서 매화를 소나무와 대나무와 함께 기개와 충절을 상징하는 나무로 소개하면서 세한삼우는 하나의 형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 역시 모두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지요. 청빈함 속에 살아가는 깐깐한 선비의 기개가 세상에 알려지듯, 눈 속에서도 몰래 풍기는 매화의 향기는 군자의 덕을 의미합니다.

크고 작은 가지마다 휘도록 눈이 쌓였건만
따듯함을 알아차려 차례대로 피어나네.
옥골(玉骨)의 곧은 혼은 비록 말이 없어도
남쪽 가지 봄뜻 따라 먼저 꽃망울을 틔우네.
- 매월당 김시습, '탐매'


제가 다녀온 경주 여행의 목적은 매화를 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일행과 어울리다보니 정작 꽃은 안 보고 이런저런 목적지를 향해 걷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하면서도 우아한 향이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매화나무 아래였어요.

지난번에 모란을 다루면서 매화 향기를 암향(暗香)이라고 했지요? 드러나지 않게 그윽한 향기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진한 향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화처럼 향기가 날 듯 말 듯한, 선비의 조용한 숨결처럼 결코 들뜨지 않으나 오래 머무는 향기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 유연준 촬영
매화가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우리의 전통 회화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꽃이 매화라고 합니다. 매화는 성리학과 관련이 있는 꽃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고려 후기부터 매화를 많이 그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조선에서는 매화도가 사랑을 받지요.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선비정신이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 이념이 되었고, 그에 따라 선비들이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고 또 스스로를 수양하고자 매화를 상찬하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사대부적 품성과 충절을 닮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이지요.

사실 향기라고 하지만 매화도의 본령은 늙은 나무입니다. '체고(體古)', 즉 나무의 몸이 늙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진 풍상을 겪어낸 듯한 매화나무를 그린 것은 아마도 향기를 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수양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조상들의 은근하면서도 결기 곧은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보통 매화그림에는 양식이 있습니다. 매화에 관한 고사를 그대로 옮긴 데서 생겨난 전형이지요. 우선 하나는 '탐매도(探梅圖)' 또는 '심매도(尋梅圖)'라고 부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당나라 시인인 맹호연(孟浩然)의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그는 매화가 필 때면 장안 동쪽에 있는 눈 쌓인 산을 나귀를 타고 파교(灞橋)라는 다리를 건너서 매화를 찾아다녔다고 해요. 그리고는 처음 핀 꽃을 보며 오래도록 감상했다고 합니다. 탐매도 류의 그림은 이러한 고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추운 날 눈을 밟으며 그 추위에 오히려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나도 너를 닮고 싶다는 자기 확인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그림의 내용이 거의 비슷비슷하지요. 제목에 누구누구의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구별하기 위해서지요.

다른 한편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송나라 때 임포(林逋)라는 사람이 매화를 하도 좋아해서 매화를 아내 삼아, 학을 아들 삼아 일생을 서호 근처의 고산에서 조그만 글 쓰는 방(書屋)에서 은거했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보통 멀리 산이 보이고 조그만 집 주위에 매화가 피어 있으며 집안에서 바깥을 보는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은 아마도 자신이 그러하였으면 하고 그렸을 것이고, 보는 사람 또한 그 안에 들어가 그림 속의 인물과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 그렸을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소박하면서도 결기 있는 이런 매화 그림들이야말로 우리 선인들의 내면과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값진 풍경이 아닌가 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이어령의 <매화>, 손철주의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참조했습니다.


태그:#미술, #매화, #세한삼우, #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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