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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동 지역 유적지도. 혹 마산동산성을 찾아가실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려봤습니다.
마산동 지역 유적지도. 혹 마산동산성을 찾아가실 분들께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려봤습니다. ⓒ 김유자
대청호반 길을 굽이굽이 달려갑니다. 오늘은 마산동산성과 조선시대 교통요지에 설치하였던 역원 중의 하나인 미륵원지를 찾아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주산동을 지나고 추동을 지나서 마산동 말미마을에 닿습니다.

대청댐 담수로 윗말미와 아랫말미가 물에 잠기고 나서 개머리산 쪽에 새로 들어선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가량 가면 3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미륵원지가 있고 직진하면 마산동산성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마산동산성에 먼저 들른 다음 미륵원지는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직동 가는 길로 직진합니다. 약 300m가량 올라가다 보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길 우측을 택해서 갑니다. 막다른 곳에 이르니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사슴이골이라는 마을인가 봅니다.

마산동산성이 자리한 산
마산동산성이 자리한 산 ⓒ 김유자
마을 들머리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을 타고 올라갑니다. 산 가까이에 이르자 넓은 도로가 끝이 나고 길의 자취가 홀연히 사라집니다. 어디로 가야할까 한참 망설이다가 앞서 3거리에서 보았던, 약간 추상화에 가까웠던 도로 안내판을 다시 떠올리면서 무조건 호수에 더 가까운 오른쪽 산봉우리를 향해 방향을 잡고 산을 올라갑니다.

수시로 길이 끊기곤 하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봉우리를 향해 숨을 할딱이면서 올라갑니다. 맹감나무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나무뿌리에 채이기도 하면서. 까짓 거 해발 220m밖에 안되는 산이라는데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마음을 다독입니다. 그나저나 이 산봉우리에 산성이 있지 않아 허탕이라도 치는 날이면 어쩌지요?

마산 정상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흐트러진 돌무더기들이 보입니다. '옳게 찾긴 찾아왔구나' 싶어 순간적으로 맥이 확 풀리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1호인 마산동산성이 제 발길을 허락한 것입니다.

거의 원형을 잃어버린 마산동산성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벽이 남아있는 마산동산성 남벽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벽이 남아있는 마산동산성 남벽 ⓒ 김유자
서남쪽 성벽의 모서리 부분의 돌무더기
서남쪽 성벽의 모서리 부분의 돌무더기 ⓒ 김유자
마산동 산성은 산봉우리를 따라 쌓은, 길이 200m가량의 테뫼식 석축산성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성벽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애초부터 성벽이 온전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온 건 아니니 실망하지는 않습니다만.

서남쪽 성벽의 모서리 부분에는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여기가 아마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가 있었던 곳인가 봅니다. 그래도 제가 방금 올라왔던 남쪽 성벽은 약간이나마 석축이 보존돼 있으니 다행입니다.

조금 남은 성벽을 살펴보니 성벽의 축조 방법은 자연할석으로서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았던 것 같습니다. 돌 모양도 크고 작고 일정치가 않습니다.

“이 부분의 무너진 성벽에서 체성의 단면을 살펴보면, 기초부분은 산의 경사면을 깎아내고 외벽을 축조하였으며 그 안쪽으로는 잡석을 채워 넣었고 다시 잡석의 안쪽으로는 산토(山土)를 채워 넣었다. 이러한 관계로 성벽의 안쪽부분은 평탄한 지형을 이루게 되어 마치 내호와 같은 통로가 남아 있다.”

미리 프린트해 간 대전광역시 향토사료관 자료는 마산동산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만 내호는 이미 메워진 지 오래인 듯싶습니다. 성터 동북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거기도 약간의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꽤 둥글고 넓게 패인 부분이 보이는데 그곳이 아마 봉수대가 있던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마산동산성은 서북방향으로 노고산성과 가깝고 서남쪽으로는 마산동 마을 뒤에 있는 견두산성과 가깝고 계족산성과도 그리 멀지 않으니 서로 유기적인 방어체제를 구축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산동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
마산동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 ⓒ 김유자
대전 지역 산성 답사의 제일 큰 묘미는 아무래도 호수를 바라볼 때 느끼는 장쾌한 기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덕구와 동구지역에 있는 산성들은 거의 대청호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거든요. 역사 공부도 하고, 등산도 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눈 맛까지 더불어 느끼게 되니 산성 답사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닐는지요?

슬슬 산성을 내려오다가 사슴이골 마을을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마을 이름을 사슴이골이라 부르는 것은 사슴을 키우는 집이 많아서인 모양입니다. 서너 집 밖에 살지 않은 마을엔 죽은 사슴의 명복을 빌어주는 사슴을 위한 사당까지 있더군요. 이 낯설고 기이한 사당의 존재가 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대전 최초 민간 사회복지 기관이었던 미륵원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미륵원지 전경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미륵원지 전경 ⓒ 김유자
미륵원지에 사시는 황경식 할아버지 댁의 솟을대문
미륵원지에 사시는 황경식 할아버지 댁의 솟을대문 ⓒ 김유자
갔던 길을 되짚어 나와 호숫가를 따라 낸 길가를 따라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0호 미륵원터로 갑니다. 회덕 지방의 호족이었던 회덕 황씨 댁에서 호구지책이 아닌 적선으로 경영하던 숙박업소인 미륵원은 대청호숫가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바로 옆으로 대청호수가 들어차 있지만 전에는 여기에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겠지요. 이곳은 고려·조선시대 때는 서울에서 영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답니다. 미륵원의 원위치는 천안에서 진천-청주-문의-미륵원-증약-옥천-영동-황간-경북 성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도로망이 있었을 거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답니다.

미륵원이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고려말 황윤보에 의해 건립되었던 것을 황연기가 중건하여 1332년부터 죽기 전해인 1351년까지 20여 년 동안이나 매년 겨울이면 원을 열어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음식을 무료로 주는 선행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뒤에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 아들 형제들이 낡은 원을 철거하고 새로 원을 건립하여 덕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날마다 조석으로 큰 행랑채 앞에 솥 여남은 개를 걸고 앞들시내에다 쌀을 씻어 밥을 지어 행려자들을 먹였다고 합니다. 큰 행랑채가 있었던 곳은 행랑마을(행랑촌), 솥을 걸었던 곳을 솥티실, 쌀을 일은 물이 구름처럼 희게 흘렀던 다리는 구름다리라고 하는 지명이 생길 정도였다고 하니 엄청난 구휼이 행해졌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전해지는 얘기가 결코 허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하륜, 변계량, 정인지, 송시열 등 여말 선초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러 남긴 제영기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목은 이색의 <목은집> '미륵원남루기'에 이들 부자의 선행이 등장할 정도랍니다.

복원된 미륵원 남루
복원된 미륵원 남루 ⓒ 김유자
현재 살림집 좌측에 있는 건물 남루는 본래는 기능이 커진 미륵원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행려자들이 여름에도 더위를 피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미륵원의 남쪽 부근에 따로 새 건물을 지었던 것입니다. 남루의 원래 위치는 대청댐 수몰지구 안이었는데 1980년, 정면 4칸의 단층 건물로 이곳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황연기의 손자까지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선행을 베풀었던 이 미륵원과 남루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안타깝게도 그만 폐허가 되어버리고 터만 남고 말았습니다.

처마 안쪽 시렁에 매달린 메주덩어리들
처마 안쪽 시렁에 매달린 메주덩어리들 ⓒ 김유자
미륵원지에서 보람 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뉘우치다

아무튼 미륵원은 행려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호 활동에서 시작해서 점차 역할을 확대해나간 대전지역 최초의 사회복지 기능을 수행한 민간복지기관이었던 셈입니다(다른 곳에도 이런 곳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이 집에는 일흔이 넘은 황경식씨 내외 단둘이 살고 계십니다. 집안 곳곳에다 옥수수 자루와 수수 묶음, 시래기 등을 잔뜩 매달아 놓은 풍경이 마치 저희 친정집을 방불케 합니다. 그냥 나오기 섭섭해서 할머니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눴습니다. 호숫가 바람이 너무 센 것만 빼면 이 외따로 떨어진 집에 사시는데 크게 불만은 없다고 하시더군요. 선행을 베푸시며 사셨던 먼 조상들에 대한 자부심도 없지 않은 듯했습니다. 그런 조상들의 음덕이 자손을 지켜주실 것을 굳게 믿는 눈치시더군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밖으로 나와 호숫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뜻 깊은 답사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산동 산성에서는 개인의 삶과 역사적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곳 미륵원지에서는 무엇이 인간 개인에게 주어진 의미 있는 사회적 삶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미륵원 터 언덕 아래에 숨어있었던지 갑자기 고라니 한 마리가 투두둑, 소리를 내며 호숫가 저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납니다. 저 고라니처럼 이유도 없이, 영문도 모르고 늘 달아나듯이, 쫓겨 가듯이 살아온 제 일상을 부끄러워하면서 집으로 향한 길을 서두릅니다.

덧붙이는 글 | 14일에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
대전에서 옥천 방향 국도→판암동 동신고등학교 앞 3거리→좌측 대청호 길 →추동마을→마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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