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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났으면 반드시 패트라를 보고 죽어라."

여행가 한비야씨가 패트라를 둘러본 후에 여행기에 쓴 말이라고 한다. 한비야씨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진 전문 여행가다. 지구촌 곳곳을 둘러보았을 그가 패트라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할 일도 많고 볼거리도 많을 터인데 패트라를 꼭 보고 죽으라고 했다니 무엇이 그를 그렇게 감동케 했을까? 그러나 사실 패트라를 보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감동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 때문이다.

▲ 당나귀를 매어 놓은 동굴
ⓒ 이승철
패트라는 우선 인간 이전에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걸작이었다. 인간들의 손으로 그런 동굴들과 신전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고 해도 자연 그대로 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롭고,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연의 경이로움에 인간이, 그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고대에 그런 문화를 이루어 놓았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이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인데,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저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에 지금처럼 돌을 자를 수 있는 날카롭고 강한 강철이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신전이나 동굴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날카로운 좋은 칼로 두부를 자르거나 과일을 깎듯 자르고 다듬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협곡을 따라 만들어 놓은 수로며 동굴, 신전 등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말예요, 이 세계최고의 인류문화유산이 너무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같이 걷던 일행이 툭 던진 질문이다. 그의 눈길은 신전이 있는 광장의 누더기 같은 기념품 가게를 바라보고 있었다.

▲ 유적지 안에 펼쳐놓은 현지인의 가게와 의자들
ⓒ 이승철
▲ 패트라 동굴유적지 입구 풍경
ⓒ 이승철
정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기념품 가게는 동굴도시로 들어오기 전에 입구에 설치해 놓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누더기 같은 기념품 가게들과 노점상들은 동굴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 좀 보세요? 누군가 이곳에 낙서를 해 놓았네요. 다행히 한글은 아니군요."

알카즈네 신전 안의 벽이었다. 벽에 누군가가 날카로운 쇠붙이로 긁어 써 놓은 낙서가 있었다. 정말 일행의 말처럼 그 낙서가 한글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낙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준급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대단한 신전은 아무도 지키거나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광장 한쪽에 경찰인지 군인인지 두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지만 관심 밖이었다. 신전입구에 허술한 이동식 나무 울타리가 놓여 있긴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방비가 되지 못했다. 아무나 안으로 들어가 낙서를 하고 훼손을 해도 막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신전이 있는 광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많은 동굴들과 까마득한 바위절벽을 깎아 조각한 것들이 많았다. 바위들은 대부분 붉은빛이 나는 사암이었지만 어떤 바위들은 전혀 다른 빛깔을 내는 것들도 많았다.

▲ 사람이 거주하는 흔적이 있는 동굴
ⓒ 이승철
▲ 알카즈네신전앞 광장 풍경, 역시 허술한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 이승철
그런데 그 경이로운 골짜기 곳곳에 역시 누더기 같은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곳은 음료수를 파는 곳도 있어서 가게 앞에 즐비하게 의자와 탁자를 내놓은 곳도 보인다. 가게 주변은 하나같이 지저분한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우와! 저기 좀 보세요? 저 동굴에는 당나귀가 살고 있네."

정말이었다. 동굴 속에 당나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아주 여유 있고 느긋하게 매어놓은 당나귀가 동굴 안에서 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한군데만이 아니었다. 더 들어가다가 이번에는 동굴 속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민 낙타가 발견되었다. 또 다른 동굴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 여기저기 당나귀와 낙타, 그리고 사람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자동차를 쓰지 않고 마차를 이용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동굴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들까지 키우고 있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

일행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아니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너무 허술하게 관리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저 동굴에는 누가? 동굴밖으로 입을 내밀고 있는 낙타
ⓒ 이승철
▲ 공사중인 유적 앞 노점상이 음식을 만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 이승철
"아직은 너무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이겠지요, 저 노점상들이나 어린이들을 보면 아직은 이 나라 정부가 이런 문화유적에 각별하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것 같네요."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이 이루어 놓은 정말 대단한 인류의 문화유산이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형경기장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제법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멀리 높은 바위산들이 바라보이는 이곳 오른편에도 역시 고대동굴도시는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 한낮의 햇빛을 받은 바위들이 형형색색으로 눈이 부신다.

그런데 그 바위산 아래 자락에도 몇 사람의 노점상들과 허름한 가게가 자리를 펴고 있었다. 그들 중에 모녀로 보이는 중년여인과 아이는 점심이라도 짓는지 까만 냄비에 음식을 끓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 아깝다, 이런 유적이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말 대단한 유적이 홀대받고 있는 모습이 정말 마음 쓰리네."

일행이 혼잣말처럼 되뇌는 말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무화유산을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다니. 이방의 나그네들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 이승철
▲ 동굴유적 안의 가게
ⓒ 이승철
결코 머나먼 남의 나라에 있는 관광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류의 문화유산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부나 당국에서는 동굴지역에 들어가는 입장료를 받아 수입을 올리는 것 외에는 거의 유적을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유적이면 입장료를 우리 돈으로 1인당 5만원씩 받아도 되지 않겠어요?"

우리나라의 기준으로도 문화재나 고궁 관람료로 5만원이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패트라 고대동굴도시를 둘러보며 느낀 생각은 이만한 볼거리라면 5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더라도 절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만한 유적지라면 배후도시가 하나쯤 생길만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입구의 허술한 가게들 몇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정말 그랬다.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 앞에 작은 관리사무소 같은 것이 하나 있고, 몇 개의 허술한 가게들이 눈에 띌 뿐 주변에는 이렇다 할 편의시설들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산지에 펼쳐진 마을도 그 유명한 고대 동굴도시 유적지의 배후도시라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모습이었다.

▲ 패트라 지역의 마을풍경과 입구의 가게들
ⓒ 이승철
패트라 동굴도시를 둘러본 일행들이 모두 돌아와 밖으로 나왔다. 마침 입구에 있는 의류를 파는 가게를 사진으로 담으려고 카메라를 그쪽으로 향하자 주인인 듯한 남자가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손을 내민다.

"이 사람들 정말 웃기는구먼, 구걸하는 아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이만한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주인까지 저럴 수 있지?"

꼭 필요한 사진도 아닌데 굳이 돈을 주면서까지 사진을 찍고 싶지가 않았다. 카메라를 돌리고 돌아서자 머쓱한 가게주인도 돌아간다.

이번 여행일정의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패트라는 정말 감탄을 자아내는 대단한 곳이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고대 바위협곡의 동굴도시 패트라, 그러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관리의 허술함과 주변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관광객들에게 씁쓸한 실망감을 남겨 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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