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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종영을 아쉬워하는 <주몽>
많은 사람들이 종영을 아쉬워하는 <주몽> ⓒ MBC
매주 월·화 밤 9시 55분에 방영되던 <주몽>(연출 이주환 김근홍, 극본 최완규 정형수 정인옥)의 종영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단순 시청률 계산대로라면 그 시간대에 빼놓지 않고 <주몽>을 시청한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라는 얘기니 <주몽>이 막을 내린 빈 자리는 무척이나 커 보인다.

이번 주는 그나마 <주몽 스페셜-끝나지 않은 신화>가 방영되어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고 치더라도 당장 다음주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제 무슨 드라마를 보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 중 다수가 온라인상에서 모여 <주몽>의 종영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주몽>시즌2를 기대하는 것만 보아도 그 엄청난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토론으로나마 애청하던 드라마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네티즌들이 얘기하는 <주몽>시즌2의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물론 <주몽>의 마지막회에서 드라마 종영 이후의 이야기가 잠깐 해설로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그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만약에 <주몽>이 종영되지 않았다면 82회, 83회... 이렇게 계속 방영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지금부터 '가상 <주몽> 82회'라는 이름으로 살펴 볼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다.

주몽의 아들·손자와 대소의 끈질긴 승부

<주몽> 마지막회를 보면 주몽이 요동태수를 죽이고 한나라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실제 역사속에서 이것이 요동을 완전히 정벌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요동 정벌은 주몽의 손자이자 고구려 3대 태왕인 대무신왕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몽이 집권할 시기에는 드라마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 행인국과 북옥저 등 주변 소국을 정벌하면서 고구려는 차츰 국력을 키워나간다.

극중에서 주몽의 죽음을 암시하기 위해 주몽의 부상을 부각시킨 것처럼 실제로 주몽은 4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그 뒤를 이은 고구려의 2대 태왕 유리왕 무렵의 고구려의 국력은 부여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유리왕은 부여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였고 대소의 인질 교환 요구에 태자를 부여에 보내려 하기도 하는 등 부여에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무신왕 대에 이르러서는 국력의 차이가 역전되기에 이른다. 이미 태자 시절부터 부여를 여러 차례 격퇴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은 대무신왕은 마침내 부하인 괴유를 앞세워 대소를 죽이기에 이른다. 이 때 대무신왕의 나이는 불과 13세였고 대소는 80대의 노인이었다.

부여는 대소의 죽음 이후 소국으로 전락하여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고 고구려 제19대 태왕 광개토왕에 의해 마침내 멸망당한다. 역사서에 대소 이후의 부여에 대해선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소에게는 후사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극중에서 주몽의 아들들을 부러운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대소의 심정이 실제로도 그러했을 것이다.

비록 대소는 이렇게 죽었지만 그 시기는 주몽이 죽은 후 무려 40여년이 흐른 시점이었고 주몽 사후에도 고구려에 당당히 맞섰던 그였으므로 마지막회에서 주몽과의 대결에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대소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고 둘 사이의 대결에서 대소가 결코 패배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하한 소서노와 비류·온조의 운명은?

한편 남쪽으로 떠난 소서노와 비류·온조는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실제로 소서노가 고구려를 떠난 것은 드라마에서와 같은 화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주몽은 고구려 건국을 위해 소서노와 정략결혼을 한 것일 뿐이었고 자신의 정실부인이 낳은 유리가 고구려로 돌아오자 소서노와 비류·온조는 권력 구도에서 밀려나게 된다.

소서노는 주몽의 정치적 배신으로 인해 두 아들들을 데리고 할 수 없이 남하하게 된 것이다. 사서에 따르면 그들이 정착한 곳은 현재의 미추홀과 하남 위례성 부근으로 추정된다.

당시 비류와 온조는 아직 어린 나이였으므로 소서노는 백제의 건국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게 본다면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건국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소서노는 우리 역사상에서 참으로 전무후무한 철의 여인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비류가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추홀에 나라의 터전을 잡지만 소금기가 많은 땅이었던 미추홀은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이후 고생하는 백성들의 모습에 비관한 비류가 결국 자살을 하고 그의 백성들은 '십제'를 세운 온조의 나라에 흡수되었으며 이것이 후에 '백제'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온조가 백제를 세운 것으로 해설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소서노와 비류·온조는 분명 북방에서 살던 사람들이므로 농사가 안 되어 자살을 했다는 비류의 기록은 의구심이 남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백제를 통합한 온조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비류의 치적을 깎아내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백제의 시조는 온조가 되었지만 같이 남하한 소서노와 비류 역시 백제의 건국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후에 온조왕이 백제의 성씨를 부여로 정한 것과 주몽의 사당을 짓고 제사지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온조는 백제의 뿌리가 부여와 고구려였음을 분명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주몽이 친아버지가 아니었어도 길러준 정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몽>은 이미 막을 내렸지만 드라마 이후에도 이렇게 역사는 계속 흘러갔고 그 이야기 역시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나 시청자들이 더더욱 이런 이야기를 담은 <주몽> 시즌2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지는 것도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 시민기자단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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