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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절기, 시원하고 뒷맛 깔끔한 복국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오이소
드이소
속이 써언∼ 하지예

너 밤새 핏발 선 눈빛으로 날 할퀴고 무너뜨려도
너 이른 아침까지 끈질지게 달라붙다 끝내 나를 마셔버려도
복국, 너 하나만 있으면 된다

술, 너 이제 꼼짝없이 죽었다

- 이소리, '복국 사랑' 모두


▲ 53년, 3대째 복조리 가업을 잇고 있는 마산 복국의 원조
ⓒ 이종찬
그곳에 가면 쓰리고 더부룩한 세상살이가 확 풀린다

고된 세상살이에 몸부림치며 밤을 새워 술을 마신 날 아침, 쓰리고 더부룩한 속을 순식간에 싹 풀어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서 미나리와 콩나물 등이 듬뿍 든 맑은 국물에 양념 고추장과 식초 서너 방울 톡톡 떨어뜨린 뒤 휘∼ 저어 한 그릇 후루룩 마시고 나면 갑자기 겨울처럼 을씨년스러웠던 이 세상살이가 봄날처럼 포근하게 빛난다.

경남 마산에 가면 다섯 곳의 맛집 거리가 있다. 마산이 원조인 아귀찜거리와 복국거리, 통술거리, 활어회거리, 장어거리가 그것. 이들 거리는 모두 마산 오동동과 어시장을 주춧돌로 삼아 줄지어 서 있다. 그중 술을 시키면 싱싱하고 푸짐한 해물 안주가 술상이 비좁을 정도로 나오는 통술거리는 요즈음 신마산 월남동(경남대 주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마산을 대표하는 네 가지 먹을거리는 여전히 옛 추억처럼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 특히 어시장 쪽 오동동과 가까운 산호동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30여 개 업소가 홍합처럼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는 복국거리에 가면 지금도 24시간 내내 복어를 재료로 삼아 여러 가지 복어조리를 맛깔스럽게 만들고 있다.

간밤 술을 많이 마신 날 아침이나 점심때면 이 지역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속풀이를 하기 위해 즐겨 찾는다는 복국거리. 이 거리에 들어서면 비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집집이 복국의 국물을 만드는 재료와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 까닭에 이 거리에 들어서서 아무 집에나 들어가 복국을 먹어도 그 맛이 같은 집은 어느 한 곳도 없다.

▲ 이 복국집은 '복국할머니'라 불리는 박복련(81세)할머니가 28세 되던 해 친정어머니에게서 복어 손질법을 배워 지금까지 53년째 문을 열고 있는 마산 복조리의 원조이다
ⓒ 이종찬
고혈압, 당뇨, 숙취예방, 비만 등 성인병 예방에 그만인 복어조리

가격 또한 복어의 종류와 조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복국과 복매운탕은 대부분 6천원에서 7천원 안팎이다. 그밖에 복껍질조리나 수육, 찜, 튀김 등은 복어의 종류와 조리 방법에 따라 2만원에서 5만원대까지 한다. 쫄깃하게 혀끝에 착착 감기는 복회는 그날 시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복어는 단백질과 비타민 B1, B2 등이 듬뿍 들어 있고, 기름기가 없어 알코올중독 예방과 숙취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복어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에 좋으며, 근육의 꼬임을 막는 것은 물론 고혈압과 당뇨병, 신경통, 피로회복, 피부미용, 비만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그만이다.

이곳 복국거리에서 복어로 만드는 조리는 크게 다섯 가지다. 조리한 복어에 콩나물과 미나리를 듬뿍 넣고 푹 끓여내는 복국, 복어뼈를 추슬러내고 껍질을 벗겨 조리하는 복수육, 조리한 복에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을 넣어 찌개로 끓여 먹는 복찌개, 복껍질로 조리하는 복껍질조리, 날로 얇게 회를 떠서 먹는 복회가 그것.

복국은 먼저 복어의 내장을 모두 빼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뜨겁게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조리한 복을 넣어 폭 익혀야 한다. 이어 콩나물과 두부, 표고버섯, 대파, 쑥갓을 넣고 한소끔 끓인 뒤 미나리를 넣어 살짝 익히면 맑고도 푸르스름한 국물 빛이 감도는 시원한 복국이 된다. 더불어 복국에 식초와 양념 고추장을 넣으면 그 맛이 훨씬 더 좋아진다.

53년, 3대째 복조리 가업을 잇고 있는 마산 복국의 원조

복어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그중 이곳 복국거리에서 볼 수 있는 복어는 자주복과 검자주복, 검복, 까치복, 흰점복, 졸복, 은밀복, 가시복, 거북복 등이다. 하지만 복의 내장과 알에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 복조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복어조리를 할 수 있다. 이는 자칫 복어 조리를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금) 밤 11시, 오랜만에 만난 살가운 벗들과 어울려 대낮부터 밤늦게까지 막걸리, 소주, 맥주 가리지 않고 마신 술로 인해 몹시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찾은 복국거리. 마산 어시장 복국거리 곳곳에는 온통 '00복집'이라 이름을 붙여 놓은 간판들로 불야성이다. 마치 이 골목에는 복국집이 아닌 다른 식당은 아예 발조차 들여놓지 말라는 투다.

그중 나그네가 마산 시내에 나와 술을 마실 때마다 즐겨 찾는 한 복국집에 들어서자 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식당 여기저기 복국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다. 주방 앞에 놓인 초록빛 이끼가 덮인 예쁜 수족관에서는 뽀얀 복어국물 빛 안개가 퐁퐁퐁 피어나 식당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이 복국집은 '복국할머니'라 불리는 박복련(81) 할머니가 28세가 되던 해 친정어머니에게서 복어 손질법을 배워 지금까지 53년째 문을 열고 있는 마산 복조리의 원조이다. 이는 박복련 할머니가 딴 복조리 자격증의 발급날짜가 1962년 3월인 것만 보아도 이 집의 복어 조리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 미나리와 콩나물을 적당히 넣어 푸르스럼하고도 맑게 끓여내는 깔끔한 국물맛이 깊다
ⓒ 이종찬
"그때에는 마산에서 복국을 끓여 파는 집은 저희 집 한 곳뿐이었지예"

"그때 마산에서 복조리 자격증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유일하게 저희 시어머니뿐이었지예. 지금은 법이 바뀌어 복어회를 취급하는 사람에게만 자격증이 필요하지만 그때에는 복국집도 자격증이 없이는 아예 할 수가 없었지예."

지금 3대째 복어조리 가업을 이어나가고 박복련 할머니의 며느리 김숙자(57)씨는 "지금은 이곳 복국거리 안에만 30집 가까운 복국집이 꽉 들어차 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마산에서 복국을 끓여 파는 집은 저희 집 한 곳뿐이었지예"라고 말한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마산과 경남에서 복어조리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는 것.

이 집 복국의 시원하고도 깊은 맛은 무엇보다도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신선한 복어와 집에서 직접 담근 조선된장을 쓴다는 데 있다. 그래서일까. 미나리와 콩나물을 적당히 넣어 푸르스름하고도 맑게 끓여내는 깔끔한 국물맛이 깊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복국에 쌀밥 한 그릇 말아 소주 한 잔 곁들여 먹으면 금세 더부룩한 속이 확 뚫린다.

맑은 복엇국에 양념 고추장을 풀고 식초 서너 방울 떨어뜨린 뒤 복엇국에 들어 있는 복어살을 건져내 초고추장에 콕 찍어 먹는 맛도 그만이다. 복엇국에 들어 있는 고소하고도 쫄깃하게 씹히는 복어살은 술안주로 삼고, 남은 복어국물은 밥을 말아 해장국으로까지 먹을 수 있으니 이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환절기, 복국 한 그릇이 그대의 건강을 지킨다

"지금도 저희 시어머니께서 일일이 복을 챙기지예. 저희 시어머니께서 복국에 쓰는 복은 참복(금복)과 까치복, 졸복입니더. 시어머니께서는 이른 새벽 어시장에 나가 냉동하지 않은 복어의 아가미를 일일이 까보고 싱싱한 것만 골라낸 뒤 복어 크기도 탕에 맞는 것만 골라오지예"

이 집 복국의 특징은 손님들 입맛에 따라 끓여낸다는 점이다. 깔끔하고도 쫄깃한 깊은 맛을 즐기는 손님에게는 참복이나 까치복으로 복국을 끓여내고, 시원한 국물맛을 찾는 손님에게는 졸복으로 복국을 끓여낸다. 특히 평소에도 속이 쓰리고 아랫배가 더부룩할 때에는 졸복으로 끓여낸 시원한 복국 한 그릇이 으뜸이다.

복어 머리와 복어살에 3년 묵은 집된장을 풀어 푹 고아 끓여낸 시원하고도 뒷맛이 아주 깔끔한 복국 한 그릇. 요즘처럼 들쭉날쭉한 꽃샘추위 때문에 온몸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 봄철에는 숙취해소와 피로회복에 탁월하다는 복국 한 그릇 먹어보자. 환절기, 찌뿌드드한 몸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복국 한 그릇이 그대의 건강을 든든하게 지켜주리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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