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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터뜨린지 보름이 지났는데 꽃샘추위에 잔뜩 얼어붙은 백매화
ⓒ 정판수
요즘 들어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일찍 일어나 풍산개 두 마리를 데리고 똥 뉘러 가는 일이다. 뜨뜻한 아랫목에 있다가 된바람을 직통으로 받는 걸 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해도 다 내게 주어진 일이라 어찌할 수 없어 나간다.

오늘(12일)도 싫지만 억지로 일어나 나가는 귀 뒤로, "오는 길에 밭에 가 시금치 좀 뽑아 오셔오" 하는 아내의 말이 들려왔다. 언 땅을 파헤치려면 손이 무척 시리지만 싫다는 소리 못하고 나섰다.

밭에 발이 닿는 순간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가 난다. 이 정도의 소리가 나려면 서릿발이 한 뼘은 더 돋았나 보다.

▲ 역시 꽃샘추위에 잔뜩 움츠린 홍매화
ⓒ 정판수
꽃샘추위, 해마다 이맘때면 겪는 일이지만 정말 싫다. 보름 전만 해도 우리 집 마당에 심어놓은 홍매화, 백매화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는데…. 우수 경칩도 지났건만 정말 꽃을 시샘하는 추위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런데 가만 보니 까치와 박새와 참새는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다니건만 일찌감치 고운 옷을 차려입은 꽃들은 움츠러들고, 아직 채 갖춰 입지 않은 나무들은 오도카니 떨고 있다.

아무래도 동물보다 식물이 타격을 더 입는 듯하다. 하기야 동물은 추위 피할 방법을 알아 대처하면 되지만 식물은 그 자리에 붙박인 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

출근길에 대학병원에 진료받으러 가시는 어르신 한 분을 태웠다. 시골 계신 어르신들은 공기 좋고 물 맑아 도시 어르신들보다 더 건강할 것 같은데도 사실은 아픈 곳이 더 많다. 모르긴 해도 힘든 농사일 때문이리라.

▲ 경운기로 논을 가는 달내마을 어르신
ⓒ 정판수
지금이야 그래도 경운기와 같은 기계가 있어 힘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런 게 없었을 땐 소로 쟁기질해야 했고, 소마저 끌고 갈 수 없는 경사진 밭을 갈 때는 온몸으로 팥죽땀을 흘려야 했다. 그때 안은 골병이 나이 들면서 큰 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으리라.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어느새 농사로 주제가 옮아갔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나이 들어 힘이 부쳐 농사짓기 어렵다는 얘기에 이어 농사지을 신명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힘이 줄어드는데다 더욱 맥 빠지게 하는 것은 지어도 지어도 소득 없는 농사 때문이라는 것.

▲ 이 비료값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
ⓒ 정판수
그렇게 뼈 빠지게, 정말 뼈 빠지게 노동을 해서 얻는 대가는 이제 누구나 다 알다시피 입에 풀칠할 정도다. 신경림이 그의 시 '농무(農舞)'에서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라 했듯이 "비료값만 건져도 다행이다"는 말이 마을 어른들의 입에서 곧잘 나온다. 게다가 이미 좁아진 농투사니들의 목을 '한미FTA 협상'이 더욱 조를 판국이니….

농번기가 돼 간혹 도시 나가 있는 아들딸들에게 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하기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 시간에 회사 나가 일하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벌 텐데 하시며.

그래도 아들딸은 혹사당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휴일이면 이내 달려오고. 다만 도시로 돌아갈 때면 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단다. 아들딸은 제발 농사 그만 지으라고, 어르신들은 흙에 들어갈 때까지 할 거라고.

내가 "남는 게 없다는데 아드님 말대로 농사짓지 말고 쉬시지 그러셔요?" 하니, "살아온 게 농사고, 할 줄 아는 게 농사라 안 하고 놀고 먹을 수 있나"는 대답에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살아온 게 농사고, 할 줄 아는 게 농사다'는 어른들의 말과 '피땀 흘리며 지은들 아무 희망이 없는 농사'란 말이 다시 생각나 무거운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더럽게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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