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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앞에 누어 있는 섬이 사도(사도, 긴대섬, 시루섬, 간대섬). 이어서 철탑이 있는 작은 섬 추도, 상하화도 그리고 멀리 돌산도가 보인다.
ⓒ 여수시
인간이 목숨을 붙이고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밥을 먹고 사는 우리 민족에게 '쌀'과 '물'은 빼놓을 수 없는 생존조건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없는 섬이 있다.

그렇다고 무인도는 아니다. 1960년대에는 500여 명의 주민이 살았고, 초등학생만도 90여 명이었던 섬. 섬에 둘러싸인 호수 같은 바다에 모래섬이라 하여 사호(沙湖)라 부르다 사도가 되었다. 사도는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에 속한다. 바로 이웃한 낭도에는 면 출장소, 파출소, 농협지소, 보건진료소, 초등학교 분교와 중학교 분교 등 행정과 생활기반 시설들이 모여 있다.

현재 사도에는 24세대 47명이 살고 있다. 사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연령별로 보면 50대 6명, 60대 8명, 70대 4명, 80대 12명, 90세 이상 3명이며 평균연령은 71세에 이른다. 이 중 15가구가 여성 독거노인이며, 민박과 해산물채취, 고구마와 마늘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독거노인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대부분 민박집 등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다.

조기와 바꾼 산비탈 밭뙈기

▲ 뒤에 보이는 섬이 사도 주민들이 밭농사를 짓고 땔감과 식수를 가져왔다는 낭도다.
ⓒ 김준
고기잡이배를 움직이는 것은 사도사람들에게 금기다. 50여 년 전 태풍으로 조기잡이배가 몽땅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난 후 생긴 일이다. 뱃일을 하고 고기를 잡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배를 짓지 못하고 그물을 드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섬사람들이 갖는 공통된 욕망이 있다. 그건 농사지을 땅을 갖는 것과 육지로 나가는 일이다. 사실 이 두 욕망은 섬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다른 표현이다. 요즘 농사를 짓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경지정리가 잘된 논에 농사를 짓는 것이 소원이라는 바닷가 노인의 이야기가 그렇다. 아들 딸네 집에 갔다 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네모반듯한 논을 보고 고개를 돌릴 수 없을 때까지 시선을 고정시키는 나이든 섬사람들의 모습이 그렇다.

사도의 농지는 간난아이 엉덩이만한 낭도의 마늘밭이 전부다. 그곳에 고구마, 보리, 밀농사를 지었다. 땔감을 구할 산이 없어 그곳에서 나무도 해야 했다. 매일 마을 공동 나룻배를 이용해 낭도에서 먹을 물도 가져와야 했다. 해가 뜨면 건너가 해가 질 때 배에 가득 나무를 싣고 왔다. 일 년 농사라고 짓지만 반년도 되지 않아 독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럼 기댈 곳은 조간대의 미역, 김, 청각 등 해초들 뿐이다.

그나마 남의 섬에 비탈 밭이라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사도주민들의 뛰어난 고기잡이 기술 때문이었다. 조기잡이가 한창일 때 사도에는 대여섯 척의 조기잡이 배와 삼십여 척의 작은 거룻배들이 있었다. 조기잡이배는 멀리 칠산바다와 연평바다까지 나가 조기를 잡았다. 칠산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값을 잘 쳐주는 통영까지 나가 팔았다. 그만큼 뱃길에 익숙했고, 이재에 밝았다.

오죽했으면 인근 섬에서 사도를 '돈섬'이라고 했겠는가. 선조들이 낭도에 작은 산비탈이라도 마련해 두었기에 다행이다. 칠산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팔아 마련한 8천여 평의 척박한 땅이 목숨 줄이었다. 돈을 가지고도 땅을 구할 수 없는 사도에 비하면 이게 어딘가.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사공을 두고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 작은 행복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1959년 9월 추석 무렵,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라호 태풍이 사도를 덮쳤다. 사도 주민들의 생명줄이자 희망이었던 30여 척의 배들이 모두 파괴되었다. 학교 옆에 아름답던 숲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많은 주민들도 섬을 떠났다. 더 이상 고기잡이를 하지 않았다. 자식들이 뱃일을 하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청각 뜯어 '쌀'과 바꾸다

▲ 사도 주민들이 물이 빠지자 점심을 먹고 바지락을 캐기 위해 모였다.
ⓒ 김준
▲ 주민들이 간대섬과 시루섬, 긴대섬 사이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다.
ⓒ 김준
설 명절을 앞두고 물이 많이 빠지는 물때에 점심을 먹은 주민들이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하나 둘 골목길로 나온다. 돌김과 가시리를 뜯고 바지락도 캘 참이다. 이들이 채취한 해산물은 고스란히 민박집 반찬으로 올라온다. 다른 섬처럼 조간대에서 해조류나 패류양식을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을 형편도 아니다. 갯것은 그대로 반찬거리이며, 일부 마늘농사와 통발어업과 민박집 운영하는 주민들이 일 년에 몇 백만 원의 소득을 올릴 뿐이다. 그 후 청각을 뜯어 '쌀'과 바꿔먹었고, 미역을 뜯어 생필품을 구입했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대신에 갯가에서 낚싯배를 운영하거나 조간대에서 돌김, 파래, 가사리, 돌미역, 톳을 뜯어 살아야 했다.

▲ 사도에서 나는 것으로 지은 밥상. 민박집에서 5천원이면 맛볼 수 있다.
ⓒ 김준
▲ 사도와 간대섬과 시루섬 사이의 양면 해수욕장. 길가에 작은 수레가 바지락을 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김준
설 명절 무렵 물이 빠지자 진대섬(장사도)과 시루섬(증도) 사이에 물길이 열린다. 추섬과 사도 나끝이 연결되면서 며칠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바닷길이 열리는 섬이라면 모두들 '진도'를 떠올리겠지만, 여수 사도에 '일곱섬(연목, 사도, 나끝, 추섬, 간대섬, 시루섬, 진대섬)의 물 갈라짐'은 자연의 신비로움 자체다. 게다가 사도를 비롯해 낭도와 추도 등 인근 섬에서 세계적 규모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면서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시루섬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이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거북바위', 출산 후 젖이 나오지 않아 잘 나오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젖샘바위' 전설이 있으며, 이외에도 '멍석바위', '용미암'등 기암들이 많다. 작은 섬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작은 해수욕장도 있다. 지금은 이런 생태환경과 경관이 알려져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 영을 트고, 바다를 내놓았다

▲ 사람 얼굴을 닮은 큰 바위.
ⓒ 김준
사도에서 해조류와 바지락을 얻을 수 있는 곳은 나끝, 사도 주변, 간대섬과 시루섬 주변, 나끝과 진대섬 사이 세 곳이다. 먹고 살 것이 풍부하면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았겠지만, 가진 것에 비해 사람이 많으니 이것저것 규칙을 정해 자원을 관리할 수밖에.

칠산바다는 물론 연평도까지 오가며 조기를 잡던 사람들이 조간대에서 해초를 뜯고 나룻배를 저어 이웃 섬에 건너가 마늘과 고구마 농사를 지어야 했을 때 기분은 어떠했을까. 태풍으로 중선배를 잃지 않았다면 사도의 운명은 지금과 다를지 모를 일이다.

이제 기댈 곳은 알량한 갯것뿐이다. 지금도 마을어장에서 바지락, 돌김, 가사리, 돌미역, 톳, 청각 등을 채취한다. 세 곳으로 나눈 어장은 각각 채취하는 양이 다르다. 그래서 주민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어장을 바꾼다. 완도와 진도 등 서남해역 섬 지역 중 사도처럼 어장지를 구분하여 순환하거나 추첨을 하여 해조류를 채취하는 곳이 있다. 이러한 구분을 '돔(뜸)', '갱본', '단' 등으로 부른다.

양식이 보편화되면서 어촌마을의 독특한 생태자원의 이용과 점유방식이 사라졌지만 사도에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고동과 가사리, 청각과 김은 자기 지역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 미역은 처음에는 구역별로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공동으로 채취한다. 즉 돈이 될 수 있는 어업자원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가하지만 반찬거리에 해당되는 것들은 무시로 구역을 구분하지 않고 채취하기도 한다.

마을주민들이 정한 날짜에 바지락이나 돌김을 채취하는 것을 '영을 튼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개를 튼다'는 곳도 있다. 최근 공룡화석지가 발견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은 '영을 터서' 관광객들에게 어장을 개방하고 있다.

공룡에 희망 걸다

▲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공룡이다.
ⓒ 김준
개를 튼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영을 튼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전 이장 김장수(70)씨 설명을 들어보니 관광객들에게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어장을 열어준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어장을 내주면서 관광객들 맞는 것은 이유가 있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인 바다를 관광객들에게 내주겠다는 것이 무슨 말이겠는가. 해초를 뜯고 마늘농사를 지어 살 수 없기 때문에 '관광'을 업으로 삼아 보겠다는 표현이다. 공룡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도를 찾는 관광객이 홍도나 거문도처럼 많은 것도 아니다. 일 년에 유람선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1500명에서 2000여 명 정도다. 여름철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나면 한적한 섬이다. 최근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면서 지자체가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많은 예산과 계획을 세우며 투자하고 있다.

포구에 내려서면 한눈에 마을이 들어온다. 앞이고 뒤고 없다. 그냥 마을이 보인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두 마리 공룡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방문객을 맞는다. 공룡 한 마리를 세우는데 몇 천만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작은 섬에 공룡만 서너 마리가 산다. 사도의 공룡발자국은 사도와 간대섬 사이에 많이 분포하지만 추도에 비할 바 못된다.

최근 사도는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 변신 중이다. 예산도 만만치 않게 투자되었다. 작은 섬에 계획성 없이 예산이 투자되어 중앙정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주위경관과 조화로움이 아쉽기는 하지만 도의 지원을 받아 2동의 한옥민박집이 지어지고 있다. 각종 시설도 정비중이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인 바다를 관광객들에게 내놓았다.

▲ 한 주민이 돌김을 채취해 말리고 있다.
ⓒ 김준
사도 인근 해역은 대형 어장은 아니지만 철따라 다양한 고기가 나오면 낚시철 태공들이 줄을 잇는다. 조간대를 비롯해 인근 어장의 수산자원도 다양하다. 겨울철에 잡히는 노래미, 볼락, 조간대에서 김과 파래와 미역, 해삼과 고동 등을 얻는다.

봄철부터 전어가 잡히고, 통발을 이용해 문어를 잡는다. 돌 미역은 봄철까지 이어진다. 전어와 문어는 여름철에도 잡히며 서대와 오징어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철에는 전어, 노래미, 도다리, 해삼을 잡고 이각망을 놓는다.

사도의 대표 특산물은 홍마늘과 돌미역이다. 양이 많지는 않지만 홍마늘은 오래두어도 상하지 않고, 돌미역은 인근에서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은 사도의 홍마늘과 돌미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사도의 경관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화가나 사진작가들도 곧잘 사도를 찾고 있다. 머지않아 낭도와 작은 다리도 연결될 것이라고 한다. 공룡발자국에서 시작된 관광개발이지만 주민들의 삶이 오롯이 묻어난 어촌관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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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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