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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하고 겨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새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다.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자기 이름을 말해보라고 다그치는 맹랑한 아이들도 있다. 수업시간마다 이름으로 출석을 부르고 눈을 맞추다 보니 벌써 이름을 외운 아이들도 상당수 있다.

마침 '별'이라는 외자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자기 이름을 말해보라기에 나는 마치 연극 대사라도 외우듯이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다.

"You are my star! 넌 나의 별이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자기 이름도 말해보라고 난리였다. 나는 그럴까 하다가 마음을 바꾸고 급한 일이 있는 양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아직은 칼을 뽑을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넌 나의 별이잖아"

@BRI@3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1번부터 끝번까지 이름을 줄줄 외우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전에 섣불리 이름을 외운다고 칼을 뺐다가는 자칫 마음에 상처를 입는 아이가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갈수록 영악해진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내가 보기에는 못 말릴 정도로 순해 빠진 아이들도 많은 것 같다. 출석을 부를 때마다 눈을 마주치기로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매번 눈을 피하기 일쑤다.

이름을 부르면 대답 대신 영어 문장을 말해야 하는데 며칠째 빙긋이 웃고만 있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영어에 자신이 없거나 단 한 번도 수업시간에 나서본 적이 없는 조용한 아이들이다. 나는 그 중 한 아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넌지시 수작을 걸었다.

"우리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거냐? 우리가 벌써 그렇게 깊은 사이가 된 거야? 그래도 한 번 입을 열어봐. 영어시간에는 침묵이 금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빙그레 웃자 아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영어를 잘 못해도 자존심을 다치지 않은 아이의 표정이 해맑다. 요즘 나는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거기에 적당한 유머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올해 나는 담임을 맡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나이가 꽤 드는 축에 들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별활동부장'이라는, 내게는 조금은 낯선 직함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졸지에 '안 선생님'에서 '안 부장님'으로 호칭이 바뀌고 말았다. 하긴 나도 부장교사를 맡고 있는 후배교사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올해 담임을 맡지 않는 대신 1학년 남자반 아이들의 부담임을 맡았다. 부담임이 주로 하는 일은 실외 청소 감독이다. 감독이라도 해서 뒷짐지고 서 있을 수만은 없다. 교정에 떨어진 휴지라도 줍는 시늉을 해야 아이들을 다루기가 쉽다.

물론 그렇게 해도 내 눈치나 살피며 딴전을 피우는 얄미운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청소시간이면 아예 매점으로 가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하루는 매점에 있는 두 녀석을 잡아다 혼을 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야, 너희들은 인간도 아니야, 천사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어서 엉겁결에 꾀를 낸 것이었다. 하긴 다른 동무들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시간에 매점에서 편히 과자나 먹고 있었으니 인간답지 않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하지만 교사의 거친 언사가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교사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매사를 이성적으로만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잘한 일이 아닌가. 인간도 아니라고 감정을 실어 할 말은 한 뒤에 천사라고 은근슬쩍 갖다 붙인 것이다.

이런 차원(?) 높은 '립 서비스'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딴전을 피우는 아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청소는 착한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별난 녀석들의 그릇된 습성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긴 어려울 터. 이럴 때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이들을 끝까지 선의로 대하는 것. 그리고 내가 아이들보다 더 끈질기면 이길 확률이 높다. 끈질기지만 부드럽게.

"저 청소 같은 거 안 해요. 저 중학교 때에도 한 번도 청소해 본 적 없어요."
"그럼 잘 됐네. 중학교 때 안 했던 것까지 합해서 하면 되겠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잔말 말고 빗자루 들어. 네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네 몫까지 해야 하잖아. 코도 그렇게 잘 생긴 녀석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일로 남에게 피해를 줘?"


이런 경우 인간성 운운하면서 열을 올려봐야 별 소득이 없다. 그보다는 아이가 모르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정말 아이들은 인간성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뭔가 잘 모르기 때문에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이들을 섣불리 속단할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끊긴 대화를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이런 충격요법도 효과가 있다.

"청소 시간마다 도망가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거보다 더 나쁜 짓일 수도 있어."
"예? 말도 안 돼요!"

"너 청소시간에 도망가면 네가 할 몫까지 누군가가 해야 하잖아. 만약 열다섯 명이 맡은 구역에서 너처럼 열네 명이 다 도망치고 단 한 사람이 남아서 청소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어?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매점에서 편하게 과자나 사먹고 있다면 그런 나쁜 짓이 어디 있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 그것보다 더 나쁜 짓이지. 하지만 의도적으로 살인을 할 마음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 그것을 과실치사라고 하지. 택시 운전사가 실수로 사람을 친 것도 바로 그런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런 경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내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드러움과 유머, 그것은 교사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품이라기보다는 교사의 전문성에 해당하는 영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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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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