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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추는 계곡은 이제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햇살이 비추는 계곡은 이제 맑은 물소리를 내며 흐른다. ⓒ 김민수
봄이 오는가 싶더니 며칠째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함박눈까지 동반한 꽃샘추위는 서둘러 봄을 맞이하러 나온 꽃들을 다 얼려버렸고, 아직도 며칠 더 머문다고 하니 시샘을 해도 보통 시샘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여전히 쌀쌀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풀려가는 날씨, 아무리 추워도 봄이 뒤로 가지는 않겠지요.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계곡에는 맑은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햇살이 물결에 부서지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꽃들이 아팠을까, 그리고 또 그 와중에 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궁금해 서울 근교의 가까운 산을 찾았습니다.

봄은 이렇게 작은 새싹으로부터 시작된다.
봄은 이렇게 작은 새싹으로부터 시작된다. ⓒ 김민수
여기저기 푸른 기운이 올라오고, 낙엽들 사이에 삐죽거리며 봄을 맞이하는 작은 새싹들이 꽃샘추위도 무섭지 않은지 여기저기 올라옵니다. 행진을 하듯 말입니다.

숲길을 걷는 발걸음에 밟힐까 발바닥이 근질근질합니다. 작고 연약한 것 같은 새싹, 꽃샘추위도 이기도 올라오듯 밟혀도 또다시 일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현호색의 새싹이 밤새 추위를 견딜 햇살을 모우고 있다.
현호색의 새싹이 밤새 추위를 견딜 햇살을 모우고 있다. ⓒ 김민수
지난해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와서 첫 번째 봄을 맞이했을 때 어디에 가야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첫 번째로 제법 귀족풍의 야생화 새싹을 만나 무엇일까 궁금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호색의 새싹이었다는 것을 꽃이 피어나고서야 알았습니다.

현호색이 있는 곳,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지 않아도 그들이 있는 곳에는 제법 야생화 마니아들도 좋아할 만한 꽃들도 피어나는 곳이랍니다. 추위에 올라오느라 힘을 써서 그런지 이파리들이 붉습니다.

며칠 계속된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있는 변산바람꽃
며칠 계속된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있는 변산바람꽃 ⓒ 김민수
이미 다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변산바람꽃, 꽃샘추위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여전히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육지에 발을 디딘 후 변산바람꽃과의 첫 대면이거든요.

제주에서 이사하던 날 변산바람꽃이 피어 작별인사를 해 주었는데 지난해는 꽃을 찾아 헤매다 시기를 놓쳐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서울 하늘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꽃샘추위가 다 가기도 전에 또 꽃몽우리를 만들어진다.
꽃샘추위가 다 가기도 전에 또 꽃몽우리를 만들어진다. ⓒ 김민수
작은 들꽃, 그들은 사람보다 결코 연약하지 않다.
작은 들꽃, 그들은 사람보다 결코 연약하지 않다. ⓒ 김민수
간혹 이런 행운도 있어야 삶이 살맛나겠지요. 꽃샘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꽃망울을 만들고 피어나고 있으니 신비할 뿐입니다.

저 가냘픈 몸으로 꽃샘추위를 무서워하지 않다니, 저렇게 피어나는 꽃이 예쁘니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할 만도 하다 생각이 듭니다. 한참을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작은 바람에 흔들거리는 바람꽃, 올해 너도바람꽃에 이어 두 번째 바람꽃을 만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텅빈 숲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봄은 시작된다(분홍노루귀).
텅빈 숲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봄은 시작된다(분홍노루귀). ⓒ 김민수
솜털을 입고 봄 마중을 나온 녀석도 있었습니다. 노루귀, 노루귀 중에서도 분홍색입니다. 하얀색, 분홍색, 청색 각기 색깔마다 간직한 아름다움은 다르지만 그들의 속내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원예종 노루귀의 변이종을 만들어 고가에 판다고 합니다. 저도 사진상으로 일본의 원예종 변이노루귀를 본 적이 있는데 원예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더군요.

꽃샘추위에 떨어진 꽃의 몫까지 살아가길.
꽃샘추위에 떨어진 꽃의 몫까지 살아가길. ⓒ 김민수
그런데 제주도의 세복수와 노루귀 등이 벌체되어 일본으로 팔려간다고 합니다. 우리 강산에 어떤 꽃이 피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그냥 피나보다 하는 사이에 그들은 우리의 꽃을 가져다 자신들의 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원예종들보다 우리 들판에서 자라는 꽃들을 개량한 원예종들을 만들고, 야생화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우리 꽃을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일 것입니다.

먼저 피어난 꽃은 꽃샘추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에 몇몇 노루귀들은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힘에 겨워 합니다. 그 가운데서 홍일점으로 피어있는 분홍노루귀,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청노루귀는 꽃샘추위가 오기 전, 긴 겨울을 보내고 갓 피어났던 것을 담았다.(3월 1일)
청노루귀는 꽃샘추위가 오기 전, 긴 겨울을 보내고 갓 피어났던 것을 담았다.(3월 1일) ⓒ 김민수
이꽃은 3월 1일, 긴 겨울 지난 후 너도바람꽃을 만나러 간 길에 만났던 청노루귀입니다. 목표가 너도바람꽃이었기에 더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돌아왔는데 그날 그곳에서 노루귀를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이들이 참 많더군요. 이 노루귀도 이번 꽃샘추위에 얼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시들어간 그 숲에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봄은 희망입니다. 꽃샘추위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잠시 소강상태인 날 그들을 만나고 오면서 드는 생각 "꽃샘할 만하네!"입니다. 저렇게 예쁘니 샘 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서 들려올 꽃소식에 마음이 콩닥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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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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