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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본협상 마지막인 8차 협상이 8일 개막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6차 협상 전체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는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오른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
한미FTA 본협상 마지막인 8차 협상이 8일 개막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막한 6차 협상 전체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는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오른쪽)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류승일
1년여를 끌어온 한미자유무역투자협정(FTA)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8일부터 열리는 8차 협상은 대규모 협상단이 참여하는 본 협상의 마지막이다. 양국간 협상타결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말했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모든 분야에서 전향적 자세로 협상타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국회 FTA특위에서 밝혔다.

하지만 이번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호의적이지만 않다. 타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력 부재를 실감하면서, 각종 현안에서 양보를 거듭해 사실상 미국에 국내시장을 거의 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타결 전야의 한미FTA를 두고, 현재 진행중인 협상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5가지를 꼽아봤다.

① 투자자-국가소송제: 사법주권 포기나 다름없어

한미FTA 쟁점 가운데, 가장 복잡하면서도 논란이 가장 큰 주제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란 투자와 관련된 협정 준수 여부에 대해 미국 '투자자'(미국 정부가 아니다)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기구에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처음 도입했다.

문제는 이 조항이 단순한 투자자 보호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법에 따라 추진중인 정부의 각종 공공정책에 대해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이익 침해'를 이유로 한국정부를 상대로 곧바로 국제중재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중재를 신청한 것만으로 우리 쪽 사법권은 배제된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이미 미국에 보낸 협상 초안에 ISD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3차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 위헌 가능성 등을 제기하자, 뒤늦게 각 부처 담당자를 모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연구를 진행했다.

법무부와 건설교통부 등 정부 내부에서조차 "미국이 보완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해 보상할 경우 헌법상의 재산권보장과 평등권 등을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부동산가격 안정화 대책 등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뒤늦게 한국 협상팀에서 미국에 ISD 부분 가운데 간접수용(공적인 규제로 투자자의 재산권을 간접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예외조항에 부동산과 조세, 반독점 정책을 넣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미국 쪽 반응은 썰렁하다.

송호창 변호사는 "(ISD는) 정부의 각종 법규와 제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개헌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처럼 중요한 내용에 대해 협상팀에서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은 지난 2월 12일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7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돼지와 염소 등 가축을 동원해 기습시위를 벌였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은 지난 2월 12일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7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돼지와 염소 등 가축을 동원해 기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② 쌀을 포함한 농산물 민감 품목 개방

우리 쪽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다. 쌀은 더더욱 그렇다.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아래에선 한국이 미국에만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2005년 WTO 쌀 재협상에서 201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의무수입물량을 할당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턴 관세율 400%를 적용하면서 쌀 시장도 개방된다. 이미 개방 일정이 확정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26일 한미통상장관 회담 자리에서 "쌀 시장 개방은 예외"를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정부가 협상 대상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일부러 내세워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도 나왔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이미 개방일정 잡혀 있는 쌀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쪽은 지난 2차 협상 이후 꾸준히 쌀을 포함한 농산물의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해 왔다. 정부도 그동안 "쌀만은 지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말 자체가 쌀 문제를 협상대상으로 삼겠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쌀 이외 농업분야에서 정부는 이미 많은 부분을 미국에 양보한 상태다. 모두 1531개 품목 의 관세철폐 여부에 대해 한국 쪽은 3차 협상 때 예외취급 품목수를 284개로 줄였고, 다시 235개(4차)로 줄였지만 미국쪽은 시큰둥했다. 8차 협상에선 100여개까지 낮춰, 미국 쪽에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농업물 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도 만만찮다. 관세가 완전히 철폐될 경우 국내산 쇠고기를 비롯해 돼지고기 등의 가격도 평균 7.8% 떨어질 것으로 본다. 고용 감소는 7만~14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생산과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곡물분야의 관세를 50% 인하하고, 나머지 품목을 즉시 관세 철폐할 경우 2조3000억원이 감소한다는 연구도 나왔다.

③ 뼈있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벼랑에 내몰린 국민건강권

이 문제는 이미 한미FTA 협상시작 전에 이른바 '4대 선결조건'으로, 국내 쇠고기 시장이 작년 1월 재개방됐다. 수입 허용 부위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였다. 하지만 이후 3차에 걸친 미국산 수입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뼛조각과 다이옥신 등이 검출됐고, 모두 되돌려 보냈다.

미국은 뼛조각(bone chips)은 뼈가 아니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한국의 위생검역 완화를 주장해 왔다. 물론 40%에 달하는 관세철폐까지 요구한 상태다. 작년 10월 이후 한미FTA 딜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을 깰 수 있는 아주 민감한 쟁점)로 부상하면서, 미국 쪽의 압박 강도 역시 높아졌다.

미 상원 재경위원장인 맥스 버커스의 노골적인 시장개방 압력과 국내 재정경제부와 외교부 등 경제통상 관료들의 검역체계 완화 요구도 이어졌다. 결국 7차 협상 직전에 한미 양국의 FTA 위생검역분과장이 참석한 쇠고기 검역관련 기술협의에서 한국 쪽은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 반송조치하고, 나머지는 수입을 재개하겠다는 양보안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22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뼛조각에 이어 다이옥신까지 검출되자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22일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뼛조각에 이어 다이옥신까지 검출되자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농림부는 지난 5~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농업 고위급 협상에서 이같은 내용을 미국 쪽에 다시 전달했고, 빠르면 이달 안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미국 쪽 반응은 회의적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수석농업협상대표인 리처드 크라우더 대사는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미국업체들이 실제로 수출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 쪽은 여전히 뼛조각 자체를 문제 삼지 말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실장은 "미국은 뼈를 조각내면 뼈가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수입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안전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경우 광우병 위험에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④ 의약품 시장 개방: 미국의 신약 특허 연장과 약값 적정화방안 무력화

의약품 시장 문제도 쇠고기와 함께 국민의 생명과 보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이 역시 이번 FTA 4대 선결조건의 하나였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약값 적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FTA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2차 협상 때 한국의 약값 적정화 방안 철회를 요구했다. 자국의 제약회사들이 만든 약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을 중단했다.

게다가 협상이 거듭되면서 미국은 자신들의 신약 특허를 연장해줄 것과 약값을 산정할 때 미국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별도의 이의제기 기구 상설화 등을 요구해 왔다. 8차 협상을 앞둔 현재, 정부는 사실상 미국 쪽의 요구를 거의 대부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약값은 심사평가원에서 경제성을 평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해당 제약회사와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면서 "하지만 이번 한미FTA에선 마지막 단계에서 제약회사가 별도의 독립기구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해놓게 되면, 정부의 약값 적정화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쪽의 신약 특허 연장도 허용될 경우, 국민의료비 부담도 증가하게 된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미 쪽의 요구가 수용되면) 향후 5년간 6000억원에서 1조원의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체결대책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운영위원이 지적재산권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체결대책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운영위원이 지적재산권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⑤ 서비스, 지적재산권, 전자상거래 시장 대폭 개방

미국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미국은 자동차와 의약품, 쇠고기 등을 제외하고 상품분야에 대해선 전략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라며 "오히려 자신들이 자랑하는 서비스와 투자, 지적재산권, 전자상거래 분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8차 협상에서 미국은 지적재산권 분과장으로 종전보다 고위직인 USTR 지재권 대표보를 참석시킬 예정이다. 또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도 클레이 로워리 미국 재무부 차관보가 한국에 들어와, 고위급 협의를 진행한다.

최근 일부에서 교육과 의료,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해 한미 양쪽 모두 소극적으로 일관하면서 낮은 수준의 FTA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었다. 하지만 미국의 관심은 당초 이쪽보다는 지적재산권과 전자상거래 등이었다.

한국은행의 한미간 서비스무역 적자 내용을 보면,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여행수지가 -32억달러로 가장 높고,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 부분에서 -21억달러로 두 번째로 적자규모가 크다. 의료와 법률 서비스쪽의 적자는 -9억 달러 수준이다.

미국은 현재 지적재산권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일시적 저장, 기술적 보호조치 등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비롯해 디지털 컨텐츠 등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도 미국 요구대로 갈 경우, 한국 지식경제의 대미 종속 또는 의존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경제가 이들 분야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고 있고, 경쟁력이 강한 만큼 한국시장 내에서 최고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이미 미국의 요구를 거의 수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들 이외 국내 자동차 시장의 세제 개편 요구와 공공서비스 부문의 개방 등에 대한 미국의 요구도 여전하다.

이 교수는 "현재 진행대로라면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규모의 FTA를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에 성사시킨 매우 성공적인 협상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내 협상단도 나름의 논리를 만들겠지만, 그래도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내용은 너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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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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