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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깊고 강렬합니다
향기가 깊고 강렬합니다 ⓒ 김 관 숙
요즘 우리 집은 해가 질 무렵만 되면 강렬한 행운목 꽃향기에 묻혀들고는 합니다. 행운목 화분은 거실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깊고 짙은 향기는 주방이며 온 집안 구석구석까지 스며 들어가 잔잔하게 고여 있습니다. 한 나무에서 자그마치 탐스런 꽃대가 세 대나 올라와 휘어져 있으면서 꽃들이 만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꽃대에서 피어난 자잘한 하얀 꽃들은 끈적끈적한 꿀까지 떨어뜨리면서 밤새껏 깊은 향기를 뿜어냅니다. 백합 향기 같기도 하고 라일락 향기 비슷합니다. 벌써 세 번째나 피었습니다.

스무 살이 넘었습니다. 꽃대가 세 대나 나왔습니다
스무 살이 넘었습니다. 꽃대가 세 대나 나왔습니다 ⓒ 김 관 숙
꽃들이 자잘하고 예쁩니다
꽃들이 자잘하고 예쁩니다 ⓒ 김 관 숙
꽃은 자잘해도 한 송이에 하얀 꽃잎이 여섯 개나 되고, 꽃술은 일곱 개입니다. 꿀을 떨어뜨리고 짙은 향기를 뿜어내는 향기내기 주역들입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앙증맞고 예쁘고 신기합니다. 저녁만 되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활짝 피었다가 새벽에 봉오리가 되고는 하는데, 고 예쁘고 깜찍한 주역들이 모두 감쪽같이 그 작은 꽃봉오리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몽오리가 앙증 맞습니다
몽오리가 앙증 맞습니다 ⓒ 김 관 숙
오래된 나무입니다. 아들애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딱 한 뼘 길이 토막에 달랑 순이 두 개가 붙은 것을 시장에서 장을 봐서 돌아오는 길에 샀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아들애는 삼십 중반을 넘었고 행운목은 스무 살이 넘었습니다.

그때 나와 같이 장을 보던 이웃의 딸도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나오다가 이웃이 시장 입구의 꽃가게에서 딸애의 입학 기념으로 화분 하나를 샀습니다. 나는 아들애 중학교 입학기념 화분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용돈을 올려 줘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툭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즐기는 이웃이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으로 붉은 꽃들이 화려하게 핀 그 비싼 영산홍 화분을 사서 배달을 시키는 것을 보자 공연히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갑에 딱 한 장 남은 오백원짜리 푸른 종이 돈을 내고 순이 두 개 붙은 행운목 토막과 봉숭아 모종 하나를 샀습니다.

그 이웃의 집에서 동네 반상회를 할 때 그 비싼 영산홍 붉은 꽃 화분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없이 찬사를 받았습니다. 자연히 그 집 딸애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는 소리도 따라붙었습니다.

내 눈에 영산홍 화분은 사치입니다. 그 이웃도 나도 남편이 말단 월급쟁이였습니다. 우리 아들도 중학교에 입학한 것을 알면서도 이웃들은 내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영산홍 화분은 크고 화사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 그 이웃이 이사 갔습니다. 이웃이 버리고 간 쓰레기에 그 영산홍 화분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돌보기를 게을리했던지 이파리는 바싹 마르고 꽃나무는 삭정이가 다 되었습니다. 근사한 도자기 화분은 금이 쩍 갔습니다.

접시 물에 있던, 내가 산 나무토막 같던 행운목은 하얗게 뿌리가 나서 화분에 심었습니다. 그래서 흙 기운을 받고 두 개의 순이 이파리를 달고 두 개의 줄기로 예쁘게 변해가고 있는 중인데, 그 화려하던 영산홍은 화분까지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때 나는 꽃 화분 역시 입으로 눈으로 가꾸는 게 아니라 정성어린 마음으로 손으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나는 그 작은 행운목이 행여라도 영산홍처럼 될까 봐 겁을 먹으면서 우리 집에서 햇볕이 제일 잘 드는 거실 끝에 모셔 두고 신경을 썼습니다. 가을이면 분갈이를 해 주었고 물도 제때에 맞추어서 주었습니다.

물만 먹고도 행운목은 그야말로 대책 없이 싱싱하게 잘 자라 올랐습니다. 키가 거실 천장에 닿을 적마다 뿌리에서 1미터 정도의 길이를 남겨 놓고 줄기를 뚝 잘라 버리고는 했습니다.

잘라낸 줄기는 화분에 꽂아 놓기만 하면 뿌리가 하얗게 나옵니다. 해서 잘라 낸 줄기는 다른 화분에 꽂아 놓기도 했고 이웃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줄기를 잘라 낸 다음에는 행여라도 세균이 침입해 행운목이 썩을 까봐 촛불을 켜서 촛농을 만들어 그 줄기가 잘려나간 동그란 면에다 질펀하게 부어 주었습니다. 일주일쯤이 지나면 하얀 촛농을 쓰고 멋없이 막대기처럼 서 있던 행운목 줄기 맨 위쪽으로 봉곳봉곳한 게 생깁니다. 싹이 나오려고 두텁게 덮고 있는 껍질을 용을 써서 가르는 중입니다.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용을 써서 나오는 싹이라고 모두 거둘 수는 없습니다. 매번 솎아 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나무에 4개의 줄기가 풍성한 푸른 이파리들을 달고 근사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군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과 함께 긴 세월을 살아온 행운목은 그동안 두 번의 꽃을 피웠습니다. 기이하게도 딸애가 대학에 입학하던 그해 봄에 꽃대 하나가 나와 흐드러지게 피었고, 아들애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봄에도 꽃대가 하나 나와 피었습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올해 또 피었습니다. 세 번째 핀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세 줄기에서 꽃대가 나왔습니다. 세 줄기에서 꽃대가 동시에 나온 것입니다. 한 나무에서 꽃대가 세 대나 나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 설날 아침에 남편이 꽃대 세 개가 볼펜 길이만큼 나온 것을 발견하고 집안이 쩌렁거리게 소리를 쳐 나를 불렀습니다.

"어, 이리 좀 와 봐! 아, 글쎄 떡국이구 뭐구 이리 좀 와 보래두!"

남편의 목소리는 세뱃돈 받은 아이처럼 잔뜩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나 역시 기쁘고 들뜬 목소리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난 사위랑 며느리 보는 행운이 왔으면 좋겠는데…, 자기는?"
"십 년만에 귀한 꽃을 보는 것만도 행운인 거라구."


남편은 나를 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한 말에 동감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나옵니다. 참 멋도 무엇도 없는 사람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같이 맞장구를 치면 곱쟁이로 튼실하게 씨가 된 말이 행운이 되어 우리 집 문을 부서져라 밀고 들어올지도 모를 텐데 말입니다.

행운목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LUCKY TREE'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유래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올해는 우리 집에 행운이 올 것만 같습니다. 어떤 행운인지는 모르지만 기왕이면 행운의 여신이 내가 바라고 기다리는 행운을 가슴에 안고 바람처럼 들이닥쳤으면 좋겠습니다.

새벽이 오자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새벽이 오자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 김 관 숙
따스한 햇볕 속에 행운목 꽃대에 앉은 꽃봉오리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밤새 꽃을 피워 향기를 뿜어 내느라고 피곤했던지 저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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