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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윤장호 하사의 영정 사진이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지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월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군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병장이 폭탄 테러에 의해 숨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언론들은 시신의 운구행렬과 유가족을 쫓으며 베트남전 이후 해외 파병된 군인이 사망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 숨진 고 윤장호 병장이 어렵게 공부한 엘리트였다는 것, 그럼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파병을 지원했다는 점 등을 부각시키며 이 '애국적인'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같은 군복 입어 자랑스럽다' (2007년 3월 2일자 <서울신문>)
이 청년들이 있기에… (2007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尹장호 병장의 희생 기리며 '平和 결의' 다진다 (2007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합동참모본부는 고인의 희생을 기려 그 죽음을 '전사'처리하겠다고 밝혔는데 '전사'란 '적과의 교전 중에 죽음'을 의미한다. 언론과 정부가 앞장서서 고 윤장호 병장의 죽음을 떠받들고 있지만, 정작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정착과 안정을 위한 인도적 지원활동(국방부 대변인 성명 인용)'을 위해 파견된 건설공병지원단인 다산부대에서 첫 '전사자'가 나왔다는 불합리한 사실에 관심을 갖는 이는 적다. 단지 고인의 아버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가도 한국군은 안전하다고 선전하더니…"라며 말을 잇지 못할 뿐이다(<경향신문> 3월 1일자 인용).

아프가니스탄 파병의 참의미

@BRI@아프가니스탄에 다산부대가 파병된 것은 대테러 전쟁 지원을 요청한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 세력이라고 지목된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후 무력으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점령정책을 포기하지않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 와중에 무려 4000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점령군에 대한 반발로 탈레반을 지원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더한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수도 카불을 버리고 파키스탄 접경지대로 피신했던 탈레반은 지난해부터 게릴라전과 자살폭탄 공격을 본격화했고, 봄이 되면 2000여 자살폭탄 공격조를 앞세워 대공세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정보 당국자조차 파키스탄이 탈레반의 거점을 제거해주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탈레반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전망은 희박하다고 증언할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치안상황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2007년 3월 1일자 <한겨레> 사설 '철군으로 윤 병장의 희생에 답하라')

특히 이번에 윤병장이 희생된 바그람은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도 미군의 반인권적인 행위로 악명이 높은 지역이다. 2005년 5월 20일자 <뉴욕타임즈>는 이곳 수용소에서 고문과 구타로 숨진 테러용의자들의 사건을 고발하기도 했다. 당시 수감자 조사책임자는 캐롤린 우드 대위로, 그는 이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책임자가 되어 그곳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러한 곳에서 과연 다산부대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었을까. 국회보고자료(<오마이뉴스> 3월 2일자 인용)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 11월까지 다산부대는 미군 및 동맹군기지 토목 및 건축공사 지원에 3622건 동원됐고, 주 아프간 한국대사관 경계지원 활동을 펼친 것이 전부다. 국방부가 주장하는 대로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기보다는 현지 주둔군의 임무를 보조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방문을 겨냥한 테러에 한국군 장병이 희생된 것은 이러한 파병부대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파병은 강행되어야 한다?

해외 파병의 직접적인 결과로 한 장병이 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은 혹 이 사건으로 인해 철군 여론이 거세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우리는 테러와 분쟁으로부터 세계의 평화를 지킬 의무가 있다. (중략) 그런 점에서 윤 병장의 고귀한 희생을 반전(反戰)이나 해외파병 반대, 파병부대 철수 주장의 빌미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당에서 벌써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유감이다. (2007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사설 尹장호 병장의 희생 기리며 ‘平和 결의’ 다진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이 그 무슨 호기인 듯 조기철군 주장을 앞세우고 있어 국민의 아픈 가슴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 (중략) 테러사건을 철군주장 빌미로 삼는다면 그것은 테러 앞에서 뒷걸음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유엔의 도움으로 건국되고 세계유수 경제권으로 거듭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답게 2 ·27 테러는 국제 신의를 새삼 강조하는 역설의 기회여야 한다. (2007년 2월 28일자 <문화일보> 사설 '아프간 悲報, 그러나 테러에 굴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부 시민단체에서 나오기 시작한 '조기 철군' 목소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윤 병장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와 국민이 보다 의연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테러 앞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고 우리 국민의 자존심도 고양된다. (2007년 3월 1일자 <중앙일보> 사설 '윤 병장 희생의 참뜻 소중히 살려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매일 수건의 테러가 벌어진다. 대부분 미군이 직접적인 표적이고, 표적이 된 미군은 다시 보복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는 속출하고 있고, 점령군에 대한 현지인들의 분노와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지난 3월 4일에도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 라르주에서 미군이 미군 차량에 대한 폭탄공격에 대한 보복성 공격으로 민간인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 10여 명이 숨지고, 34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후 사고현장에서는 "미군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는 수천여 명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테러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인식 없이 무조건적으로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평화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다. 부시가 집권한 이래 끊임없이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국민들이 오히려 더욱 직접적인 테러 위협에 노출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일부 신문들이 주장하는 파병 강행은 이러한 악순환을 부추기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행동이다.

가장 좋은 안전책은 파병철회 뿐

일부 언론은 이번 사건을 통해 부대의 안전대책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철군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파병 강행에 대한 의지가 전제된 것이다.

윤 병장의 참변은 베트남전 이후 해외에 파병된 한국군으로서 처음 테러에 의해 희생된 사례다. 지금 우리 장병은 이라크 2300여명을 비롯, 세계 8개 분쟁지역에 2500여명이 파병돼 유엔평화유지군(PKO)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 병장이 근무한 바그람 지역은 그동안 테러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곳이다. 윤 병장의 희생은 결국 그 어느 파병지도 테러 위협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언제든 제2의 불행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2007년 3월 1일자 <서울신문> '사설' 해외파병 장병 안전대책 강화해야)

이번 아프가니스탄 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비전투 업무를 수행중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예기치 못한 테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명 피해가 이어진다면 평화유지 등의 파병 목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으로부터 철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2007년 2월 28일자 <연합뉴스> 연합시론 '파병장병 희생 더 이상 없어야')


이 주장은 테러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 데서 나온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3월 1일자 뉴욕타임스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군 대변인 톰 콜린스 대령의 언론 브리핑 기사를 실었는데, 이에 따르면 주둔군은 바그람 지역의 폭탄테러 위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를 한국군 부대에 알리지 않아서 애꿎은 윤병장이 사망하게 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 공유조차 되지 않는데 안전대책이 가능하기나 한가. 파병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장병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파병 자체를 철회하여 그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파병에 지원하면 애국?

파병강행을 주장하는 언론의 행보 중에서 특히 악랄한 것은 윤병장의 죽음을 미화시키며, 젊은이들이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부추기고 있는 모습이다. 일제 시대 징병을 독려하던 이 신문들의 친일 전력이 다시금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국력에 맞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중략) 우리는 그 부담을 감내하는 데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우리의 기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이 세계 12위권 국가가 당연히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역사상 세계의 주역이 된 나라 모두가 그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가는 개척의 길이기도 하다. 도전과 개척의 길은 위험한 길이다. 그러나 그 위험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2007년 3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 '고 윤장호 병장의 희생을 애도한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의 요청으로 지원군을 파병한 것이 우리의 국력에 맞는 역할이고, 당연히 가야할 길인가? 역사상 힘을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던 일은 많았지만 피지배국가 민중들의 저항으로 대부분 그 끝이 좋지 못했다. 우리만 해도 36년간의 일제 지배에서 벗어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베트남의 치욕스러운 파병을 기억못한 채, 해외 파병을 '도전과 개척의 길'로 미화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등떠미는 조선일보는 고 윤장호 병장의 희생을 애도할 자격이 없다.

▲ 2007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취재일기'
ⓒ 중앙일보
...해외 영주권자들이 앞다퉈 자원입대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든든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조국이나 민족에 대한 가슴 뜨거운 애정이 옅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높았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사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2007년 3월 2일자 <서울신문> 사설 ‘같은 군복 입어 자랑스럽다’)

...파병 환송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경기도 광주 특전교육단에서 만난 '청년 엘리트'들의 표정은 화사했다. 윤 병장의 사망 소식에도 이들은 한목소리로 "목숨 내놓을 각오가 없으면 자원도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영주권자인 한 장병은 서툰 한국말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봉사와 희생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역 장성인 허일회 준장의 아들인 허명현 일병은 '두렵지 않으냐'는 물음엔 "내 나라를 위해 나부터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2007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취재일기 '이 청년들이 있기에…')


이 기사들이 사실이라면, 해외파병을 지원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의 참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더불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지는 못할 망정 그것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언론의 모습 또한 유감이다.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국가가 하고 있는 일에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곧 '애국'이 아니며, '민족에 대한 가슴 뜨거운 애정'이 곧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데 동원된다면 그것이 정의롭지 못한 일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아프가니스탄에 앞서 파병되었던 한 선배장병의 고백을 전한다.

한국군 간부들의 통역을 전담했던 나는 경악스런 일에 종종 마주쳐야 했다. 다산부대에서 근무하는 현지 근로자들에게 ‘카불에서 진품 보석을 사오지 않으면 이 총으로 쏴 버리겠다’는 한 간부의 협박을 통역하면서, 한국군 소총 앞에 겁에 질린 현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심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아프간 국민들에게 평화와 재건을 선사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대의명분과 달리 나는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돼야 했다. 학창시절 외세에 능욕당한 조상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게 된 나에게 이런 한국군의 횡포는 통쾌함보다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2007년 3월 1일자 <한겨레> 기사 “나를 괴롭힌건 ‘적’ 아닌 ‘우리’였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에서 모두 불러들여라

한국 정부의 파병에 반대하는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고 김선일씨가 사망했을 때도 수구 언론은 한결같이 파병 강행을 주장했었다. 올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이와 같은 모습은 변함이 없다. 해외 파병으로 얻을 수 있다던 국익은 파병을 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스스로 일으킨 전쟁으로 미국이 진퇴양난에 빠짐으로써 그 대의명분 또한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학습능력이 없는 정부는 작년 말 다시 한 번 레바논 파병을 강행했다. 결국 그 댓가는 국민이 치르게 되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나라안이 시끄럽다. 검증하고자 하는 자와 검증받고자 하는 자는 많지만 올바른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럴 때 파병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이곳에서 파병을 철회하는 것이 곧 국익이고, 진정한 '평화 결의'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언론비평웹진 pilhwa.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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