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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3월3일. 집에 있는 재료들로만 만든 아주 간단한 오곡밥. 식탁 유리에 형광등이 비춰 마치 천장에 밥상을 차려 놓은 듯합니다.
ⓒ 서미애
보름이 다가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바로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 오곡밥을 해먹을 준비를 아무것도 해놓지 못했습니다. 오곡밥은 본래 보름 하루 전날에 해서 아홉 끼를 먹어야 한다는데 전날인 어제 아침, 부업으로 하는 일이 바빠 시간도 없고 재료도 없고 해서 해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며 냉장고를 뒤져 보았습니다.

일단 엄마가 보내주신 찹쌀은 있고, 호박죽을 끓여 먹고 남은 팥도 있고, 먹다 남은 수수도 조금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밥에 넣어 먹는 검정콩도 있어 오곡이란 아무 곡식이든지 다섯 가지만 넣으면 되겠지라는 제 맘대로의 정의를 내리고 나물거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언니가 보내 준 죽순이 있고, 지난 김장 때 삶아서 말려놓은 무청 우거지가 있고, 무가 있어 무나물까지 하면 세 가지는 되겠다 싶어 있는 재료를 가지고 대충 해 먹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침밥을 하면서 한쪽 가스불에는 팥을 삶고 마른 죽순을 삶고 우거지와 검정콩은 물에 불려 놓았습니다.

점심때쯤 해 먹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곤 공장에서 재촉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꾸며 놓은 발코니로 나가 또 바쁜 손놀림으로 일을 하다가 남편이 점심을 먹으러 올 시간과 아이들이 하교 갈 시간에 맞추어 실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압력밥솥이 칙칙칙~ 끓어갈 즈음,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멥쌀, 찹쌀, 팥, 콩, 수수 이렇게 다섯 가지를 억지로 끼워 맞춰 오곡밥이라고 지었는데 오곡은 보이지 않고 대충 무늬만 비슷합니다.

그리고 삼색 나물. 우거지, 죽순, 무 이렇게 세 가지가 무슨 삼색나물인지? 제가 붙인 이름만 그럴 듯합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오곡밥이 맛있다고 아이들은 밥그릇에 코를 박고 후후 불어가며 먹기에 바쁜데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슬쩍 제 어렸을 적 보름날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커다란 가마솥에 오곡밥을 하나 가득 해놓고 한 삼일 동안은 질리도록 먹었던 것 같습니다. 보름날 아침이면 온 동네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그 사이렌 소리는 아래, 윗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였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면 먹던 밥숟가락까지 내던진 사람들이 마을 중앙로에 모여들었는데 중앙로에는 며칠 전부터 마을 청장년들이 새끼를 꼬아 만든 긴 줄이 200미터 쯤 늘어져 있습니다. 그 줄은 바로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양쪽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윗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오고, 아랫마을이 이기면 흉년이 온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보름날이면 해마다 치러지는 마을의 풍습이었습니다.

"어영차~ 어영차~"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힘껏 잡아당긴 줄은 마치 팽팽한 활시위처럼 한치의 양보 없이 당겨지고 꼭 우리 팀이 이겨야 한다는 사람들의 굳은 의지 또한 바지랑대를 바짝 추켜올린 빨랫줄처럼 팽팽해집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줄다리기가 윗마을의 승리로 끝나는 날이면 지금 당장 풍년이라도 맞은 듯 얼씨구~절씨구~지화자 좋다,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뜨고 그 자리엔 이내 멍석이 펴지고 흥겨운 윷놀이 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모야~" "윷이야~"

그렇게 마을 아저씨들이 흥겨운 윷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동네 아줌마들은 마을회관에서 장구 장단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그날 주홍색 저고리에 짙은 감색 치마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구를 치던 엄마의 모습은 오래도록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해가 서산에 45도쯤의 기울기로 걸려 있을 때쯤이면 온 마을에는 흥겨운 농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잔 얼큰하게 취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저씨 아줌마 없이 덩실덩실 어깨춤에 마을 잔치는 최고조에 이릅니다. 그 농악놀이는 지신밟기로 이어져 집집마다 액을 물리치고 복을 빌어주러 다녔습니다.

덩달아 신이 난 아이들은 구멍 뚫린 깡통에다 숯불을 넣어 빙빙 돌리며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순식간에 학교 운동장은 도깨비 불 같은 쥐불들이 둥둥 떠다니고 밤을 잊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습니다.

옆집 한희 언니는 쥐불놀이에는 아랑곳없이 느티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달님에게 "달님, 달님, 우리 한재가 말을 하게 해 주세요, 꼭 말하게 해주세요"라며 말 못하는 동생 한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한지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가만히 서 있는데 "오늘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준대. 너도 빨리 소원을 빌어봐"라며 재촉을 합니다. "달님, 제 다리도 낫게 해 주세요." 엉겁결에 저도 한희 언니를 흉내 내 제 다리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곤 한희 언니의 말대로 정말 제 다리가 나으려나 하고 매일 같이 다리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달님의 영험함이 영 신통치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제 소원의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제 다리는 아직도 낫지 않습니다. 올해는 비가 와서 보름달 구경도 못 한다는데, 제 소원은 어디에 빌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부디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라 경제가 고장 난 체인을 갈아 끼운 자전거 바퀴처럼 쌩쌩 돌아가게 해 달라고, 그래서 택시운전을 하는 남편도 공장에서 일감을 가져와 부업을 하는 저도 터져 나오는 한숨을 그만 좀 쉬게 해달라고 구름 뒤에 숨어 있을 달님에게 살짝 빌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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