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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에 아버지가 보낸 편지(2007년 2월 23일 찍음).
ⓒ 서미애
미애 답서

너가 보낸 편지 잘 받았다. 너를 보고 싶은 차 너의 편지라도 보니 반갑다. 많이 춥고 고대고 먹고 싶은 것도 많지? 먼저 주일 교회에서 대신방 가정예배를 하느라 떡을 해서 대접도 하고 먹었는데 너의 어머니와 함께 너 생각을 무척 했단다. 좀 갖다주려고 했으나 너의 언니가 곧 올 듯해서 오면은 같이 너에게로 가려고 그만두었다. 다음 주일에는 온다는 편지가 왔으니 오면은 너에게로 갈 것이다.

그리고 이곳 가정에는 아무 일 없고 진우 공부도 많이 부지런히 하고 금전 관계도 이제 우선은 별 극장이 없게 되었다. 즉. 재수가 있어 가막골 논이 팔렸다. 지방 사람은 도저히 살 사람이 없을뿐더러 판다 하더라도 약 60여만원 밖에 못 받을 것인데 부산 사람 복숭아밭 (산) 주인에게 오집사 소개로 95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 대신 소개비를 10만원 지불하고 85만원 차지한 셈이다. 계약금 30만원을 받아 먼저 장에 송아지를 사서 먹이는데 죽도 잘 먹는다. 그러니 이제 집안 걱정은 하지 말고 너의 장래를 위하여 또한 4년 후 진우 대학의 진학을 위하여 지금부터 준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너로서는 무엇보다 정포 기술을 보다 빨리 손사게 정확하게 익히는 것이 제일이니 모든 고생을 참고 부지런히 수련해라. 그리고 너가 말한 것은 그렇게 하도록 해라. 그런데 꼭 정포공으로 써 주겠느냐? 월급은 얼마 주겠느냐? 한 번 더 가서 확인을 하고 며칠경에 오겠다고 약속을 해라

정포공이 되지 않고 양성으로 있다가 곧 정포공으로 시켜준다고 하면 그것은 꼬시는 것이니 양성으로는 가지 말도록 해라. 참 이렇게 하자. 다음 주 너의 언니가 오면 너의 어머니와 함께 너에게로 가서 그 회사에 가서 확약을 하는 것이 너 혼자 가서 묻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만일 너의 언니가 오지 않으면 금요일경에 너의 어머니 혼자라도 보낼 께 그리 알어라. 그리고 먹고 싶은 것 돈을 빌려서라도 사먹고 몸조심해라. 금전에만 치중하고 몸을 소홀히 하면 오히려 큰 손해가 난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지키고 영양섭취도 자기가 알아서 적당히 해조야 된다. 몸조심하고 일 잘해라.

11. 24 아버지


@BRI@설날, 친정집 다락방에서 예전 제 편지함을 뒤지다가 찾아온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제가 공장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의 편지인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어린 나이에도 공장에 나가 돈을 버는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누이나 여동생들이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그 시절, 저 역시도 다리가 불편해 버스를 탈 수 없다는 이유의 그럴 듯한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 하기는 매한가지. 그러나 언제까지나 부모님 그늘에서 살 수만은 없는 일,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열어 주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으로 공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철커덕거리며 돌아가는 베틀 기계소리와 윙윙 돌아가는 회사기 소리를 들으며 베틀에서 짜내온 원단을 검사하고 흠집 부분을 짜기워 수정하는 ‘정포’라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지요. 그때 하루 일당이 천원. 일요일을 빼면 한 달에 2만6천원 정도. 거기에서 식대와 생활비 2천원을 남기고 모두 동생들의 학비에 보태라고 집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공장에 나간 언니가 그러했기 때문에 저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덕분에 지금은 번듯하게 자란 동생들이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아버지는 19년 전에 고인이 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편지를 29년만에 다시 꺼내보며 장애인 딸을 공장에 내보낸 걱정 어린 마음과 자상함이 생경하게 다가오며 아버지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 있을 것만 같은 편지를 자꾸만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요즘은 이메일이다 문자다 해서 편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빠르고 편리하다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잊었던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남아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오래도록 이어주는 편지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통신수단이었는지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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