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신주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전신주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 김현
온 들녘에 까마귀다. 논길을 따라 서 있는 전신주에도, 전깃줄에도 시커먼 녀석들이 앉기도 하고 날기도 하며 까악 대며 노닐고 있다. 한동안 사라졌던 까마귀 때를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옛날엔 까마귀가 참 많았다. 추수 끝난 들판은 까마귀 떼들로 온통 시커멓게 덮였다. 특히 눈이 내린 후의 설원 위를 수놓은 까만 점들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우리들이 그 수많은 점들을 향해 고함을 치고 뜀박질하며 달려가면 그 점들은 어느새 검은 날개를 활짝 펴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허면 하늘은 점점이 박힌 검은 점들로 아름답게 빛났다.

누가 우리 휴식을 방해하는 거야.
누가 우리 휴식을 방해하는 거야. ⓒ 김현
어른들이 까마귀를 불길한 징조를 알려주는 새라고 말을 했지만 어린 나에겐 그저 까만 옷을 한 새에 불과했다. 까악까악 울어대는 소리도 무섭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의문은 들곤 했다. 저 새의 살도 온통 까만색일까? 그런데 그런 의문은 나만이 가진 게 아닌가 보다. 아홉 살 된 아들 녀석도 까마귀 떼를 보자 내가 품었던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걸 보면.

들판 위 전신주 주변을 노닐고 있다
들판 위 전신주 주변을 노닐고 있다 ⓒ 김현

ⓒ 김현
사실 까마귀가 우리 민족에게 불길한 새로 인식되기 시작한 지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본래 우리 민족은 까마귀를 하늘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령한 새로 생각했다. 예부터 삼족오(三足烏)를 숭배하는 것도 그런 의미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가 저승사자마냥 불길함을 상징하게 된 연유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화로 '차사본풀이에'에 전해져 오는 내용이다.

하늘을 수놓은 점점의 군무들
하늘을 수놓은 점점의 군무들 ⓒ 김현
신은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까마귀를 시켜 인간세계에 전하도록 하였다 한다. 그런데 한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 까마귀가 적패지를 잃어버렸다. 당황한 까마귀는 제멋대로 소리를 내어 외쳐댔고 이에 어른보다 아이가, 부모보다 자식이 일찍 죽게 되었다. 본래 주어진 인간의 수명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죽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까마귀 울음소리를 불길한 징조를 가져오는 새라 여겨 멀리했다고 한다.

드라마나 만화 영화에서 저승사자가 나타날 때 그 길잡이로 종종 까마귀가 등장하는 걸 보면 사람들 인식 속에 까마귀가 어떤 존재로 인식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상종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음이라.

마을 앞까지 와 까악 대며 놀고...
마을 앞까지 와 까악 대며 놀고... ⓒ 김현
그런데 까마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우리나라뿐만은 아니다. 중국이나 유럽에서도 불길한 새로 터부시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중국에선 검은 까마귀가 아닌 붉은색이나 금색으로 그린 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의미하는 길조로 인식했고, 아메리카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까마귀를 창세신이 변한 모습으로 생각하여 길조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전승되어온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고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허면 우리 옛 선조들은 까마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대부분 부정적인 인식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슬픔을 전해주는 새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 김현
하룻밤이 한 해인 듯 까마귀도 잠 못 이뤄
까옥까옥 우는 소리 내 가슴에 부리어라
이별의 한스러움인 양 우수수 밤꽃이 지네


조선 중기 문인으로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함께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고 있는 상촌 신흠의 시이다.

이별의 아픔과 애틋함을 까마귀가 우는 소리에 감정을 이입하여 노래하고 있다. 까마귀하면 불길함을 상징하는데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소재로 사용하였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시인의 귀엔 귀촉도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애절하게 들렸나 보다.

ⓒ 김현
사실 까마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리하고 협동심이 강한 새이다. 까치가 두세 마리, 많으면 열댓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에 비해 까마귀는 수백 마리가 어울려 다닌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리의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한다. 그런데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며 다니는 걸 보면 그들만의 어떤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또 까마귀의 영리함을 알 수 있는 한 예가 있다. 이들은 먹이를 먹을 때도 쉽게 부패하는 것을 먼저 먹고, 잘 썩지 않는 것들은 저장해 두었다가 먹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난 까마귀가 썩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산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겨울이 물러갈 무렵이면 한 떼의 까마귀가 날아와 나무 위에 앉아 까악 대곤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나무 위에 앉아 놀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눈치껏 날아가곤 했다.

ⓒ 김현
그런데 까치는 달랐다. 이 녀석들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늘 먹이를 찾아 다녔다. 먹이가 부족한 곳이어서 그런지 까치들이 주로 가서 먹이를 찾는 곳이 쓰레기장이었다. 주로 음식 쓰레기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까치들이 와 있었다. 녀석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그만큼 익숙해서인가 보았다.

까마귀와 까치. 그 두 녀석의 크기나 형태는 비슷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판이하다. 아마 색깔 때문인 것 같다. 어느 결엔가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조로, 까마귀는 불길한 소식을 가져다주는 흉조로 인식된 건 그 새와는 색깔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겉모양만 보고 그 대상을 평가하는 우리 인간의 의식이 까치를 길조로 까마귀를 흉조로 인식하게 한 게 아닌가 싶다.

들판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는 까마귀. 어머니는 그 흑백의 군무를 이루는 까마귀들을 보며 '바람이 나련가 보다'고 말한다. 까마귀들이 나타나면 바람이 분다는 속설이 있다며. 그러나 바람이 일거 말건 난 그저 반가움에 녀석들을 따라 다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어린 아들 녀석과 함께.

ⓒ 김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