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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의 죽음 1주기 때 유해를 뿌린 임진강가를 찾은 아버지 박정기씨(책 28쪽)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때 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 누구도 저 아버지의 심정을 대변할 수 없으리라. 우리 현대사에 고문의 잔악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던 박종철의 죽음!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지독한 아픔이었고, 결국 군부독재를 소멸케 했다. 고문으로 숨져간 한 청년의 죽음으로 이 땅의 민주화는 거대한 뿌리를 내렸다.

1987년 1월 14일이었다. 열사 박종철이 싸늘한 주검으로 승화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했으리라. 우리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동안 민주주의도 발전을 거듭했다. 그 발전의 중심에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자리하고 있다.

6월 민주항쟁도 스무 돌을 맞이한다. 더 말해 무엇하랴. 그 6월 항쟁의 단초는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어버린 박종철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됐다. 그것은 국민적인 분노로 이어졌다. 나 또한 분노의 대열에서 최루탄과 싸웠다.

그리고 말하리라 / 빼앗긴 너를 으스러지게 껴안으며 일어서서 말하리라 / 오늘의 분노, 오늘의 증오를 모아 / 이 땅의 착취 / 끝날 줄 모르는 억압 / 숨 쉬는 것조차 틀어막는 모순 덩어리들 / 그 모든 찌꺼기들을 / 이제는 끝내 주리라 / 이제는 끝장내리라

이 시는 1987년 1월 20일, 서울대학교 학생회관 2층에서 거행된 박종철 군 추모제에서 박종철이 과회장으로 있던 인문대학 언어학과 학생들이 바친 추모시다. 언어학과의 한 여학생이 이 추모시를 읽을 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1500여 명의 학생들은 다 같이 눈물을 뿌렸다.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박종철의 죽음부터 6월항쟁까지

▲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지은 김정남은 '1987년 1월에서 6월까지'란 부제를 통해 마치 실시간 동영상처럼 박종철의 죽음부터 6월 항쟁까지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된 군부독재의 부조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위대한 역사서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읽는 내내 숨을 죽였다. 나 또한 당대에 대학생 신분이었으므로 그 시절로 회귀하여 수많은 필름을 재생해야 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있기까지 경찰의 발표와 언론의 촉각이 시간대별 사건일지로 정리되어 읽는 이를 긴장케 한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당시 상황이 20년이 지난 지금 명확하게 전달되는 마력이 돋보인다. 지은이의 내공과 진정성 덕택이다.

저자 김정남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감옥에 갇힌 경관과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 전 의원을 내세운다. 이 의원은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은폐·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적은 쪽지를 외부로 반출한다. 그때 한재동 교도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박종철이 사망한 1월 14일, 박종철의 사인을 쇼크사로 처리하고 시신을 가족들에게 인도하여 화장 처리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 최환 부장검사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부검케 함으로써 6월 민주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꼬를 텄다고 말한다.

4·13 호헌 철폐 투쟁,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의 활약, 수배 중이던 지은이 김정남이 이부영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3통의 편지 등 가슴 뛰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엮어진다.

축소조작과 은폐공작은 진실과 정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3명의 고문경관과 축소 조작에 가담한 3명의 대공수사단 간부가 구속되었고 국민의 공분은 6월 민주화 투쟁으로 점화된다.

6월 10일, 고문 살인 은폐조작을 규탄하고 호헌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회가 전국을 요동쳤다. 명동 성당 농성투쟁 이후 시위는 민주화 운동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6월 내내 35만 발의 최루탄이 날렸다.

6월 9일,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며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은 부상 27일 만인 7월 2일에 숨을 거둔다. 7월 9일 장례식을 치렀던 연세대 교정에는 10만 인파가 몰렸다. 6월 민주항쟁은 결국 승리의 깃발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렸다.

지은이 김정남은 다음과 같은 서술로 1987년 1월에서 6월까지를 규정한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건국에 다음 가는 큰 사건을 든다면 아마도 그것은 30여 년에 걸친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를 청산하고, 이 땅에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일일 것이다. 30녀 년에 걸친 민주화 투쟁사에서 한국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가장 역동적으로 펼쳐졌던 시기가 바로 1987년 1월에서 6월까지의 기간이었다. 투쟁은 광범하고 치열했으며, 그 승리 또한 극적이었다. 그 장엄한 투쟁의 시작에서 끝까지 한국 국민은 박종철과 같이 있었다.

은폐, 축소, 조작 등 군부독재 아래 치졸했던 역사는 진실, 정의, 민주화로 자리바꿈을 했다. 거짓은 진실 앞에 순간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서가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라는 책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숨져간 고인들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김정남 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값 8700원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 1987년 1월에서 6월까지

김정남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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