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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
ⓒ 랜덤하우스
1911년 8월 23일 화요일 한낮, 파리 도심에서는 신문팔이 소년들이 거리를 누비며 외치고 다니고 있었다.

"모나리자가 사라졌어요!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답니다!"

신문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모나리자 도난사건. 이것은 영화나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다.

3명의 범인들은 루브르 박물관의 휴관일인 월요일 오전을 노려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이 세기의 명화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화요일 오전에 박물관의 경비원들은 <모나리자>가 원래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작품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유리나 액자 등을 청소하고 점검하는 일들이 잦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나리자>가 박물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자 루브르 박물관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꼴이 되었다. 화요일 오후에 공식적으로 <모나리자>의 도난 사실이 발표되고, 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도난 된 <모나리자>, 2년 후 이탈리아에서 발견

수사는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목격자는커녕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제보도 없었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정예요원들이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 투입되었고, 프랑스의 국경은 사실상 봉쇄되었다. 외국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짐은 모두 샅샅이 검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리자>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지문을 모두 채취하고, 심령술사와 초능력자들에게 까지 도움을 요청했다. 수사에 도움을 주는 점쟁이에게는 5000 프랑을 제공하겠다는 발표까지 있었다.

이렇게 1년이 경과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학예부장이 해임되고, 파블로 피카소가 용의자로 조사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파리의 시민들은 <모나리자>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체념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모나리자>가 있던 자리에 라파엘로의 <가스틸리오네의 초상>이 대신 놓여졌다. <모나리자>의 회수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나리자>가 다시 나타난 것은 도난 2년 후인 1913년 이탈리아에서였다. 당시의 주범인 '빈센조 페루자'가 이탈리아의 한 고미술상으로 <모나리자>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페루자는 <모나리자>를 원래 주인인 이탈리아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런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그 말은 그다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궁금한 점은 여러 가지였다. 왜 2년이나 지난 이후에 <모나리자>를 들고 나타난 것일까? 그 2년 동안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나리자>를 그냥 보관하고 있었을까? 페루자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페루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오직 <모나리자>를 이탈리아에 돌려주기 위해서'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모나리자 도난사건'을 기획한 발피에르노의 이야기

아르헨티나 소설가인 마르틴 카파로스의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바로 이 도난사건에 관한 소설이다. 감히 엄두도 내기 힘든 대담한 범행을 소설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빈센조 페루자가 아니다. 페루자는 단지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BRI@진정한 주범은 '발피에르노 후작'이라는 인물이다. 물론 이 사람의 본명이 무엇인지, 진짜 후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의 범행계획은 대담하면서도 치밀했다. 끝까지 발피에르노라는 인물은 경찰에 검거되지 않았다. 발피에르노는 범행의 대가로 챙긴 수백만 달러의 돈을 가지고 세계의 휴양지를 돌아다니면서 귀족처럼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당시의 돈으로 수백만 달러니까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수천만 달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전모가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발피에르노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미국 기자에게 자신의 범행을 모두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지 말 것, 이 이야기를 자신이 죽기 전에는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자는 발피에르노와의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바로 이 발피에르노의 이야기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발피에르노는 평생 수많은 이름을 사칭하고 다닌 인물이다. 한때 교도소에 들락거리기도 했던 발피에르노는 명화 위조와 사기의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한 '모나리자 도난사건'을 기획한다.

여기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동원된다. 행동대장 격이었던 빈센조 페루자를 포함해서 전문 모사화가 '쇼드롱', 그리고 수십만 달러를 지불하면서 명화를 구입했던 미국의 재벌들까지.

발피에르노와 쇼드롱은 평생을 안락하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발피에르노는 '자신의 범행이야말로 예술'이라고 말했고, 쇼드롱은 명화를 모사하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의 작가는 이들의 삶을 통해서 개인의 정체성,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위조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발피에르노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나리자 도난사건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평생 자신의 업적(?)을 숨겨야만 했다.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질수록 그만큼 자신은 거기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발피에르노는 자신의 삶도 위조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수많은 이름을 사칭했던 그는 인생의 말년에 가서야 자신의 범행을 모두 털어놓는다. 물론 자신의 진짜 이름과 신분은 여전히 숨긴 채로.

다른 사람들이 모나리자 도난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발피에르노는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했을까. '그건 나의 작품이야!'라고 떠벌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발피에르노는 끝까지 검거되지 않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자신을 숨기고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주어진 형벌 아니었을까.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이 발피에르노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운의 남자, 세기의 명화를 대상으로 한 도난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는 2004년에 스페인 최고 문학상인 플라네타 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평생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위조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진실을 숨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마르틴 카파로스 지음 / 조일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

마르틴 카파로스 지음, 조일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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