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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잔치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는 유대봉 씨 부부
추석 잔치에서 송편을 만들고 있는 유대봉 씨 부부 ⓒ 구은희
한글 자판이 서툰 유대봉씨는 짧은 카드의 내용이었지만 거의 30분이 걸려서 카드를 완성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유대봉씨의 카드 내용 밑에 부인이 교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주었을때, 그 부인의 반응은 틀린 한국어를 수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유대봉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카드를 주자 "자, 그럼 어디 봅시다" 그러면서 펜으로 수정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유대봉씨가 난생 처음으로 쓴 한글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받으신 부인께서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또한, 오늘 수업 시간에 유대봉씨는 작은 글귀가 적힌 메모지를 한 장 들고 왔다. 거기에는 '치즈하고 사과는 냉장고에 있어요'라고 전형적인 한국인들의 흘림체로 쓰여 있었다. 특히 '치즈'의 'ㅈ'은 정직한 인쇄체에만 익숙한 유대봉씨에게는 알아보기 힘든 글자였나보다. 그 메모는 바로 유대봉씨의 부인께서 밖에 나가시면서 유대봉씨께 남긴 한글로 씌어진 메모였던 것이다. 이제는 부인과 한글로 메모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유대봉씨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송편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정성운 씨
송편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정성운 씨 ⓒ 구은희
같은 클래스에 있는 유대인 정성운씨도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한글로 써서 부인 앞에서 읽고 주었다고 했다. 항상 모든 일에 꼼꼼하게 성실하게 하는 정성운씨는 부인의 반응까지 저널에 적어 왔는데, 카드를 받고 부인이 뽀뽀를 해 주었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자신을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남편들을 볼 때, 그리고 서툴지만 한국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편들을 볼 때, 그 부인들은 큰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생애 첫 번째 받아보는 미국 남편들의 한글 밸런타인데이 카드는 평생 그 부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어를 잘 하는 우리 남편도 나에게 카드를 안 써줬는데, 한국 사람이 아닌 남편이 열심히 배워서 정성스럽게 써 준 카드는 얼마나 큰 감동을 안겨줬을까?

이번 주말에는 본교에서 '설날 잔치'를 한다. 떡국을 먹고, 한복을 입어보며, 윷놀이도 하며 세배도 하고 한국 영화 '춘향뎐'도 함께 볼 것이다. 한국에서 '띠'가 뭔지를 배우고 자신의 '띠'를 알게 된 용띠 유대봉씨와 말띠 정성운씨도 함께 황금돼지해를 맞이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더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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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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