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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에서 본 발틱 해
탈린에서 본 발틱 해 ⓒ 강병구
탈린은 중세 모습 그대로인 올드타운도 인상적이지만, 평범한 우리로선 세계지도에서나 보기만하던 발틱해와 해변에도 가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세계사 혹은 세계지리 시간 지도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발틱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라시아대륙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북유럽의 바이킹이 활약했던, 북극의 찬 기운이 느껴지는 발틱해는 짜지 않는 바다로도 유명하다. 염분 농도가 낮아서 추워지면 쉽게 얼고, 청어 등의 어종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이런 사전지식을 꼼꼼히 알고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이킹과 북극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에 왠지 특별한 바다로 보이게 했다.

탈린은 항구도시로, 중심가에서 얼마 걸어가지 않아도 바닷가가 나온다. 올드타운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도 바다와 멋들어진 배들이 나온다. 특히 자전거를 빌려 해변을 산책하는 것은 특별한 재미이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가다보면, 핀란드 헬싱키나,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왕래하는 많은 여객선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저 멀리 수평선 끝에서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조그마한 점으로 시작해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거대한 여객선이 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헬싱키 등 인근 도시를 빈번히 다니는 여객선
헬싱키 등 인근 도시를 빈번히 다니는 여객선 ⓒ 강병구
특별히 바쁠 일도 없는 여행객이기에 더 여유롭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해변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그곳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여행하는 내가 더 분주해 보인다.

넓지 않은 잔디밭에 누워, 바다를 물씬 느끼며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할 말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연인이나,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느라 바쁜 아버지, 그리고 해변에 타이트한 운동복 차림으로 운동에 열심힌 멋들어진 아가씨까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집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아침에 빌린 자전거로 점심너머까지 해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출출해 졌다.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데, 갈 때는 처음 보는 이국의 바다에 시간가는 지 모르고 지나쳤던 그 길이 어찌나 멀던지. 결국 시내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항구주변의 장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항구를 좀 더 둘러보았다.

그런데 여객선이 드나드는 부두에 "헛둘, 헛둘" 하는 낯익은 구령소리가 들렸다. '뭘까?' 하는 궁금함에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동양인들이 부둣가를 뛰고 있는 게 아닌가? 운동복 차림의 그들을 다시 보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그들도 놀란 듯했다. 알고 보니 펜싱 국가대표 선수들이란다. 탈린에서 펜싱 대회가 있어 왔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너무 열심히 운동 중이라 오래 말을 걸 수가 없어 짧은 응원의 말을 전하고 헤어졌지만, 나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이국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탈린 인근 언덕에서 찍은, 해변과 탈린 시내의 모습
탈린 인근 언덕에서 찍은, 해변과 탈린 시내의 모습 ⓒ 강병구
에스토니아가 궁금해지다

사전에 계획하고 온 곳이 아니기에 에스토니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를 쓰며 백과사전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에스토니아에 대해 알아보았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기원전부터 본래 에스토니아 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이 땅에 정착했으나, 민족대이동 시기에 게르만인, 슬라브인, 바랴그인 등이 이 땅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이후 독일인과 덴마크 인이 이동하여 가톨릭을, 러시아인들은 그리스 정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또 르네상스 이후에는 개신교도 파급되어, 몇 백년간 종교 간의 싸움이 치열했단다.

특히 가톨릭을 믿는 폴란드와 개신교를 믿는 스웨덴 간의 격렬한 전쟁이 있었고, 싸움에 승리한 스웨덴에 100여 년간 지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8세기 북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른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러시아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19세기 후반엔 러시아의 영향으로 한때 문화가 크게 발달하기도 했다.

북유럽지도
북유럽지도 ⓒ www.siteatlas.com
그러다 1917년 10월 혁명의 영향으로 최초의 독립 에스토니아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당시 북유럽 강대국들의 지원을 받는 국내 세력 간의 싸움으로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2차 대전 전까지는 같은 처지의 발트 3국(에스토니아와, 아래에 있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간의 군사동맹을 맺고 반소친독의 파시스트 노선을 걷기도 했으나, 40년 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이후에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하였다.

2차 대전 시기, 유럽의 당시 소국들이 그렇듯 독일에 점령당했지만, 44년 다시 소련에 복귀했고, 연방이 무너진 91년 8월 다시 독립을 선언했다.

역사 속 수많은 강대국 간의 전쟁 때문에 최근에야 독립국을 선할 수 있었고, 얼마 전까지도 소련의 땅이었던 나라. 하지만 전에는 의도하지 않게 외국인에 친숙했다면, 지금은 적극적인 관광산업 개발로 외국인에 친숙한 나라. 이런 지식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탈린을 돌아다니는데, 좀 더 좋았을 것이다.

사실 탈린을 돌아다니며 예상치 못한 일들을 몇 가지 겪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Korea'라면 으래 북한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말이랑 일본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등이었다. 또 인근의 러시아나 핀란드 사람들과 소통이 어렵지 않은 그들로서는, 한국 사람이 일본말이나 중국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 것도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인가 보다.

올드타운 입구의 모습
올드타운 입구의 모습 ⓒ 강병구
그래서일까 시내 쇼핑가에서 본, 우리의 부르마블과 비슷한 보드게임에는 한국 국기는 없지만, 북한 국기는 있었다. 그리고 엽서를 파는 아가씨는 옆에서 엽서를 고르던 중국인에게 나와 만나 반갑겠다며 이야기해보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나나 그 중국인이나 서로 멀뚱히 쳐다보며 어이없이 웃기만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생각보다 많이 화려한, 서울의 코엑스 같은 탈린의 쇼핑가를 둘러보고 내일 핀란드 헬싱키로 떠날 준비를 위해 숙소에 일찍 돌아왔다. 내일 출발할 짐을 싸고 여행 와 처음으로 엽서나 보낼 요량으로 나왔다.

다시 만난 존과 함께 올드 타운의 밤 문화를 즐기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존을 다시 만났다. 모스크바 가는 기차에서 그리고 탈린에 도착해서 만난 것까지 3번째 만난 존은, 너무 반갑다며 술이나 한 잔 같이 하자고 했다. 혼자라도 마시고 싶은 차에 같이 마시자는 사람까지 있으니 너무나 반갑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무던히도 만났던 존과도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았다.

3번씩이나 마주친 영국인 존
3번씩이나 마주친 영국인 존 ⓒ 강병구
40대 중반인 영국사람 존은, 영국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부인과 이혼하고 2005년 늦은 여름 갑작스럽게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여행의 처음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였다고 한다.

그곳부터 태국,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거쳐, 홍콩에서부터 북경까지 중국을 돌아보고, 기차를 타고 몽골과 러시아를 거쳐 근 10개월 만에 탈린에 도착한 것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갑작스레 그렇게 떠난 여행이 괜찮았냐는 나의 질문에, "인생에 한번쯤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기에 결정했었다"고 대답했다. 자세한 속사정까진 모르지만, 4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길고도 먼 여행을 떠난 용기가 대단하게 보였다.

저녁을 먹고 이전 저런 이야기를 하며 존과 시간을 보냈다. 서로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나의 짧은 영어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존이 "BK, 클럽 같이 안 가겠어?"라고 물었다. 혼자 다녔기에 쉽게 가볼 수 없었지만, 이런 곳에서 클럽을 가보는 일은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란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

올드타운의 유명 식당 올드한자의, 중세풍 유니폼을 입은 식당 종업원들
올드타운의 유명 식당 올드한자의, 중세풍 유니폼을 입은 식당 종업원들 ⓒ 강병구
그래서 찾아간 탈린의 클럽은 생각보다 화려한 곳은 아니었다. 좁은 스테이지에 서로 서 있을 틈이 없을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클럽 안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고, 다들 술보다는 뜨거운 열기에 취한 듯했다.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은 물론 여행객들까지 모인 탈린의 클럽은 그동안 러시아 여행에서 맛보지 못한 색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술은 많이 먹지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취한 나는, 그런 재미난 곳에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탈린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여행을 떠나 처음으로 새벽너머까지 놀았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정말 맛있었던 올드한자의 명물, 허니비어와 양념아몬드
정말 맛있었던 올드한자의 명물, 허니비어와 양념아몬드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전에 알렸던 날짜보다 기사가 늦은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다음 기사는 2월 20일 화요일에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핀란드 등의 북유럽 여행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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