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손선이씨와 함께 옥포2동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손선이씨와 함께 옥포2동에서 근무하는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 김석규
우리들에게 상쾌한 아침을 매일 선물하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쓰레기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경남 거제시 환경미화원은 모두 58명. 신현읍이 14명으로 가장 많고 옥포2동 4명, 나머지 7개 면과 5개동은 모두 1-2명씩이다. 여성 환경미화원은 옥포2동, 아주동, 둔덕면에 각 1명씩 모두 3명이 근무하고 있다.

@BRI@지난 91년 홍일점으로 시작해 17년째 옥포2동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손선이(53·옥포2동)씨와 새벽을 함께 했다.

지난 8일 새벽 6시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옥포2동 매립지(B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모자를 눌러 쓰고 거제시라고 적힌 야광옷을 입고, 쓰레받기, 빗자루 등 청소도구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만나기로 한 손선이씨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전화드렸던…" 하고 인사를 건네자 "아, 네 안녕하세요. 이제 청소 시작하면 되죠"라며 청소를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한 노래주점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떤 사람들인데 지금까지 노래를…"라고 묻자 그녀는 "어떨 땐 새벽 일이 끝날 때까지(아침 8시쯤) 노랫소리가 들리는 데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를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다.

아주 손에 익은 듯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녀는 왼손엔 쓰레받기를 들고, 오른손엔 빗자루를 들고 눈에 보이는 라면봉지며, 전단지 담배꽁초 비닐봉지 화장지 과자 부스러기 등을 쓸어 담아 나갔다.

가정용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차의 뒤쪽에 서 있는 아저씨와 친한 사이인 듯 손을 들어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어질러진 거리의 새벽은 그녀의 땀으로 다시 깨끗하게 변할 것이다.

그녀가 새벽 동안 치워야 하는 구역은 옥포 2동 매립지 일대. 일찍 청소를 끝내기 위해 보통은 새벽 5시쯤 집에서 나오지만 오늘은 특별히 나를 생각해 늦게 나온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손선이씨가 오피스텔과 오피스텔 사이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손선이씨가 오피스텔과 오피스텔 사이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김석규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 때문인지 날은 어두웠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이내 땀이 차 오른다. 오피스텔과 오피스텔 건물 사이 공간에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다. 이 쓰레기들은 오늘로 3일째 방치되고 있단다. 분명히 버린 사람은 있는데 누구하나 치우는 사람은 없단다.

30분도 되지 않아 공공용 쓰레기봉투(50ℓ) 2장이 가득 찬다. 그때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두 청년. 휙 그녀를 지나쳐 간다. 3일 동안 방치된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주는데도 '소 닭 보듯' 하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십니다" 등의 말은 들어본 지 오래란다.

대우조선해양으로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근로자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종량제 봉투가 아닌 일반 마대 4개에다 쓰레기를 잔뜩 담아 길가에 내 놓은 것이 포착됐다.

이 불법쓰레기들은 오늘로 4일째. 이런 경우는 쓰레기를 뒤져 누가 버렸다는 증거물이 나오면 과태료를 부과하고, 아니면 그냥 치우게 되는데 대부분 누가 버렸는지 찾지 못하고 그냥 치워야 한다.

그러나 일부러 치우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바로 치워주면 계속 아무 생각없이 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7시가 가까워오면서 출근하는 근로자들이 부쩍 늘고, 차량들도 줄을 잇는다. 편의점 주위에 특히 쓰레기들이 많다. 편의점에서 청소하면 좋겠지만 넉넉한 인심을 가진 그녀는 그냥 치운다.

7시30분께 공원을 청소하다 뜻밖의 수입을 잡았다. 공원 쓰레기통에서 천원을 주운 것이다. 이런 행운도 있다며 기뻐한다.

손선이씨가 뜻밖의 수입을 잡은 공원 쓰레기통을 청소하고 있다.
손선이씨가 뜻밖의 수입을 잡은 공원 쓰레기통을 청소하고 있다. ⓒ 김석규
"오늘은 주위 가정집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서 쓰레기가 없네"라며 혼잣말을 한다. 인근 가정집에서 공원 쓰레기통에 일반 쓰레기를 자주 갖다 버리는 모양이다. 종량제 봉투값이 얼마나 한다고. 얌체같이.

2시간여 청소를 한 끝에 새벽일이 모두 끝났다. 공공용 쓰레기봉투 50ℓ짜리 6개 분량의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난 뒤다. 보통 5개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정말 안 나올 땐 3개 밖에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해는 뜨지 않았지만 날은 벌써 밝아 있었다.

환경미화원 손선이씨.
환경미화원 손선이씨. ⓒ 김석규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었다"

손선이씨와 8시께 헤어지고 난 뒤 다시 그녀를 만난 건 9시30분께 옥포2동사무소에서였다.

동사무소 직원이 "오늘 아주머니 이쁘게 해 갔고 나오셨네예" 하자 그녀는 "오늘이 내 귀 빠진 날 아이가. 사위하고 딸들이 와서 새벽 일 나가기 전에 끓여준 미역국 무따 아이가, 이쁘게 해갔고 있어야 할 거 아이가"라고 대꾸한다.

그녀가 환경미화원으로 처음 일한 것은 1991년 1월20일. 야쿠르트 아줌마였던 그녀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할머니와 새벽일을 함께 하면서 친분을 쌓으며 서로 위로하며 지냈다.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평소 할머니가 즐겨 말하던 청소를 통한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당시 장승포시청에 서류를 접수, 그녀는 당당히 환경미화원이 됐다. 그러나 3일 동안은 부끄러워서 리어카를 끌지 못해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왕 시작한 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용기를 냈고, 그렇게 시작한 환경미화원 일이 16년을 넘어 17년째를 맞았다.

손씨는 "딸 넷을 키우면서 자식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일에 충실했다"면서 "거리의 더러운 구석구석을 깨끗이 치우면서 직업인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힘들게, 어렵게 일한 만큼 남들에게 얻는 보람은 없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며 깨끗해진 거리를 보며 나 스스로 큰 보람을 얻는다"는 그녀.

가을 낙엽 쓸 때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가게 앞에 놓인 쓰레기를 치우라고 할 때 가게주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아줌마가 치우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 정신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한다.

환경미화원들이 청소하고 있을 때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없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오전 일을 나설 무렵 그때서야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제신문에 보도된 손선이씨의 기사
거제신문에 보도된 손선이씨의 기사 ⓒ 김석규
13일 새벽 거제신문이 인쇄돼 나왔다. 이날은 당직이라 새벽 4시 무렵 거제시 신현읍 일대와 옥포, 장승포 쪽으로 배달을 가야했다.

12일 저녁부터 13일 새벽 3시까지 큰 비가 내렸다. 사무실이 있는 신현읍을 돌아나올 무렵 신현읍 환경미화원이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집어 쓰레받기에 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이번 신문에 환경미화원 동행취재를 한 것이 생각나 차에서 내려 "수고하십니다" 인사만 하고 다시 차를 몰고 옥포로 향했다.

아마 그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갑자기 젊은 양반이 차에서 내려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차를 몰고 가버렸으니….

13일 낮 12시15분께 손선이씨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근무하고 있는 옥포2동 사무소로 향했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신문을 동사무소에 두고 왔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아주머니 오면 전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12시 30분께 신현읍에 도착해 지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님, 손선이입니다. 내 기사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제가 동사무소에 신문 갖다 놓고 왔습니다. 동사무소에 가면 신문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저녁 6시30분 옥포2동주민자치위원회(나도 주민자치위원 중 한명임) 월례회가 있어 옥포2동을 다시 찾았다.

월례회가 끝난 후 동사무소직원이 나에게 얘기를 해 주었다. "손선이씨가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요즘 환경미화원들 청소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신문 보도 후 인식이 많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와 함께 소주 한 잔 하고 싶다"고 말하자 동사무소 직원이 "아주머니 술 잘 하십니다, 다음에 저랑 셋이서 소주 한 잔 하면 되겠네요"라고 답했다.

아주머니와 꼭 소주 한 잔 나누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듣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거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