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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임금체불 등과 같은 권리구제는 분명히 하겠다고 공언해 왔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이번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처럼 정부의 선전은 한낱 구호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가령, 지난 2월 2일(금) 인천지역 노동사무소에서 600여만원의 임금체불 진정 건으로 조사를 받던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가 노동부 근로감독관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었다.

@BRI@현행법상 '불법 체류자(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권한은 법무부 출입국에 있고, 그동안 노동부가 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입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선 구제 후 통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왔던 터라, 이번 일은 이주노동자 인권보호에 대한 일선 근로감독관들의 의지를 의심케하는 사건이다.

설령 진정 조사를 받는 자리에 경찰이 들이닥치지 않더라도 최근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인도네시아인 와유네시(Wahyuninggsih)는 경인지방노동청 평택지청에 퇴직금 문제로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13일(화) 진정 조사를 맡은 담당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의 초보 상식도 모르는 어이없는 태도로 와유네시를 몰아붙였다. "사측에서 1년 근무 후 근로조건이 변경되어 퇴직금 지급사유가 없다고 하는데, 퇴직금을 달라고 하면 안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사측의 주장은 1년 동안 숙식 제공을 했으나, 1년이 지나면서 숙식 제공을 받지 않도록 근로계약을 변경했다. 그러나 숙식을 제공했으니 퇴직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하고 나면 퇴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제1장 총칙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들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계약으로 정한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새로이 합의하여야 한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집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제97조 제1항).

위의 경우 1년간의 근무 후 숙식제공이 없어진다는 것은 근로조건이 저하된다는 것인데, 상식적인 근로계약 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령 위 계약이 성립되었다 할지라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근로자와 사용자는 서로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하여 근로조건을 결정하여야 한다."(제3조)

이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하거나 근로자에 대해 강압을 행사하여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외국인의 근로계약 연장시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변경하여 계약을 체결함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의 위반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115조 제1항)고 명시돼 있어, 숙식제공에 따른 공제를 주장하는 사측에 대해 행정조치를 취해야 할 근로감독관이 오히려 진정인인 이주노동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하자, 옆에 있던 팀장이 사태를 수습했다.

"퇴직금에서 식대를 공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맞지 않으니 지급하십시오. 그 부분에 대해 억울함이 있으면 민사에서 얘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식대를 공제한다는 근로계약서도 없는 마당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퇴직금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결이 됐지만, 팀장 역시 다른 문제는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해당 회사는 300인 이상의 꽤 규모 있는 중소기업이었는데, 회사 전체적으로 2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주 5일 근무 대상 기업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주 6일 동일하게 11시간 근무를 하면서도 월차도 없고, 연장이나 야간 수당도 제대로 계산이 되지 않고 있었다. 월 30여만 원의 차액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근로감독관은 그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도 가입하게 돼 있는 국민연금도 가입을 하지 않아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지만, 사측에서 급여지급을 줄이기 위해 어떠한 편법을 썼는지 잘 알 수 있는 지표임이 분명하다.

다들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불법 체류자의 퇴직금 요구에 대해 면박 먼저 해대는 것이었다.

위와 같은 사례들이 일선 노동사무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부에 대해 불신하며, 피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사측의 입장만 대변하며 이주노동자들이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행태는 시정돼야 한다. 직무교육 강화와 이주노동자 담당 전문 부서를 각 노동사무소의 진정건에 대비하여 직원을 배치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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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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