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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치여 죽은 멧토끼.
차에 치여 죽은 멧토끼. ⓒ 손상호

1.
지리산 둘레 고속도로와 국도에서 갖가지 야생동물들이 죽는다. 2004년 7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110종 5769마리가 조사되었다. 보기도 어려운 법정보호종들도 여러 종, 많은 수가 포함되어 있어서 수달(멸종위기종 1급,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 , 남생이(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를 비롯해서 16종 311마리나 된다.

하늘다람쥐(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와 쇠족제비(멸종위기종 2급)가 차에 치여 죽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조사에서 처음 밝혀졌다. 특히 쇠족제비는 쇠족제비는 현재까지 밝혀진 것 가운데 가장 남쪽에서 발견된 보기로서 이들 생태와 분포를 살피는데 있어서 뜻이 깊다.

삵(멸종위기종)과 소쩍새(천연기념물)은 100마리 넘게 치어 죽고 있음이 드러났는데, 이들 종의 개체군이 찻길때문에 큰 위협을 받고 있는지는 앞으로 연구하면 좋을 과제가 아닌가 싶다.

2.
이번 결과에서 개의 로드킬이 생각 밖으로 적어서 삵에 견줘 반도 안되는 41마리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견줘 볼 때 그만큼 버려지는 개가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3.
88고속도로, 강변2차, 산악2차, 산업4차선 국도의 네 가지 길 생김새에 따른 길죽음 발생 비율과 수를 담은 표를 보면 강변2차선 국도에서 가장 많은 수가 죽었다. 특히 물뭍짐승(양서류)인 두꺼비가 아주 많이 죽었다. 무수히 많은 더 작은 동물들의 로드킬은 흔적도 남지 않기 때문에 조사에서 빠졌다고 하니 그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다.

무당개구리 주검. 이처럼 작은 동물들은 자취조차 쉽게 지워진다.
무당개구리 주검. 이처럼 작은 동물들은 자취조차 쉽게 지워진다. ⓒ 손상호
4.
특정한 때에 특정한 종류들이 많이 죽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찻길 사이사이에 난 통로 따위를 이용해서 잘 적응하여 살고 있는 너구리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있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낯선 환경에 온 동물들이 주로 희생된단다.

그렇다면 좀 희생이 따르더라도 대체로 잘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음은 로드킬 당한 동물들의 수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야생동물 이동 통로를 만든다고 해도 동물들은 이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구체적이고 실제적이며 끊임없는 보호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꾸준하고도 꼼꼼한 관심이 있을 때만 현실적으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날 도로공사 송 정석 님이 발표한, 갖가지 현장에 맞는 유도시설물을 만드는 따위 노력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 청설모 주검은 수없이 많은 차에 밟혔다.
이 청설모 주검은 수없이 많은 차에 밟혔다. ⓒ 손상호

여전히  '지속적인 도로 확충이 필요' 하다고  한다.
여전히 '지속적인 도로 확충이 필요' 하다고 한다. ⓒ 손상호
5.
찻길 하나의 영향 보다도 여러 개가 가까이 있어서 영향을 미칠 때 그 영향이 더욱 우려할만하다. 그런데 이날 건교부 도로기획관의 발표 내용은 제목부터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친환경도로건설'이었고, 여전히 '지속적인 도로 확충이 필요' 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도로 건설하고, 로드킬을 막으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함께 자리하여 로드킬 문제를 다룬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를 만든 감독 황 윤 님은 도로의 중복 건설 따위를 문제삼았다.

'친환경도로 건설' 보다는 '잘 안쓰는 찻길' 하나라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길이 하나 줄더라도 조금 불편함을 견딜 수 있도록 우리들 스스로를 바꿔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교육할 수는 없을까?

6.
지방도와 국도,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주체가 다르다. 고속도로, 국도와 달리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지방도에 대해서는 이런 조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곳 춘천시 서면만 하더라도 두꺼비가 많이 죽길래 면사무소 직원한테 이야기 해줬더니 '안다'는 한 마디 말을 받는 것으로 그쳤던 기억이 있다.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길이라도 그것이 국도냐 지방도냐에 따라서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정작 어줍잖은 길에서 더 많은 주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치화한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단지 그것과 지방도의 주체가 지자체라는 사실만으로 '지방도는 문제삼지 않아도 된다'고 볼 수는 없다.

7. 정확한 조사,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가?

자리를 함께 한 환경부 환경정책과 사무관께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셨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런 데까지 조사가 되었는데, 환경부에서는 왜 거기까지 못했느냐 하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길에서 야생동물들이 정확히 얼마나 많은 수가 죽어가는지 파악하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실제로 얼마나 많이 죽는지는 누구도 또렷이 알 수 없다. 단지 꾸준한 조사를 통해서 로드킬된 개체수의 추이 변화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조사하는 방법에 따라서 좀더 자세히 '찻길이 야생동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 수도 있는 것이다. 3년동안 수없이 많이 같은 구간을 조사한 결과와 1년에 고작 며칠 조사하는 것이 당연히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좀더 자세한 로드킬 조사는 사람들이 서식지를 파괴하는데 따른 자연의 피해가 어떠한가를 구체적인 수치로 맛보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로드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환경부가 관심을 얼마나 기울였느냐는 되돌아 볼 일이다.

어느날 밤 차에 치여 죽은 물뭍짐승들을 모아놓았다. 이것은 그날 일어난 죽음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어느날 밤 차에 치여 죽은 물뭍짐승들을 모아놓았다. 이것은 그날 일어난 죽음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 손상호
8. 공감대, 여럿의 작은 관심들, 작지면 효과가 큰 제안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관심은 작더라도 여럿이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큰 힘이 된다. 내가 동물구조관리협회에서 일할 때 그곳에 동물구조해달라고 전화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길에서 다쳐서 탈진해서 다 죽어가는 짐승들을 보고 내 일처럼 전화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

이런 일 역시 그러한 제보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모일 때 그만큼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자기 마을에 뭐가 사는지도 관심없고, 귀찮으니 다 잡아가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주민도 보았다. 이래가지고는 뭔들 보호가 되겠는가?

지역 주민들이 우리 지역의 귀한 것들을 잘 아끼자는 마음을 가질 때 그만큼 보호될 종류가 많을 것이다. 그런 의식들이 생긴다면 지금은 전혀 이야기도 되지 않는 지방도나 마을 길에서 애꿋게 죽고 있는 많은 동물종들이 오히려 더 잘 보호받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꼭 올 것이다.

로드킬 조사를 하는 모습.
로드킬 조사를 하는 모습. ⓒ 손상호

끝으로 자칫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알찬 결과를 낸 연구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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