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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
이기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 ⓒ 삼성전자

"아니, 여기가 무슨 정당도 아닌데…, 기업이예요. 기업."

삼성전자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주 삼성그룹 인사와 관련해 25일 이기태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이 불만을 품고 출근거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일부 시각을 강하게 반박했다.

@BRI@최근 열린우리당의 탈당과 빗대면서 "여기가 무슨 정당도 아닌데, (인사에) 불만을 품고 (출근) 거부를 하고 말고 하겠는가"라며 "이빨 치료 등으로 잠시 휴가를 냈으며, 어제 사장단회의(수요회)에도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기태 부회장이 이날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전사경영전략회의'에 불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전략회의는 윤종용 부회장이 주재하고 정보통신, 반도체 등 삼성전자 각 분야 총괄 사업부 사장과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임원급 500여명이 참석하는 중요한 회의다.

따라서 작년까지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맡았고, 올초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 부회장이 휴가를 이유로 전략회의에 불참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이 부회장은 정보통신 총괄 사장으로 있던 7년동안 전략회의에 꾸준히 참석해 왔다.

애니콜 신화, 이건희에 반기 들다?

<한겨레>는 이날 이기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주 사장단 인사이후 출근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부회장의 출근 거부는 인사 불만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이건희 회장이 이 부회장을 경질한 배경으로 그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부담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삼성 임원의 말을 빌어 "이 부회장이 평소 주요 업체와 협상할 때 배석자를 두지 않고 회사관련 주요 사항과 기밀을 독점해왔다"면서 "휴대폰 사업의 핵심라인에 자기 사람들을 채워 파벌을 금기시하는 삼성문화와 배치되는 행동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삼성은 지난 16일 그룹 사장단 인사를 하면서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기술총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하지만 당시 삼성그룹 안팎에선 이기태 부회장이 승진했지만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삼성계열사의 한 임원은 인사를 보고 "이기태 사장은 그동안 황창규 반도체총괄사장, 최지성 디지털미디어사장 등과 함께 윤종용 부회장의 뒤를 이을 후임자로 거론돼 오지 않았나"라며 "이 사장이 기술총괄 부회장의 직함을 달긴 했지만, 업무의 영역이나 역할 등을 볼 때 전보다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해석은 인사와 예산을 직접 관장할 수 있는 총괄사업부의 수장에서 물러난 점과 함께, 향후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힘든 기술총괄로 자리를 옮긴 점을 두고 한 말이다. 따라서 '포스트 윤종용' 경쟁에서 황창규 사장이나 최지성 사장이 보다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기태 부회장도 이번 인사가 끝난 후 일부 주변 인사들에게 아쉬움과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당혹스러운 삼성 "지켜보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 후 리셉션에서 건배 제의를 한 뒤 잔을 들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 후 리셉션에서 건배 제의를 한 뒤 잔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기태 부회장의 인사불만에 따른 출근거부설이 알려지자,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인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삼성 내부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 부회장의 행보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과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이름이나 직책 등이 언급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극구 꺼렸다.

삼성전자 한 임원은 "이기태 부회장의 출근 거부설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면서 "지난해 말까지 각종 전자행사에 참석하면서 심신이 피곤했으며 인사를 계기로 휴가를 내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원에 있는 기술총괄 부회장실 공사도 이번주안으로 마무리되면서 다음주에 사무실로 출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정보통신부문의 핵심라인을 자기사람으로 채웠다는 주장에 대해, 삼성전자의 또 다른 관계자는 "7년동안 사장으로 일을 해왔는데 자신의 뜻과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을 두고 파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과장되고 너무 부풀린 것"이라며 "현재의 삼성 애니콜 성장에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과 함께 조직 내부의 단합도 한 몫한 것이며, 이번 인사는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휴대폰 신화를 가져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이 부회장의 출근거부설을 두고 '올 것이 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애니콜에서 그동안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대신 그의 강력한 업무 추진과정에서 조직 내부에서 불만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이 부회장에 대해 뭐라 말하기 힘들다"면서 "일부에서 '항명'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삼성 내부를 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삼성 최고경영자가 그룹 인사에 항명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 것 자체가 전례가 없어 그룹 차원에서도 향후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기태 부회장 "이빨 치료 때문인데..."

당사자인 이기태 부회장은 현재 언론의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날 경제신문인 <헤럴드경제>와의 간단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빨 치료 때문에 쉬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삼성사장단 회의인 수요회에는 참석했다면서도, 25일 열린 경영전략회의에 대해선 "그게 중요한 회의인가"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이날 전략회의에 불참했다. 최근 사장단 인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미스터 애니콜'로 불리는 이기태 부회장은 지난 7년동안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부문을 지휘하면서 국내 최초로 휴대폰 생산 '1억대' 시대를 열었다. 또 '월드퍼스트, 월드베스트'라는 구호 아래 기술중심의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96년 세계 처음으로 CDMA 방식 휴대폰을 상용화한 것을 비롯해 MP3폰, 1000만 화소폰, 위성 및 지상파 DMB폰, 8GB 슈퍼 뮤직폰, 유무선 통합 UMA폰, HSDPA폰 등 많은 제품에 '세계 최초'라는 단어를 붙였다.

특히 그는 기술과 품질제일주의를 강조해 왔다. 지난 95년 무선사업부 초창기때 휴대폰 품질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구미 공장으로 내려가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500억원 상당의 휴대폰 15만대를 불태웠던 일화는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잘 나가던 삼성 애니콜은 최근 1~2년새 경쟁업체들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아왔다. 휴대폰의 영업이익도 해마다 줄어들었다. 1,2위 업체인 노키아와 모토롤라와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벌어지고 4위인 소니에릭슨과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따라서 이번 사장단 인사로 삼성 애니콜의 사업에 변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향후 삼성전자 휴대폰이 '이기태 방식'의 기술과 고가폰 중심에서 중저가 폰을 포함한 다양한 라인업과 디자인, 마케팅이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인사 잡음이 향후 삼성 정보통신 부문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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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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