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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행 버스타는 곳에서 찍은 발찌쓰까야 미뜨로(지하철)역 모습
탈린행 버스타는 곳에서 찍은 발찌쓰까야 미뜨로(지하철)역 모습 ⓒ 강병구
3박 4일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에스토니아 탈린행 버스를 타게 된 건 계획되어 있던 일은 아니었다. 원래 레닌이 탔었다는 핀란드 헬싱키행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스크바에서 만난 최 선생님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민박집 분들 모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거듭 된 추천과 무슨 일인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헬싱키로 떠나는 열차가 운행하지 않아서 탈린행 버스를 타게 되었다.

민박집에서 일러준 대로, 이틀 전 먼저 사무실을 찾아가 탈린행 버스표를 예매했다. 발찌쓰까야 미뜨로(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던 유로라인 버스 사무실을, 비록 30분이나 헤매고 찾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드디어 5월 12일 아침, 짐을 싸들고 민박집 주인 아가씨와 민박집에서 나와, 함께 투숙하고 있었던 황철희 형님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은 국제선 버스가 다닌다는 느낌보다는, 머리에 보따리를 맨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이는 여느 시골 시외버스정류장 같은 느낌이었다. 하긴 노상에 간판만 없었다면 버스정류장인지도 모를 판이었지만 말이다.

러시아에서 사온 기념품 - 마뜨료쉬까와 바이칼 네르파(물개) 모형
러시아에서 사온 기념품 - 마뜨료쉬까와 바이칼 네르파(물개) 모형 ⓒ 강병구
시간이 돼서 버스에 탑승하고, 얼마 뒤 버스가 출발하였다. 러시아를 떠난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당분간 마지막이 될,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러시아 풍경이란 생각이 들자 왠지 장면 하나 하나를 눈에 담고 싶어졌다. 하지만 버스 창에 비치는 그림자 때문에 사진은 소용없었다. 그래서 그냥 여유롭게 보기만 하자는 마음을 먹으니, 지난 1달여 간의 러시아 여행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 러시아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너무나도 불편하고, 불쾌했던 기억들이었다. 입국심사장부터 시작해서, 도착 당일부터 겪게 된 러시아 경찰의 횡포와 마치 물건 사는 것이 죄라도 되는 듯이 쏘아붙이던 너무나 당당한 모습의 점원들. 그리고 무표정에 무뚝뚝한 말투의 사람들과 거리에서 자주 보이던 술 취한 사람들(특히 아침부터 술병을 손에 들고 다니던 사람들). 이런 기억들 때문인지 러시아를 떠나는 이 버스가 왠지 탈출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것만 떠올랐다면 러시아에 대한 여행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웠던 기억이 먼저 생각났지만, 점점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반대로 좋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르쿠츠크행 기차에서 만난, 정말 잊을 수 없는 샤사, 바샤씨 형제
이르쿠츠크행 기차에서 만난, 정말 잊을 수 없는 샤사, 바샤씨 형제 ⓒ 강병구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던 대륙횡단 열차의 기억부터, 열차에서 만난 샤사, 바샤씨 형제 같은 정말 푸근한 러시아 사람들의 인심. 그리고 러시아 곳곳에서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과 그들 덕에 볼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은, 너무나 또렷하게 러시아 여행의 좋은 기억이 되었다.

더해서 호수라는 것이 믿기지 않던 바이칼의 장엄함과 끝없이 펼쳐져 있던 자작나무 숲의 기억.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보았던 대단한 유물과 유적들. 특히 아름답기 그지없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당장이라도 버스를 돌리고 싶었다. 두려움과 불편함으로 시작한 러시아 여행이었지만 정말 독특하고 대단하며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주었기에, 시간이 지나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러시아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

꼭 다시보고 싶은 바이칼 호수
꼭 다시보고 싶은 바이칼 호수 ⓒ 강병구
요즘 고구려 사극 열풍에 힘입어 중국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 등의 과거 고구려, 발해의 영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을 느낀다. 특히 전에 하바롭스크 여행기에서 소개하기도 했지만, 우리 역사학계에선 자국 이익을 위해 우리 역사연구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중국지역에 비해, 공동연구에 적극적인 러시아 지역의 고구려, 발해 유물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도 연해주지역에서 출토된 발해 유물 전시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문제 뿐만 아니라 당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볼 때, 우리가 러시아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북한 경제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하게 될 열차 문제부터,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미개발된 자원에 대한 관심, 그리고 원유를 비롯해 원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러시아내 구매력 증가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때는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유전의혹 같은 접근은 금물이다. 실제 러시아 여행 중 만난 고려인을 포함한 한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러시아를 너무 쉽게 보고 접근하는 한국 실업가들은 무조건 실패한다는 것이었다.

중국 동북 3성의 공산품만 가득했던 블라디보스톡의 시장
중국 동북 3성의 공산품만 가득했던 블라디보스톡의 시장 ⓒ 강병구
외국자본에 대한 러시아 특유의 접근장벽을 생각해보면, 물론 러시아는 접근이 쉬운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며 곳곳에서 보고 느꼈지만, 그곳의 공산품들은 당장이라도 한국물건을 가져다가 팔아야하겠다는 느낌이들 정도로 열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도 공급부족으로 만만치 않은 가격에 팔리는 모습은, 우리의 양질의 공산품으로 승부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했다.

더불어 시베리아 지역의 높은 실업률을 생각한다면, 현지 지방정부와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조성하여 직접투자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일이 긍정적으로 성사만 된다면 한국과 러시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 각 기업이 아니라 한국 정부부처나, 기업단체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러시아 시베리아지역 정부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조성해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남북의 상황이 좋아져 철도가 연결된다면 정말 꿈같은 일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시 올 때까지 잘 있어라, 러시아!

러시아 국경 초소를 지나, 버스에 탑승하기 직전
러시아 국경 초소를 지나, 버스에 탑승하기 직전 ⓒ 강병구
이런저런 생각에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자, 옆자리의 할머니가 이상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얼마나 혼자 생각에 빠졌는지,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벌써 러시아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에 다다르니 좀 전의 생각과 달리 다시 러시아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관총을 맨 군인이 버스로 올라와 내리라고 말 할 때는, 무서운 표정이나 어투가 아니었음에도 다시금 겁이 났다.

버스 짐칸을 열어 짐들을 초소로 일일이 실어갔다. 특별히 이상한 물건이 들어있지 않을 내 배낭에 혹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엑스레이 검사에 뭔가 트집잡혀 출국 못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에 미치자, '괜히 버스 탔나?', '버스라서 더 빡빡하게 검사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안내에 따라 초소 안에서 줄을 서서 여권과 비자 검사를 받았다. 무표정한 검사원 아가씨가 두려웠지만, 여권을 한참 살펴보고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도장을 찍어주고 끝났다. 짐도 내 상상 따윈 전혀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검사대를 빠져나왔고, 그걸로 러시아 출국심사는 끝이었다.

초소 뒤의 단출한 면세점에서 사이다 하나로 타는 목을 축이고, 다시금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면세점 바로 뒤의 철조망을 지남과 동시에 나는 공식적으로 러시아를 떠났다. 이 오묘한 매력의 여행지를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는 러시아를 떠나 에스토니아에 들어섰다.

한가로워 보이는 러시아 국경 마을의 모습
한가로워 보이는 러시아 국경 마을의 모습 ⓒ 강병구

[여행팁 13] 마지막 러시아 여행팁과 러시아 총정리

▲ 1월 현재 탈린행 버스시간표
ⓒwww.eurolines.ru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탈린으로 가는 버스 타기

러시아에서 버스를 타고 외국으로 간다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유럽을 향하는 여행자라면 한번 시도할만하다. 유럽어디서나 탈 수 있는 유로라인 버스가 러시아의 이 큰 두 도시에도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행 버스도 있는 만큼 노선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선 필자가 경험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버스타기만 소개하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발찌쓰까야 미뜨로(지하철)역에서 출구로 빠져나오면 바로 눈앞에 보는 공터가 버스 정류장이다. 표지판이 없다면 그저 도로로 착각할 만한 곳이다.

출구에서 밖을 보고 오른쪽 허름한 건물을 보면 2층쯤에 'eurolines'라는 간판이 보일 것이다. 그쪽으로 찾아가 버스표를 예매하기만 하면 된다. 러시아지만 사무실 사람들이 영어에 능통하고, 친절하므로 겁먹을 필요 없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다 알려준다.

www.eurolines.ru 사이트에 접속하면 시간표를 알아볼 수도 있는데, 영어서비스는 지원하지 않으므로 조금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러시아에 가려는 마음을 먹은 정도의 노력이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으므로 확인해보자. 참고로 오늘(07/01/23) 시간표를 확인했더니, 필자가 탔던 당시(06/05/12)와 시간표에 약간 차이가 있다. 참 학생이라면 국제학생증 꼭 챙기자, 할인해준다.

빼놓았거나, 다시 한 번 소개하는 중요한 여행팁들

비자와 바우처, 그리고 입국심사 - 출발 전 여행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 입국 심사 시 비자에 표기된 목적과 다른 대답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관광 왔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하게 하자.

거주등록 - 몇 번을 말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외국인이 각 도시마다 3일 이상 체류하려면 입국카드 뒤편에 거주등록확인 스탬프를 찍어야한다. 각 지역의 외국인투숙용 큰 호텔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것도 여행객 본인이 하기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각 지역의 민박집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이다.

이르쿠츠크 예지네 민박 : baikalgo@hanmail.net
상트 페테르부르크 나무 민박 : rusnamoo@hanamil.net


이 밖에도 러시아 유명도시에는 한 곳 이상의 고려인, 한인 민박이 있으므로, 러시아 여행정보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자.

하바롭스크 가이드 - 몇몇 여행 준비자들께서 가이드 안내를 부탁하셨는데, 필자의 하바롭스크 여행 가이드를 해주셨던 현신화씨에게 연락해 본 결과 연락처를 공개해도 좋다는 답변을 들어 공개한다. 신화씨에 연락을 하면 본인 외에도 현지의 유학생, 하바롭스크 안내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연락처 : hshgo3459@hanmail.net

기차여행 필수품 - 아날로그 듀얼모드 시계, 탈 열차의 운행시간표(www.poezda.net), 뚜껑있는 등산용 컵, 젓가락이나 포크, 충분한 간식(도시락 라면과 시장에서 구입하는 견과류 추천), 책, PDA, 게임기 등 시간 보낼만한 물건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저의 러시아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시작되는 북유럽 여행기와, 서유럽, 월드컵 이야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여행기는 개인적인 사정과 좀 더 충실한 자료 보충을 위해 2주 뒤인 2월 6일(화요일)에 올리겠습니다. 처음쓰는 연재기사라 능력이 모자란 점 많은 양해부탁드립니다.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와 러시아 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을 방문하시면 더 자세한 여행정보를 얻을 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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