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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 강변의 스핑크스 상
네바 강변의 스핑크스 상 ⓒ 강병구
전 회에 소개한 놀라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외형은 속이 텅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멋진 도시와 박물관들을 더 돋보이게 하는 유물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스핑크스 상이었다. 러시아에서 이집트 유물인 스핑크스를 보게 될 것이라 상상도 못하고 있던 나로서는, 여행서에 소개되어 있는 이것의 존재에 의아했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 세계를 호령했던 제국으로서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이지만, 이집트 유물, 그것도 큰 규모의 스핑크스를 갖고 있다는 것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바강변을 따라 걷다가 그것을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에르미타쉬 앞의 다리를 건너 바실리 섬의 네바 강변을 한참 걷다가 다음 다리에 도달할 때 쯤, 스핑크스는 3500여 년 전의 것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표트르 대제 때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이 유물을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들의 문화재 약탈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새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그 시절, 시대에 뒤쳐진 약소국의 후예로서 갖게 된 아픈 역사를 다시금 느꼈다면 조금 심한 감상일까?

바실리 섬에도 여러 볼거리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동물학 박물관이었다. 맘모스를 비롯해 희귀한 동물자료들이 넘쳐난다는 이곳에 관심이 안갈 수가 없었다. 특히 러시아까지 왔는데, 시베리아에서 나왔다는 맘모스는 한번 꼭 봐야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었기도 했고 말이다.

박물관 3층에서도 전부를 담을 수 없었던 흰긴수염고래 뼈 표본
박물관 3층에서도 전부를 담을 수 없었던 흰긴수염고래 뼈 표본 ⓒ 강병구
전시물들의 규모에 비해, 외소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입구를 어렵게 찾아 들어간 동물학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압도 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흰긴수염고래의 뼈가 전시되었다. 지구상에 사는 가장 거대한 포유류라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러시아 말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곳에 쓰여 있는 학명을 적어와 한국에서 검색하여 이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오래전 바다에 살던 공룡의 뼈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것이 현재도 살고 있다는 점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뼈의 길이가 수 십 미터에 달했는데, 돌아온 지금도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받은 강한 인상이 또렷이 기억난다.

수많은 동물 박제가 전시된 이곳에서, 드디어 러시아에 온 목적 하나를 달성하였다. 앞에도 말했지만, 어릴 적 과학상상도로만 보았던 맘모스(매머드)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러시아 여행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였다. 눈앞에 줄지어 있는 맘모스의 모습은 어릴 적 꿈이 이루어지는 듯 한 감동을 주었다. 십여 기에 달하는 맘모스 완전 유골과 여러 점의 파편들, 그리고 어린 맘모스 화석과 코끼리와의 관계도 등은, 비록 러시아말을 몰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던 나에게도, 맘모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어마어마한 수집품들에 놀라다

드디어 러시아 땅에서 맘모스(매머드)를 보다
드디어 러시아 땅에서 맘모스(매머드)를 보다 ⓒ 강병구
동물학 박물관의 동물들도 대단하지만, 러시아,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엄청난 컬렉션에 놀라고 싶다면 에르미타쉬를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300만점에 달하는 소장품으로,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나.

하지만 잠시, 그것도 반나절만 둘러볼 여행객이, 엄청난 수집품들을 제대로 둘러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나마 마침 알게 된 투어패키지에 참석하게 되어, 나름 충실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화려함을 자랑하는 에르미타쉬에는 대단한 수집품들이 가득한데, 러시아 것도 있지만, 유명한 서유럽 작품들과 이집트유물까지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손색이 없는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에서 배워온 기술로 직접 만들었다는 목공예 거울이나, 에르미타쉬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대단한 시계 - 맞춰진 시간이 되면 공작이 날개를 펴고 울며,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 등의 공예품도 유명하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 에르미타쉬 박물관
하지만 에르미타쉬를 대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평생 몇 점의 완성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들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르네상스기 작품들, 그리고 어느 미술관 보다 잘 갖춰져 있다는 렘브란트, 루벤스의 작품들, 그리고 앙리 마티스와 르느와르 등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까지의 미술품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유명한 작품들에 관심이 많았다. 얼마 전 많은 감동을 주었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나온 한 작품을 에르미타쉬에서 만났던 것은 많은 감동을 주었다. 주인공 유정과 윤수가 만나는 서울구치소 접견실에는 <돌아온 탕자>라는 작품의 모작이 벽에 걸려있는 것으로 나온다.

죽을 때 줄 유산을 미리 달라며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아들이, 허름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의 이 그림은 같은 내용의 성경구절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형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아버지에게 벌을 받을까 두려워 떨고 있는 아들의 등에는 아버지의 두 손이 놓여있는데, 모양이 다른 이 두 손은 한 쪽은 억센 아버지의 손, 한 쪽은 부드러운 어머니의 손을 상징한다고 한다.

에르미타쉬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돌아온 탕자>는 너무 유명해 자주 대관이 되는 관계로, 에르미타쉬를 방문해도 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작품을 꼭 보겠다면 미리 알아보고 가야할 듯하다.

이 밖에도 렘브란트와 같은 시기 활동하며, 전혀 다른 행복한 삶을 살았던 루벤스의 화려한 그림과 미술 교과서에 꼭 소개되어 있는 야수파 마티스, 인상파 고갱의 그림도 에르미타쉬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들이다.

러시아 회화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에르미타쉬에 소장되어 있는 앙리 마티스의 <춤>
에르미타쉬에 소장되어 있는 앙리 마티스의 <춤> ⓒ 에르미타쉬 박물관
전에 모스크바의 뜨레챠코프 미술관을 소개하면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18~19세기의 러시아 미술품에는 정말 대단한 작품들이 많다. 천재 레핀, 이바노프, 프로브 등의 예술가는 같은 시가 활동했던 세계적인 러시아 문인들과 함께 러시아 예술 황금기를 빛낸 위대한 작가들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그곳이 국립 러시아 미술관이다. 뜨레챠코프 미술관이 뜨레챠코프라는 개인 사업가가 러시아 미술품을 모으면서 시작된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이 러시아 미술관은 그런 뜨레챠코프의 활동에 자극받은 러시아 정부가 직접 러시아 미술을 수집하게 되며 만들어진 곳이다.

에르미타쉬가 세계적인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라면, 러시아 미술관은 러시아 예술만을 모아놓은 러시안 컬렉션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 이꼰(성화)들로 시작해 최근의 초현실주의 미술품까지 러시아 작가들의 활약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 미술관의 또 하나의 대작, 바실리 폴레노프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러시아 미술관의 또 하나의 대작, 바실리 폴레노프의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 ⓒ 강병구
이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대단한 수집품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이런 컬렉션을 갖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나, 그러기에 교과서와 사진 등으로만 배워야하는 우리의 현실이 참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러시아에서 그곳의 유물을 가져올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정말 안타깝다고 생각하게 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린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작품과 유물 앞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학교 수업으로 선생님의 인솔 하에 직접 예술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감상을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 작품을 소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것들도 잘 활용하지 못하던 우리 교육 현실이 생각났다. 고려청자의 우수함에 대해 수없이 설명 들었지만, 단 한 번도 박물관에 가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난 적은 없다. 금속활자는 시험에 단골 문제로 달달 외우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모양과 활용을 직접 체험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 보다 못산다고, 열악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러시아에 대한 인상이, 커다란 작품 앞에 앉아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에 30분여를 감상하고 이야기하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확 바뀌었다. 이런 교육이 하나씩 쌓여 그런지, 작품 하나 도장 찍듯 돌아다니기에 정신없던 우리에 비해, 차분하게 감상하는 러시아 인들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의 미술 천재, 일랴 레핀의 <1901년 5월 7일 1백 주년 기면 정례 국가평의회>
러시아의 미술 천재, 일랴 레핀의 <1901년 5월 7일 1백 주년 기면 정례 국가평의회> ⓒ 강병구


[여행팁 12]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러시아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에르미타쉬와 러시아 미술관의 대단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러시아 미술과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점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러시아 미술품들이 이렇게 대단할지도 몰랐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이렇게 여행기를 올리려는 지금, 자료들을 찾아보니, 필자의 이런 생각을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들이 공감했는지, 최근 출간된 좋을 책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라는 책은, 이 책을 미리 읽고 가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정도로 러시아 미술품을 차후에 이해하게 해준 좋은 책이었다.

짧은 여행기로 에르미타쉬를 비롯한 러시아 미술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시고 느끼는 여행준비자들, 독자님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더불어 각 박물관들의 홈페이지도 꼭 들러보자.

에르미타쉬 박물관 홈페이지 : www.hermitagemuseum.org
러시아 미술관 홈페이지 : www.rusmuseum.ru


개별 가이드 투어 - 러시아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100% 즐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불어 배낭여행객이라면 가져간 여행서 정도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누가 좀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은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 현지 교민 신문에서 가이드 투어를 해준다는 현지 한인여행사를 찾았다. 요즘 파리나 로마 등은 배낭 여행객을 상대로 한 가이드 투어가 대유행인데 그와 비슷한 시스템이라 생각하면 된다. 당일 가이드 비만 지불하면 현지의 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이동 등을 책임져주므로, 사전지식이 부족해 100% 여행을 즐기기 어렵겠다면 과감하게 신청하자.

백야투어 홈페이지 : www.100yanara.com

민박집 - 누누이 이야기 했지만, 러시아에서 숙박은 중요한 문제다. 거주지 등록에 대한 공포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러시아에서, 말 통하는 한인 숙박을 만나는 것은, 과장을 좀 하자면, 내 집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필자가 머문 민박집을 소개한다.

나무 민박 : rusnamoo@hanamil.net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여 아름다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매력을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http://cafe.daum.net/russiapetersburg을 방문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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