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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의 내력> 겉표지
ⓒ 문학동네
최근에 소개되는 일본 소설들의 특징은 '가볍다'는 것이다. 가볍기에, 읽는데 부담이 따르지 않는다. 가볍기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너무 만화 같다는 말이 통하는 것도 일본 소설들의 그러한 특징 때문이다. 확실히 한국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특징이다.

그런데 이 특징 때문에 생기는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가벼워서 읽고 나면 '끝'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소개된 일본 소설을 두 번 이상 읽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면 나이가 먹어서 다시 펴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경우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소위 '킬타임용'에 불과한데, 오늘도 그런 일본 소설들은 마구잡이로 소개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소개된 <돌의 내력>은 어떨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이 눈에 띄지만,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은 표지다. 요즘 나오는 일본소설들은 흡사 만화잡지 같은 모습이 많은 데 비해 <돌의 내력>은 차분하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던 그 시절, 일본은 패전국이 될 운명이었다. 그에 따라 일본 군인들의 처지 또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완벽한 패전병, 그것이었다.

작품의 주인공 마나세 역시 마찬가지다. 마나세는 홀로 산 속을 헤매는 패전병이다. 우연히 패전병 부대에 끼어들게 됐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이런 경우는 더 나빠졌다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BRI@왜냐하면 홀로 있을 때는, 막연하게 '세상'을 두려워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전병들 사이에서는 옆에 있는 동료를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만약 내가 먹을 것을 동료가 탐한다면? 어서 도망쳐야 하는데 동료가 심각한 상처를 입어서 걸을 수 없다면? 어쩌면 동료를 죽여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막연한 것을 가르는 것보다 구체적인 것을 죽이는 일의 공포는 더 큰 법인데, 마나세가 처한 처지가 그렇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이내 두려움, 고뇌, 그리고 번뇌가 마나세의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는다. 무의식의 공포로 남을 정도로.

'평범한 돌멩이 하나에도 지구라는 한 천체의 역사가 아주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를 설명하는 말로 시작하는 <돌의 내력>은 요즘 것들과 좀 다른 감이 있다. 대중의 취향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소설이랄까?

물론 이것이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한 소설이었다면, 대중으로서는 당장 덮어버려야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픈 말을 하되, 그것이 대중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는 자부심 같은 것이 보인다. 튀어서 눈에 띄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있다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같은 것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자부심인가, 아니면 오만함인가? 이 작품만 두고 본다면, 이것은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정도의 자부심은 응당 가져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전쟁의 상흔에 따른 비극적인 트라우마와 그것이 발현하는 것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것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류의 소재들은 결코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님에도 <돌의 내력>은 그것을 따라가는 과정을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돌'이라는 매개체와 섞어서 풀어내는 정교한 구성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두 번째는 유려한 문장력에서 비롯된다. <돌의 내력>은 흔히 일본 소설의 특징이라고 하는, '너무'가 없다. 너무 웃기고, 너무 엉뚱하고, 너무 허황된 그런 것은 일절 배제한 채, 사실적인 것들을 절제된 문장들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묘사력이 백미다. 앞 문장이 자연스럽게 뒷문장을 부르는 그것은 중독성 있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 이것만 하더라도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이름을 기억하게 할 정도다.

세 번째는 표제작 '돌의 내력'과 함께 있는 '세눈박이 메기'에서도 나타나듯 작가의 시야가 현재를 벗어나 과거까지 아우를 정도로 넓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와 과거 세대와의 갈등은 물론, 신흥 종교와 토착 종교의 충돌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나쓰메 소세키를 연상시킬 정도로 놀라운 재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특징들이 있는 작품은 읽기가 쉽지 않은데 반해 <돌의 내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재미가 느껴진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중독성 강한 문장력은 물론이고 넓은 시야에 훌륭한 구성력까지 갖춘 것이 돋보이는 <돌의 내력>, 묵직한 무게감이 심상치 않다. 간만에 다음에도 책장을 펼치게 하는 일본 소설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확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게다. 적어도 이런 작품이라면.

돌의 내력 - 제11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 문학동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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