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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애순무용단 2007년 신작무용 <백색소음> 프롤로그. 반라의 무용수들이 추는 메시지 강한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 안애순무용단

2007년이 수상하다. 보통의 경우 연초에는 무용공연이 그다지 없는 편이다. 문화예술위원회나 문화재단의 지원 결과를 지켜보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1,2월 동안 안무가들은 새 작품을 구상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런 현상을 깨고 새해 벽두부터 화제가 된 무용공연이 있다.

현재 한국현대무용을 상징하는 큰 이름 중 하나인 안애순이 만든 새 작품이 6일과 7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 올려졌다. 첫날은 극장음향기기의 문제로 공연이 중단되었다가 재공연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으나, 한국 현대무용의 선두주자답게 안애순의 신작 <백색소음>은 새해 무용계에 이슈를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BRI@제목이 암시하는 백색소음은 이이제이식으로 소음을 막아주는 이로운 소음으로 일반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 백색소음은 그와는 달리 부정적 의미로 채용했다. 물론 작품을 깊이 이해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중의적 상징수법으로 받아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안애순이 말하고자 백색소음은 일종의 사회적 권력에 대한 말없는 아우성이다.

영화나 연극을 보듯이 춤의 스토리를 세세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무용이 전통적 춤이라는 의미를 탈피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고는 있으나, 아무리 그래야 몸의 기호로 그려내는 것을 언어로 인식한다는 것은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주제에 대한 이미지로의 형상화가 잘 이루어지는가의 여부는 판단할 수 있다.

70분 가량의 짧지 않은 대작인 <백색소음>은 소리지르고 싶은 현대인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고, 괴롭지만 왜 그런지는 모른다는 것이 <백색소음>의 전제이다. 소음이지만 다른 소리를 막아주어 집중력을 도와준다는 백색소음처럼 현대인이 앓는 많은 심리적 고통의 원인은 일상적으로 우리를 편케 해준다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정부, 권력, 법, 도덕 등이다.

▲ 안애순무용단의 <백색소음>에는 무섭게 생긴 개도 등장한다. 무대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듣는 낯설고 흥미로운 경험은 안애순이 준 또 다른 상상력의 선물이었다
ⓒ 안애순무용단
받아드리기에 따라서는 아나키스트적 발상으로 볼 수 있으나, 현대예술하는 사람치고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면 그것도 좀 의심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다만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 이번 안애순 작품에 대해서 무용계에서는 설왕설래가 조금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 막연한 삶에 대한 넋두리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증후에 대해서 이만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작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무용이니 춤이 좋아야 한다. 70분의 모든 장면이 다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세가지 장면은 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가슴에 살색 테이프만 붙인 채 연기한 네 명의 여자 무용수와 한 명의 남자 무용수가 그려낸 프롤로그와 백색소음의 다의적 상징을 구체화한 에필로그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의 독무와 군무가 어우러진 이번 공연은 단연 군무가 돋보였다.

앞뒤의 장면이 워낙 강한 탓인지 중간의 독무들은 조금 군살인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독무보다 군무는 어렵지만 완성될 때 지극히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것은 안무가의 상상력을 뒷받침할 무용수가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안애순 무용단의 신작 <백색소음>은 사실 위험한 시도일 수 있었다. 처음 반라의 무용수들이 10분 가량 보이는 장면은 자칫 선정적인 볼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장면에 출연한 박소정, 최혜경, 황수현 등 안애순무용단의 훌륭한 무용수들은 그 위험을 피해가는 것은 물론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었다.

▲ <백색소음>의 에필로그. 아주 오래 억압을 받다보면 사람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사는 법이라고 안애순은 말했다. 이 끝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두렵기도 혹은 서글프기도 하다
ⓒ 안애순무용단
안애순은 우리나라 안무가들 중에서 타 장르 예술가들과 협업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임선옥이 미니멀하면서도 다양한 무대의상을 선보였다. 움직임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것이 무용이기 때문에 그것에 충실하게 디자인해 신선한 감각을 선보였다.

신년음악회는 있어도 신년 무용은 없다. 그러나 새해 벽두의 여는 무대에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공연이 끝나고는 만족스러운 모습들이었다. 항상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백색의 의미를 뒤집은 안무가 안애순의 <백색소음>은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올해 다른 무용제를 통해 다시 볼 수 잇는 기회가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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