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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품 알빠진 돋보기
아버지의 유품 알빠진 돋보기 ⓒ 나관호
가시고기 같은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여러 교훈과 유품을 남겨주셨다. 교훈은 내 마음과 인생길에 이정표처럼 살아 있고 유품은 아버지를 떠올리는 도구다. 아버지의 교훈은 정직하고, 입장 바꿔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다. 남겨주신 유품 중 소품은 갈색 선글라스, 시계, 반지, 은수저, 만년필 그리고 돋보기 등이다. 양복 몇 벌과 외투도 있었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런데 몇 년 전 이사를 하는 도중에 아버지의 유품이 사라져 버렸다. 이삿짐을 포장할 때 아침까지는 안방에 있었는데 오후에 짐을 풀고 보니 아버지의 유품이 없어졌다. 몇 개의 내 손목시계와 외국에서 사온 은으로 만든 자석 달린 장식용 소품도 안 보였다. 모든 짐을 있던 그대로 옮겨 준다며 손대지 말라고 해서 귀중품 몇 개만 가방에 넣었었다. 아버지의 유품 상자는 귀중품이지만 값나가는 것이 아니라서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BRI@짐작은 가지만 본 것이 아니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안방에서 짐을 싸고 있던 이삿짐센터 팀장이 잠시 쉰다고 할 때 점퍼 주머니가 불룩했었다. 담배를 피운다며 잠시 밖으로 나간 것이 생각났다. 수고하는 것 같아 쉬는 시간에 간식을 챙겨주면서 머릿수에 맞춰 가욋돈을 봉투에 넣어 주었건만, 없어진 물건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다.

아는 분 소개로 연결된 이삿짐센터라서 상황을 설명하기가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가져간 물건 내놓으라고 한들 안 가져갔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이미 떠나버렸고 본 사람이 없는데다 짐작만 하는 것이니까. 잠시 눈을 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고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인생은 물의 흐름과 같다
인생은 물의 흐름과 같다 ⓒ 이성재
그때 초등학교시절 내 야구글러브를 잊어버렸을 때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네가 본 것이 아니면 너의 것이라도 달라고 하지 마라." 아버지는 언제나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면 경솔하게 말하는 분이 아니었다. 경솔한 판단은 언제나 오해를 낳든지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인간관계 철칙 중 하나였다.

나도 아버지의 교훈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물건이라는 것은 영원한 주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 있던 도자기의 경우 수백 년 동안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수많은 주인을 거쳤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진짜 주인일까? 물건을 손에 쥐고 있다고 주인이 아니다. 시간 앞에 주인은 바뀐다는 생각을 했다.

값으로 치면 별로 안나가는 것들이지만 솔직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숨결이 묻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버지의 유품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잘 보존되기를 바라며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배려를 분명히 알 테니 다음부터 그들에게서 나쁜 손버릇을 없애달라고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왜 4년만에 아버지의 돋보기가 나타났을까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런데 며칠 전 옛 명함과 열쇠 그리고 휴대용품들이 들어 있던 조그만 바구니를 비우는 과정에서 가죽케이스가 찢겨져 있는 돋보기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유품이다. 갑자기 돋보기가 커보였다. 그런데 알 하나가 없다. 외눈박이다. 아마도 한쪽 알이 없는 돋보기라서 놓고 간 모양이다. 급해서 그런지 안방에 있는 작은 장식용 바구니에 던져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라도 남았으니까.

하나 남은 아버지의 유품, 알 빠진 돋보기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알이 하나 남았지만 그마저도 빠져 버렸다. 잘 끼워지지 않는다. 알 하나를 끼워보려고 애쓰는데 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시던 모습, 붓글씨 쓰시는 모습,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너머로 나를 쳐다보시던 모습이 스쳐간다. 그리고 성냥 머리를 모아 아버지의 흰 머리를 뽑아드리던 내 모습도 스쳐간다.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알 빠진 돋보기를 쓰고 거울을 보니, 아버지 모습 비슷한 내 모습이 비쳐진다. 벗겨진 이마를 만지며 웃었다. 아버지처럼 돋보기 너머로 거울에 비친 나를 보았다. 잠시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 알 빠진 돋보기가 고마웠다.

훗날 나에게 돋보기가 필요한 시간이 오면 아버지의 돋보기에 알을 끼워 넣어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알 빠진 돋보기 유품을 수건으로 잘 닦았다. 윤이 난다. 그것을 내 책상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다. 손버릇이 나쁜 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다.

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지금 그것이 나타났을까?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가난해지고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일까? 그 동안 깜빡 잊고 살았던 아버지의 유언과 교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토록 아버지가 당부했던 '그것'. 내가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 당신의 실패를 통해 경험했던 '그것'을 그리도 당부하셨던 아버지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2007년을 시작하면서 올해를 나의 축제시간으로 만들려면 '아버지의 교훈을 생각하라'는 암시 같았다. 아버지의 유언을 잊어버리고 살아, 매번 넘어지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살았다. 그런데 그것은 2006년까지 마감이고 2007년부터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우연히 발견한 하나 남은 아버지의 유품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앞날에 대한 응원가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 빠진 돋보기가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임상교육을 시켜주는 것 같았다.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한 나에게 아버지의 유언은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아버지라는 호칭을 기억하고 부르는데도 왠지 에너지가 느껴진다. 힘찬 발걸음이 생긴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잘 해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며 북칼럼니스트입니다.
본 기사는 U포터에도 보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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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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