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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가 저학년일 때 아이를 위해 구입한 피아노가,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자리만 차지하는 골칫덩어리로 변하는 현실을 다시금 이야기하려고 한다.

고학년이 되는 아이는 왜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을까? 아이의 엄마가 피아노를 치면 야단을 쳐서일까?

사실 우리 가족들도 나에게 시끄럽다는 불평을 해댔고, 아래층에서도 시끄럽다며 얼굴을 찡그리고 올라온 일이 몇 번이나 있다. 그래도 나는 피아노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래층에는 연방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였고, 식구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뇌물로 바쳤다. 야단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데 아주 작은 걸림돌일 뿐이다.

@BRI@엄마의 야단이 아니라면 고학년의 아이는 왜 이제는 피아노를 치지 않을까? 공부해야 할 시간이 모자라서 도저히 피아노 칠 시간이 없는 것일까? 나도 당시 두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랴, 첫 아이 학교 보내랴, 집안 살림 건사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설거지를 하는 틈틈이, 기저귀를 가는 짬짬이 피아노를 연습했다.

내가 이런 몰입이 가능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피아노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설에 시댁에 갈 때도, 추석에 시댁에 갈 때도 마음이 무거웠다. 피아노를 연습해야 하는데, 시댁엔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피아노를 어느 순간 그만둔 아이는 피아노에 재미를 붙이질 못했을 것이다. 피아노를 재미있게 배우질 못했기 때문이다. 의무적으로 배운 피아노에 재미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어렸을 때 내 친구들도 이런 이유로 피아노 치기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도 지루했을 수가 있다. 물론 배우기에 인내심이 없다면 성취도 없을 것이다. 인내심을 강화시키는 것은 재미이다. 재미가 있다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인내심이다.

우리 집은 3층이고,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 1층에는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사신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아니 어떡해서 6개월 만에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게 되셨어요? 혹시 레슨받으세요?"
"6개월 아니고, 거의 1년 되어 가요. 그리고 우리 둘째를 어디 두고 레슨은 무슨 레슨이요."
"저 우리 아이 피아노 치라고 안 잡잖아요. **엄마(동네 내 명칭이다)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배우는 때가 천편일률적은 아닌 거 같더라구요."

나는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의 족적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아야 할 때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재미있게, 보다 현실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면 아이들은 피아노를 친구로 생각하고 절대로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피아노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십대의 나이를 조금은 잠잠하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질퐁노도의 시기를 피아노를 벗삼아 이겨낸 이십대를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가 되고, 현실을 즐기거나, 이겨내는데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번쯤 자녀를 위해서건 자신을 위해서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 전에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피아노를 배우는가? 학교 음악시험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가? 나는 피아노로 무엇을 연주하고 싶은가?

자신이 가지는 의문에 주저 없이 답을 할 수 있을 때가 피아노를 시작할 적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적기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내 경우 서른다섯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글을 실어주신 오마이뉴스에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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