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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들 땐 여럿이 하면 놀이처럼 재미있어요.
음식을 만들 땐 여럿이 하면 놀이처럼 재미있어요. ⓒ 이승숙
"우리 텔레비전을 보면서 새해를 맞진 말자. 좀 색다르게 하면 어떨까?"
"그럼 우리 마리산에 올라가자. 그곳에서 새해를 맞자."


@BRI@색다르게 보내고 싶다는 내 말에 남편은 마리산에 가서 정기를 받아오자고 그랬다. 그러자 애들이 싫다고 그런다.

"보나 마나 마리산은 사람으로 빡빡할 걸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올라가다가 얼굴 들면 앞사람 배낭에 부딪힐 텐데 뭐 하러 복잡하게 그날 산에 가요? 그러지 말고 우린 집에서 보내요."
"그래? 그럼 뭐 맛있는 거라도 사다 먹을까?"
"사먹는 거보다는 우리 만두 만들어 먹어요. 그게 재미있을 거 같아요."


만두를 해먹자니, 참 색다른 발상이었다. 만두를 만들자는 소리에 벌써 딸애는 인터넷을 뒤지면서 만두 만드는 법을 찾아본다.

"어머니, 만두 속 재료는요, 음… 당면, 두부, 돼지고기, 파, 신 김치… 이런 게 들어가요. 그리고 후추를 많이 넣어야 해요."
"그래? 그럼 엄마는 총괄 감독할 테니까 너네들이 한번 만들어 볼래? 엄마는 간만 맞춰줄게."
"아유, 어머니는 일도 안 하고 카메라만 들고 다니려고 그러죠?"
"기록 남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 모르냐?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종군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잖아.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데."


놀이처럼 하면 일도 재미있다

밀가루가 덜 묻은 쪽에 속을 넣고 싸야 잘 붙는답니다.
밀가루가 덜 묻은 쪽에 속을 넣고 싸야 잘 붙는답니다. ⓒ 이승숙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갖다 붙이면서 은근슬쩍 만두 만드는 일을 애들에게 맡겨 버렸다. 아들과 딸은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서 다툴 때도 있지만 대개 서로 의논하면서 다정하게 지낸다. 둘이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참 흐뭇하다. 그래서 두 남매에게 만두 만드는 일을 맡기고 뒤로 빠져서 지켜보기로 하였다.

서울 경기 지방에서는 명절에 만두를 빚어서 먹지만 내가 나고 자란 경상도에서는 만두 먹는 풍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만두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먹어본 깜냥으로 대충 만두 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부랑 김치는 물기를 꼭 짜야 한다. 손아귀 힘이 좋은 아들이 두부와 김치를 짜기 시작한다. 꾹꾹 눌러서 짜자 국물이 다 빠져나온다.

"만두집들은 그 많은 재료를 어떻게 손으로 다 짤까요?"
"그런 집에서는 기계로 짜겠지. 탈수기를 사용할 거야."


김치는 짜기가 쉬웠지만 두부는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기도 했다. 아들이 국물을 짜내는 동안에 딸은 다른 재료들을 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길이로 잘라줘야 해요?"
"음, 그냥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길이로 잘라주면 돼. 길면 만두 먹을 때 씹히고 별로 안 좋을 거야. 그러니까 다 자잘하게 잘라 줘."


재료가 많으니까 써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면서 놀이처럼 하니까 일이 재미가 있었다.

일머리를 알면 일이 쉽다

계란 흰자물을 만두피 끝에 살짝 발라주고 가운데부터 접어 들어갑니다.
계란 흰자물을 만두피 끝에 살짝 발라주고 가운데부터 접어 들어갑니다. ⓒ 이승숙
주방 바닥에는 온갖 부스러기들이 다 떨어져 있다. 어른이 하면 깔끔하게 일 처리를 잘하겠지만 애들은 흘리고 떨어뜨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다 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거다.

만두소로 들어갈 재료들을 커다란 대야에 담아서 섞어주기 시작했다. 아들이 큰 손으로 휘저으면서 비비기 시작한다. 옆에서 딸은 소금이랑 후추 같은 양념들을 넣는다.

"후추를 얼마나 넣어야 하지? 이 정도 넣으면 될까? 소금은 또 어느 정도 넣어야 하지?"

딸애는 간을 맞추는 게 영 불안한지 계속 동생인 아들에게 물어본다.

"누나, 일단 후추를 많이 넣어야 해. 참기름도 넣고 깨소금도 넣어줘야 해. 그리고 계란도 넣어야 해. 그래야 찰기가 생겨서 잘 흐트러지지 않아."

동생의 코치를 받으면서 딸아이가 계란을 몇 개 깨뜨려서 넣었다.

"계란 넣었어? 노른자만 넣고 흰자는 따로 모아뒀다가 나중에 만두피에 속 넣을 때 써야 해."

거실에서 딴 일 하던 남편도 주방으로 들어서며 아는 체를 했다. 노른자만 넣고 흰자는 따로 모아둬야 한단다.

"어떡하지? 계란 흰자는 따로 모아놔야 하는 거예요?"

연구 개발하면서 만두 속을 만들다 보니까 준비한 만두피에 비해서 속이 많아져 버렸다. 그래도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재미만 있다.

이제 만두를 만들 차례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들이랑 남편은 덩치는 산만한 사람들이 손 속은 야무지다. 만두피를 손바닥에 펴놓고 속을 채운다. 그리고 꼭꼭 주름을 잡아가며 만두피를 붙인다. 하나도 안 터지고 깔끔하다. 하지만 딸과 나는 아무리 해도 만두피가 잘 붙지 않는다. 억지로 하다 보니 만두가 터져 버린다. 그 모양을 힐끔 본 아들이 한마디 충고를 한다.

"밀가루가 덜 묻은 쪽에다 속을 싸세요. 그러면 잘 붙어요. 그리고 끝부터 붙여 나가지 말고 가운데부터 붙여 주세요. 그 다음에 양끝을 붙여나가면 안 터지고 잘 붙어요."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그냥 알지 그런 걸 뭘 배워요?"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빌면서

눈썰미가 좋은지 아들은 처음 만드는 만두인데도 잘 만들었습니다.
눈썰미가 좋은지 아들은 처음 만드는 만두인데도 잘 만들었습니다. ⓒ 이승숙
아들은 벌써 일 머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일손도 빠른데다 눈썰미가 있어서 일 머리까지 꿰고 있으니 만두 만드는 게 벌써 차이가 난다.

아들의 코치를 받아가면서 만드는 데도 딸애가 만드는 만두는 어째 모양이 예쁘지가 않다.

"누나, 지금 지갑 만드는 거야? 만두가 아니라 지갑 같다."
"안 예쁘면 뭐 어때? 삶으면 다 비슷해질 텐데 뭐. 나 그냥 놔둬."
"너는 아빠 닮아서 요리를 잘 하나보다. 난 엄마 닮았나 봐. 엄마도 만두 잘못 만들잖아."


아들아이랑 남편이 만든 만두는 반듯하고 인물이 좋은데 딸이랑 내가 만든 만두는 모양이 예쁘지가 않았다. 그나마 또 터진 것도 많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노란 불빛이 따스하게 주방을 비춰주고 있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만두를 빚는 손길들이 정겹다. 만두 속이야 좀 터지면 어떠리.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거지.

만두를 다 만들고도 속이 남았다. 계란을 풀어서 속 남은 거에 버무렸다. 그리고 납작하게 전을 부쳤다. 과일주를 한 잔씩 따라서 건배를 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기를, 그리고 웃을 일이 많기를 빌었다.

밤 12시가 막 지났다. 새해가 시작된 거다. 새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채우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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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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