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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청(식당)이 붙어있는 현벽장성 관리사무소에서의 점심 식사. '설개화염산'이란 거창한 이름의 요리를 시켰더니... 설탕 뿌린 토마토였다.
찬청(식당)이 붙어있는 현벽장성 관리사무소에서의 점심 식사. '설개화염산'이란 거창한 이름의 요리를 시켰더니... 설탕 뿌린 토마토였다. ⓒ 오창학
일단 흑산으로 진입하려면 이유야 어쨌든 현벽장성 입장권을 끊어야 한단다. 내친김에 관리사무소이자 찬청(식당)인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BRI@닭볶음과 공기밥, 그리고 몇 가지 음식을 시켰는데, 세월이 다 가도록 도착하지 않는다. 기대가 체념으로 화해 그 체념의 거름으로 절망을 삭일 즈음에 도착한 음식을 보고 박장대소.

이름도 거창한 '눈 덮인 화염산(雪蓋火焰山)' 요리의 실체는 바로 설탕 뿌린 토마토였던 것이다. 하여튼 중국 사람들의 음식 이름 짓는 재주는 알아줘야겠다. 뤄양의 닭발볶음 요리 '봉황의 발톱(鳳爪)'과 어떤 호텔의 푸성귀 음식 '사계풍성(四季豊盛)'에서도 느꼈지만 같은 음식이라도 작명에 따라 접하는 맛이 새삼 다르다.

암각화가 있는 장소는 여기서 흑산 골짜기로 들어가 4Km. 그리곤 도보로 다시 2Km를 걸어야 한단다. 그나마도 중요한 암각화엔 접근 허용이 안 된다는데, 안내인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위치라 하여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을 안내원으로 섭외했다.

산을 기어오르는 현벽장성.
산을 기어오르는 현벽장성. ⓒ 오창학
흑산으로 진입하며 현벽장성을 발치에서 느끼는데 흡사 성벽줄기가 구물구물 검은 산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가히 '현벽(懸壁)'이라 할만하다. 칼날을 연상케 하는 45도 경사의 능선에 얹혀진 성곽의 원판은 16C에 자위관 서쪽 방어용으로 축성한 것이다. 그러나 20여 년 전에 복원해 놓은 지금의 모습에선 어쩐지 보수라기보다는 신축의 냄새가 난다.

흑산 속에 들어선 백구와 파라곤.
흑산 속에 들어선 백구와 파라곤. ⓒ 오창학
골짜기에 난 길로 한 2∼3Km쯤 진행했을까? 안내하는 아주머니는 여기에 멈추란다. 더 진행해도 찾을 수 없는 곳이고, 개방하지도 않으니 여기 것을 보아야 한단다. 약속과 달라진 말 때문에 언짢았지만 일단 여기 암각화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흑산의 암각화. 문양과 패인 정도로 판단할 때 이 모든 게 최근에 조성된 것 같다.
흑산의 암각화. 문양과 패인 정도로 판단할 때 이 모든 게 최근에 조성된 것 같다. ⓒ 오창학
애걔걔. 암석에 새겨진 그림들의 문양 유형이 고대의 것이 아닌데다 지나치게 선명하다. 아무래도 누군가 진본 암각화의 문양을 이곳에 복제해 놓거나 장난친 것 같다. 발품을 판 보람이 헛되이 되는 순간이다.

흑산 석각 지대에서.
흑산 석각 지대에서. ⓒ 오창학
신라와 고구려인의 고깔모자는 과연 북방 유목민족의 고깔모자와 관련이 있을까? 이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은 고깔모자의 문화만 전파 받은 사람들일까, 고깔모자의 전통을 가진 이주민일까? 우리끼리 입을 모아봤지만 소득은 없다. 어차피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주머니는 더 이상은 못 간다 한다. 결국 도록에 나오는 고깔모자 사카족의 석각은 찾지 못했다. 진행방향으로 난 길은 312도로가 뚫리기 전에 둔황으로 향하던 옛 실크로드라 한다.
아주머니는 더 이상은 못 간다 한다. 결국 도록에 나오는 고깔모자 사카족의 석각은 찾지 못했다. 진행방향으로 난 길은 312도로가 뚫리기 전에 둔황으로 향하던 옛 실크로드라 한다. ⓒ 오창학
앞으로 난 산길을 가리키며 저 길이 지금의 312도로가 뚫리기 전 이곳에서 둔황으로 향하던 옛 실크로드라 했다. 순간 회가 동해 저 길로 이동해 볼까 하는 생각이 인다. 그러나 여기서 둔황은 지금 바삐 출발해도 오늘 안에 갈까 말까 한 곳이고, 이제까지 아주머니의 태도로 볼 때 그리 신뢰할 내용도 아니어서 예정했던 길로 이동하기로 한다.

안시 가는 길. 이 평탄함이 끝나면 지독한 인내를 요구하는 악몽의 길이 펼쳐진다.
안시 가는 길. 이 평탄함이 끝나면 지독한 인내를 요구하는 악몽의 길이 펼쳐진다. ⓒ 오창학
오후 4시. 자위관을 빠져나가 다시 312도로에 오른다.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싶더니 금세 비포장길로 빠져든다. 지도 상엔 분명 안시까지 도로표지가 있는데? 더구나 아직 건설 중이긴 하지만 그 옆으로 고속도로도 지난다고 표시되어 있고…. 생각해 보니 자위관에서 안시까지의 300여Km 고속도로 공사가 기존의 길을 먹은 것 같다. 그러니 지금 가는 길은 공사 중인 도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임시로 내 놓은 길이다.

천지사방이 평평한 사막이니 불도저로 쑥 밀면 길이 되기야 하겠지만 과적의 트럭들이 수없이 오가니 길이 길 꼴이 아니다.

'휴게소에 대한 단상'

"화장실 갈 분 계신가요?"

2호차에 무전을 보낸다. 오늘 길을 가는 방식이 참 단순하다. 한없이 간다. 마냥 간다. 배설할 땐 선다. 그리고 다시 간다.

"예, 많습니다."

2호차의 답변. 사정은 1호차도 마찬가지. 오래들 참았다.

"잠시 휴게소에 서겠습니다."

'휴게소'라 말해 놓고 나도 멋쩍다. 휴게소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 화장실, 호두과자, 커피, 휴식…. 그런데 요즘은 이 단어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리고 있다. 휴게소-차가 정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터. 상황이 허락하면 목숨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음식물 섭취도 가능함.

휴게소에 한 무리의 사람이 버스에서 내린다. 란저우로 가는 침대버스는 안시(安西)를 떠나온 지 12시간이 넘었다 한다. 지도상 거리로는 300Km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 거리를 그렇게 왔다면 도로상황이 대체 어떻단 말인가. 스스로 자위해 본다. 저 고물 버스와 우리 사륜구동이 같을 수 없다고. 우린 훨씬 빠른 시간에 안시를 거쳐 둔황에 이를 것이라고.

우리 일행 중 은근히 세바스찬인 나리님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나름대로 중국의 화장실에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그와 비례해서 갈수록 정도를 더해간다. 차마, 발 디딜 수 없는…. 아… 이쯤 하자. 나리님은 결국 옥수수밭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린 중국인들도 제각각 나름의 장소로 흩어진다.

여행 전 아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도 화장실 문제였다. 그러나 걱정에 비해 잘 적응하고 있다.

'성불(成佛)하세요'

해가 지는 저녁 8시 30분. 곡괭이와 삽으로 도로를 닦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놀림이 계속된다.
해가 지는 저녁 8시 30분. 곡괭이와 삽으로 도로를 닦고 있는 노동자들의 손놀림이 계속된다. ⓒ 오창학
오후 8시 30분. 해가 낮 사이의 열기를 잃고 땅에 내리는 가운데 아직도 도로건설 노동자들이 바쁜 손놀림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다가 더 저물어 어둠에 자리를 내주면 공사 중인 다리 밑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 것이다. 간혹 공사장 주변의 야전텐트에 든다. 놀랍게 변모한 중국 동부 발전 뒤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도시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700위안. 농민의 일 년치 연봉이다. 짐승처럼 길에서 자고 못 먹는 한이 있어도 터전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어야 한다. 먼 타지의 도로 공사 현장에 나서야 한다.

서쪽으로 갈수록 해가 길어지고 있다. 시간을 역류하여 나아간다는 미묘한 쾌감. 역류의 방편이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이어서 그 느낌은 더욱 특별하다. 이제 신장으로 들어가게 되면 베이징과는 꼬박 2시간의 시차가 생길 것이다.

밤. 이젠 해가 졌다. 우리의 진행로를 가로막으며 주행하는 화물차들의 꼬리등이 눈에 가득 찬다. 중국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 실크로드를 일주하고 돌아오겠다던 내 여행 계획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경탄의 말을 아끼지 않을 때까지는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모르기는 중국에 도착하고 이날까지도 매 한 가지였다.

그러나 오늘, 지금, 자위관에서 둔황으로 향하는 비포장길에서 처절하게 깨닫는다. 앞범퍼가 땅에 박을 듯 처박혔다가 금세 목이 꺾이며 차 꽁무니를 땅에 대일 듯 튕겨 오를 때마다 내가 벌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짓인가를 뼈저리게 통감한다. 포탄에 패인 듯한 이 요철 구덩이 길에서 벌써 일곱 시간째. 아마 십칠만 칠천 번쯤 깨닫고 통감했을 텐데 아직도 요동은 여전하다. 이러다 성불하지 싶다.

바로 오른쪽에 도로 공사가 한창인데 막상 차가 다녀야 하는 길은 끔찍한 악몽의 길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과 길 듯 구를 듯 엉금거리는 대형화물차들. 끝없이 지속 되는 구덩이들. 길을 두텁게 덮고 바퀴를 삼키는 밀가루만큼이나 부드러운 흙먼지들. 어느 것 하나 녹녹하고 만만한 것이 없다. 대체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둔황으로 가는 길일까, 아님 이승을 떠나 연옥에 이르는 길일까.

자정에 도착한 안시 외곽의 기사 식당. 밤새 오가는 화물차들을 겨냥해서 24시간 운영하는 것 같다.
자정에 도착한 안시 외곽의 기사 식당. 밤새 오가는 화물차들을 겨냥해서 24시간 운영하는 것 같다. ⓒ 오창학
밤 12시. 결국은 안시(安西)에 닿았다. 20세 때 고선지가 안시(당 대에서는 과주(瓜州)에 유격장군에 제수된 역사의 땅에 들어섰는데 뇌는 잠깐의 휴식과 눈앞에 펼쳐진 음식에 눈이 멀었다. 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육신이여.

이곳에서 묵을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고생하는 것, 내일 하루를 벌기 위해 예정대로 둔황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둔황까지의 80여km는 포장된 도로이니 무난할 터.

안시에서 둔황 가는 길에 들어서니 차체가 요동치지 않는다. 드디어 포장도로에 오른 것이다. 아… 차가 달리는데도 헤드뱅잉을 하지 않고 내장이 털럭거리지 않는다니. 이젠 그것이 이상하다.

시속 80∼90Km. 둔황으로 가는 길은 순탄… 하지 않다. 낮이었다면 이처럼 순탄한 길도 없겠지. 그러나 사위가 사막인 가운데 펼쳐진 외줄기 검은 도로는 가시거리 50m도 허용치 않는다. 오가는 차가 없어 안개등과 더불어 상향등까지 켜 보지만 반사체 없는 검은 허공이 빛을 먹어버리기는 매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이다. 빛은 어둠을 이기지 못한다.

가끔 있는 도로 위의 장애물들은 감으로 피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치라이트라도 달고 올걸. 지붕 위에 얹은 루프텐트 때문에 공간 확보가 쉽지 않아 그냥 떠나왔는데 지금은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새벽 3시 둔황 도착. 이젠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가 역사의 땅 둔황에 이르렀다는 감회를 상회한다. 이런 날의 잠은 달고 깊으리라.

실크로드 여행 경로

▲ 이동경로
ⓒ오창학

인천에서 사륜구동 차량 2대를 선적하여 톈진으로 들어가 뤄양-시안-란저우-우웨이-아라싼여우치-둔황-하미-투루판-쿠차-카슈가르-호탄-치에모-아얼진산-거얼무-시닝-란저우-인촨-후허하오터-베이징-톈진-인천으로 입국.

7월 14일~8월 21까지 39일간 14000Km구간을 답사하였습니다.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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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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