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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에서 나는 힘 없는 나라의 눈물을 보는 듯했다.
경남 창녕 교동고분군에서 나는 힘 없는 나라의 눈물을 보는 듯했다. ⓒ 김연옥
나는 늘 어설픈 그리스도인이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챙겨 준 주일 헌금으로 몰래 과자를 사 먹고 호랑이처럼 무서웠던 할머니에게 그만 들켜서 머리를 쥐어 박힌 일도 있었다. 나이 들어 요즘 나가고 있는 작은 교회에서도 가끔 낯선 느낌이 들어 쉽사리 정을 못 붙이고 있다.

교회 언저리에서 늘 맴돌기만 하는 나도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겨울에 태어난 아기 예수 생각으로 마음이 몹시 설렌다. 나는 나무 십자가에 반짝이는 꼬마전구를 달아 모처럼 멋을 부린 소박한 교회에 앉아 이 세상 낮은 곳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겨울에 태어나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생각하며.
겨울에 태어나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생각하며. ⓒ 김연옥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낮,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성탄절 행사의 하나로 경상남도 창녕군 나들이를 했다. 창녕은 비화가야(非火伽倻)의 옛 터전으로 고대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장이다. 우리는 먼저 비화가야의 흔적을 찾아 교동고분군(창녕읍 교리, 사적 제80호)으로 갔다.

나는 교동고분군에서 힘없는 나라의 눈물을 보는 듯했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8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조선총독부에 의해 그 일부가 발굴 조사되어 엄청난 양의 출토 유물들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나라가 힘이 없어 그대로 빼앗겨 버렸다는 말이다.

입구 쪽을 개봉한 고분 앞에서 교동고분군의 횡구식 석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입구 쪽을 개봉한 고분 앞에서 교동고분군의 횡구식 석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연옥
복원된 고분 가운데 1기(基)는 입구 쪽을 개봉하여 교동고분군의 구조를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교동고분군 대부분은 세 벽을 크고 작은 돌로 쌓고 널돌로 천장을 덮은 횡구식(橫口式) 석실이다.

비화가야 시대의 귀중한 유물들을 상당 부분 잃게 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는 창녕박물관에 전시된 청동자루솥, 청동다리미 등 생활도구와 금동말띠꾸미개, 청동말방울 같은 마구(馬具) 등 출토 유물들을 통해 그 시대의 수준 높은 문화를 접하면서 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분이 치밀었다.

만옥정공원에 있는 창녕 척화비. 그 뒤로 U.N전적비가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만옥정공원에 있는 창녕 척화비. 그 뒤로 U.N전적비가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 김연옥
우리는 창녕박물관에서 나와 역사적으로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한 시간 창고 같은 만옥정공원(창녕읍 교상리)을 찾았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UN전적비가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을 사수한 그 전투가 UN군 반격의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던 일을 기념하고 있다.

더욱이 구한말 백성들로 하여금 서양 세력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이 세우게 했던 창녕척화비(도문화재자료 제218호)가 그 가까이에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척화비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이라고 새겨져 있다. 즉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 앞에서.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에 만옥정공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 앞에서.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에 만옥정공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 김연옥
화왕산 기슭에서 소풍 갔던 학생이 발견했다는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도 1924년에 만옥정공원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그것은 비화가야국을 점령한 신라 진흥왕 22년(561년)에 세운 것으로 탁본을 많이 한 탓인지 비면의 마멸이 심해 새겨진 글자를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퇴천삼층석탑.
퇴천삼층석탑. ⓒ 김연옥
뼈대만 남아 있어도 예쁜 창녕 객사 앞에서.
뼈대만 남아 있어도 예쁜 창녕 객사 앞에서. ⓒ 김연옥
나는 전쟁에 얽힌 무겁고 어두운 역사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퇴천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0호)과 벽체가 없어지고 나무로 된 뼈대만 남아 있는데도 참으로 예쁜 창녕 객사(유형문화재 제231호)를 보며 기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객사(客舍)는 외국 사신이나 다른 곳에서 온 벼슬아치들이 묵던 숙소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셨다 한다.

해질녘 쓸쓸한 고요가 찾아온 창녕 만옥정공원. 퇴천삼층석탑과 객사도 보인다.
해질녘 쓸쓸한 고요가 찾아온 창녕 만옥정공원. 퇴천삼층석탑과 객사도 보인다. ⓒ 김연옥

어제가 좋았다
오늘도 어제가 좋았다
어제가 좋았다, 매일
내일도 어제가 좋을 것이다. - 황인숙의 '희망'


해질녘 만옥정공원에는 쓸쓸한 고요가 찾아왔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에 그곳을 찾은 아저씨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내일은 모든 게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면 좋겠다. 나는 만옥정공원을 나서면서 왠지 외로워 보이는 그들이 행복하고 따뜻한 새해를 맞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무엇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삶이 힘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번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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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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