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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후 발표에 의하면 이 자리의 핵심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이었으나, 그뿐 아니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었다.
지난해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후 발표에 의하면 이 자리의 핵심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이었으나, 그뿐 아니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었다. ⓒ 연합뉴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인 최재천 의원(서울 성동갑·열린우리당)이 또 다시 '전략적 유연성'의 칼을 뽑았다.

요컨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매듭지은 제1차 한미 고위급 전략대화의 주체인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장관과, 반 장관 및 이종석 당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아온 노무현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미간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둘러싼 NSC 사무처의 대통령의 대한 '거짓 보고' 혹은 '기망'(欺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재천 의원은 이미 지난 1월 23일자 <오마이뉴스> 기고문에서 맨 처음으로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또한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을 단독입수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였음을 공개한 바 있다.

노 대통령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현재 없다"

@BRI@부시 미국 대통령은 당시 정상회담 석상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should not allow this to be a political issue)"고 분명히 못박은 가운데 노 대통령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 한국 국민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주한미군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역내(域內) 안정을 위해서도 주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 그 문제는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왜 이것을 미리 다 정해 놓아야 합니까. 사전에 정해 놓으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시끄러워집니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노 대통령이 21일 민주평통 상임위 회의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라면서 다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기 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 이 문제의 핵심은 그렇습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동북아시아의 유사시에 주한미군이 여기에 있더라도 중국 당신들에 대해서 동북아시아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적대적 행위 이런 것에 신중히 하겠다, 전략적 유연성은 합의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서 미리 다 정해 놓을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한국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동의하는 것은 된다, 이런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유연한 해석'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시 <오마이뉴스>가 단독입수한 노 대통령의 '노사모' 회원 청와대 초청행사(8월 27일) 발언록을 보면, 노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한·미 협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까지 '자랑'하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것은 한반도의 미군을 함부로 빼서 아무데나 이동하고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냐. 이름은 전략적 유연성으로 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현재 없습니다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허용하지 않았는데 일부 언론이나 또 일부 사람들은 제가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 것으로 계속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실질적인 합의는 한국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못한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한 대통령... 과연 진실은?

심지어 노 대통령은 이처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연설에서 "한국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은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일부 언론이나 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 것으로 계속 얘기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기서 말한 일부 '언론'이나 '사람'은 문맥상 <오마이뉴스>와 '최재천 의원'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3급비밀로 분류되는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과 비공개로 진행된 '노사모' 회원 초청행사 연설문을 입수해 그 '증거'를 제시해도 '마이동풍'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해가 가기 전에 이제는 이 '재미없는 논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에 합의한 지난 1·19 한미 전략대화의 주체였던 반기문 당시 장관은 이미 지난 9월 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략대화의 공동성명을 설명하면서 "한국 정부나 국민이 원하지 않는 지역 분쟁에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노 대통령의 '유연한 해석'과 달리, 반 장관은 "한국 정부나 국민이 원하지 않는 지역 분쟁에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에 합의했다"고 딴 세상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노련한 직업 외교관인 반기문 장관의 문안해석이 틀렸을 리가 없을 것이고 보면, 노 대통령의 문안해석이 '거짓'이거나 '너무 유연한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반도와 한민족 공동체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안보주권에 직결된 협상내용을 '기망'당한 대통령과 대통령을 그런 '유연한 해석'으로 몰고간 '보고자'의 책임으로 귀착된다.

연말이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자. 때 마침 반기문 전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어 귀국해 '금의환향'했다. 그에게도 만약 책임이 있다면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해서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계속해서 깔아뭉갤 경우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외교안보 분야의 '황우석 사태'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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